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친구가 꼭 나오라고 전화를 했다. 딱이 할 일도 없고 안그래도 찜통같은 집구석에 있기가 싫었던 터라 부름에 응했다.
“여기야!”
친구는 웬 여자와 있었다.
“인사해, 이쪽은 내 친구 진옥이. 전에 내가 말했지? 여기는...내 애인이야. 어때? 미인이지?”
난 얼떨결에 대답했다. “미, 미인이십니다”
물 한잔을 마시면서 생각을 했다. 저 친구는 분명 결혼을 했고, 네 살 난 딸이 있다. 그리고 저 여자는 분명 친구 아내가 아니다. 그랬다. 친구는 애인을 사귀었고, 그걸 자랑하려고 날 부른 거였다. 나쁘게 말하면 이용당한 거지만, 그 정도의 치기쯤은 받아줄 수 있었다.
여자는, 빈말이 아니라, 정말 미인이었다. 피부가 어쩌면 그렇게 하얀지, 내가 얼마전에 선을 봤던 여자와는 다른 인종이 아닐까 생각됐다. 웃기도 잘하고 말도 시종일관 당당하게 한다. 29세의 미모를 겸비한 커리어우먼이 뭐가 답답해서 유부남의 애인이 되어 나타난 것일까.
술을 약간 마시고 노래방에 갔고, 내가 멍하니 있는 동안 그 둘은 다정하게 노래를 불렀다. 내가 왜 거기까지 따라갔는지를 책망하다가 조용히 집으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새 눈치를 챘는지 친구가 따라와 내 팔을 붙잡는다.
맥주 한잔을 더 마셨다. 여자가 내게 소개팅을 시켜주겠단다. 친구는 날 ‘총각’이라고 소개했단다. 그냥 말하지, 나 갈라선 적 있다고. 친구 녀석이 제의한다.
“니들 둘이 만나면 불편하니까 그날 넷이 한번 모이자”
이 친구, 나 핑계대고 애인 만날 때 알리바이를 만드려는 게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재미도 없고 외모도 그저그런 날 왜 소개해 주겠는가.
가끔은 일부일처에 감사할 때가 있다. 내 친구, 내가 봐도 멋지다. 잘생겼고, 큐리텔이라는 휴대폰업체에 다니며, 연봉도 내 두배 반을 넘는다. 일부일처가 아니라면 상위 20%의 인간들이 여자의 80%를 차지할 테고, 나같은 사람은 혼자 지내야 했을지 모른다.
잘난 사람들은 일부일처를 저주하면서 끊임없이 다른 여자를 찾아 헤매고, 나같은 사람은 일부일처에 감사하면서 정 짝을 못찾은 여자를 기다린다. 그 무서운 신자유주의의 물결도 결혼제도만은 건드리지 못했다는 게 다행스럽다. 내가 지금 다른 여자를 꿈꿀 수 있는 것도 다 일부일처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