[세트]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 MIDNIGHT 세트 - 전20권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열린책들에서 창립 35주년을 기념하여 주옥같은 세계문학 중단편을 모아 noon 세트 10권과 midnight 세트 10권을 출간하였다. 이번에 읽은 책은 푸시킨의 '벨낀 이야기'로, 이 소설에는 '마지막 한 발', '눈보라', '장의사', '역참지기', '귀족아가씨'의 총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내가 푸시킨을 처음 대했던 것은 그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였다. 고등학교 시절 외웠던 그의 시구절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고등학생의 삶이 뭘 그리 슬프고 힘들었다고 그의 시를 읊조렸는지..... 러시아의 대표적인 국민 시인 푸시킨은 러시아 문학의 기초를 만든 작가이지만 안타깝게 소설 '마지막 한 발'에서처럼 자신의 사랑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벌인 결투 끝에 38세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우리의 문화에서는 낯선 용어이지만 유럽의 신사들에게서 결투는 명예회복과 용기 그 자체였다. 명예에 죽고, 명예에 살았던 그들. 모욕을 당한 자가 결투를 신청하지 않으면 비겁자 취급을 당했다. 자신의 목숨까지 걸 정도로 명예는 남자의 모든 것이었다. 그런 사회문화적 모습이 반영된 단편 '마지막 한 발'. 실비오라는 명사수의 이야기로 그는 남들에게 칭송받았던 남성다움을 신입이 들어와 사람들의 관심을 받자 그를 증오하고 결국 결투를 하게 된다. 결과론적으로 실비오는 그 남성(백작)을 죽이지 않았지만 충분히 그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복수를 한 뒤 떠난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것이 결코 남성다움은 아니다. 살인을 결투라는 폭력적인 수단으로 미화하지 않았던 실비오. 진정한 결투의 승자인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가난한 장교 '블라지미르'와 사랑에 빠져 몰래 비밀 결혼을 약속하고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지만 뜻하지 않은 복병이 나타난다. 바로 눈보라.... 결국 일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두 사람의 사랑은 이어지지 못한다. 그러나 마리야의 진짜 인연은 블라지미르가 아니었다. 단편 '눈보라'는 간략한 문장으로 내용을 집약적으로 서술하고 있어 전혀 지루함이 없이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진정한 사랑을 찾은 마리야의 이야기. 결국 눈보라가 그녀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셈이다.

'역참지기'는 열네 번째 관등에 속한 자로 완벽한 수난자로 설명하고 있다. 계급사회에서 역참지기는 온몸으로 수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존재였던 것이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딸 두냐가 있어 행복했다. 역참에는 '돌아온 탕아' 그림이 걸려있다. 복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그림일까? 어느날 역참에 들른 장교가 두냐를 납치하듯 데리고 떠났고, 그는 딸을 데리러 장교를 찾아갔지만 결국 혼자 돌아온 그는 술만 마시다가 죽게 된다. 훗날 '돌아온 탕아'처럼 두냐도 귀부인이 되어 아버지를 찾았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이다. 딸을 그리워하다 죽은 역참지기. 그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두냐. 조금 일찍 아버지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것을....

두 지주의 불화. 그들의 자식 리자와 알렉세이. 리자는 시골 처녀로 변장해 알렉세이를 만나 사랑을 가꿔나간다. 알렉세이는 시골 처녀 아꿀리나로 변장한 리자에게 글을 가르치고 편지까지 주고 받게 되는데... 두 지주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결국 절칠한 관계가 되었다. 아꿀리나를 사랑하는 알렉세이는 결코 리자와 결혼할 수 없었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리자를 찾아가는 알렉세이.... 푸시킨은 글의 마무리를 하지 않는다. 굳이 쓰지 않더라도 뒷이야기는 독자가 뻔히 알기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필체로 써내려간 소설이다. 푸시킨을 흔히들 낭만주의 문학가인 동시에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한다. '벨낀 이야기'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군인, 역참지기, 장교, 장의사, 귀족... 이런 다양한 인물들 속에서는 당시 러시아의 소외 계층이나 서민층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사실주의 문학으로 한걸음 다가가는 시초를 마련하였다. 간결하면서 독특한 구조로 다양한 계층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벨낀 이야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처럼 노하지 말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소설을 읽는내내 38세의 한창 나이에 결투로 목숨을 잃은 푸시킨의 삶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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