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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은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일이다. 나 역시 따스한 피를 가진 인간인지라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근무 시간에 밖에 나가서 노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라, 노는 것도 컴퓨터상에서 놀아야 한다.
그래서 난 한게임에 아이디를 만들었고, 각종 뉴스 사이트에 드나들며, 알라딘에 서재를 만들었다. 정치에 점점 관심이 없어지다보니 뉴스 사이트에 드나드는 건 시들해졌다. 그 대신 스포츠, 특히 미국 프로야구 사이트인 www.mlb.com에 수시로 들어간다. 한게임 맞고도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이제 시들해진다. 무엇보다 소리를 줄여놓고 해야 하니-근무시간에 "뻑입니다!" 같은 말이 나오면 이상하잖아-실감도 안나고, 위기상황에서 잽싸게 고스톱을 종료해야 하는 것도 좀 미안하다. 한번은 상대방이 딱 두번을 쳐서 7점이 나버린 상태였고, 원고를 불렀고, 경우에 따라서는 스리고 까지도 가능했는데, 우리회사 넘버 2가 내게 말을 하려고 오고 있기에 황급히 꺼버렸다. 그 넘버2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 거였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누군지 모를 상대방에게 많이 미안했다. 한게임에서는 그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얼마간의 위로금을 내게서 빼앗아 상대에게 지급하는데, 사실 고스톱 돈 때문에 치는가. 스리고, 포고, 심지어 파이브 고까지 하는 그 짜릿함 때문에 고스톱을 치는 거지. 그 돈이란 것도 싸이버머니니, 스리고를 목전에 두고 도망가버리는 상대방이 죽이고 싶도록 미울 수밖에 없다. 그날 이후 한게임을 점점 안하게 되고, 그 대신 알라딘에 가서 남들의 글을 읽는 게 가장 중요한 취미가 되어 버렸다.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한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다 보니 소장에게 들킨 적도 있었다. 소장이 갑자기 저벅저벅 걸어오기에 잽싸게 견적서를 내던 창을 띄우려는데, 당황해서 마우스를 놓쳐버렸다. 더듬더듬 하다보니 소장이 이미 내 자리에 왔다. "자네 뭐하나?" "저... 인터넷 서점에서 책 좀 사려고요" 소장이 일장연설을 한 건 당연하지만-근무시간에 책 사는 놈이 어디 있냐, 니가 그러니까 기일을 매번 넘기는 거 아니냐-그래도 책이라는 말에 소장은 감동한 눈치였다. 그 뒤 소장은 할말이 없으면 "진옥아, 요즘 무슨 책이 재밌냐?"고 묻곤 한다. 물론 말뿐이고 정성껏 추천해봤자 읽지도 않을 거지만 말이다. 알라딘이니까 다행이지, 싸이월드 같은 걸 했어봐라. 소장, 아마 내 자리를 자기 옆으로 옮겨 24시간 감시체제로 들어갔을 거다. 아닌게 아니라 내 밑에 있는 S는 초등학교 사이트에서 놀다가 거의 작살이 났다.
누가 왔을 때, 잽싸게 일하는 창을 띄워놓는 기술은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당황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고, 그 경우 열심히 일을 하던 것처럼 위장할 수 있다. 너무 컴에 빠지지 말고 누가 오는가 수시로 관측을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한 일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