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 셰익스피어 & 컴퍼니
제레미 머서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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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 속으로 숨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서관에서든 서점에서든 나란히 꽂혀있는 책등을 손으로 쓰다듬어가며 오늘 읽을 책을 고르고 때론 바닥에 주저앉아 펼쳐 읽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들 사이에 묻혀있을 때 느끼는 안도감을 알고 있지 않을까.  동막골에 앉아 있는 기분이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의 그 동막골 말이다.)

넓고 복잡한 지구별의 어느 한 구석에 숨어 있던 원더랜드를 들여다 본 기분이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공산주의자이자 못 말리는 낙천주의자이며 아이처럼 변덕스러운 조지.  여든여섯이라는 나이는 어디로 잡수신 건지, 제 멋대로 자기 좋은 대로 원기 왕성하게 ‘셰익스피어 & 컴퍼니’라는 고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홍차파티며 시낭송회를 여는 것도 모자라 서점 곳곳에 침대를 마련해 놓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을 재우고 먹이는가 하면, 서점에 이제 막 들어선 낯선 사람에게 갑자기 프런트를 부탁하기도 하는, 인간에 대한 신뢰 과다가 중증인 셰익스피어 & 컴퍼니의 대장이다. 

그렇지 않아도 낭만의 향기가 진동하는 파리에 오래된 책들이 빼곡하게 쌓여있는 고서점이라니, 뭔가 근사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곰팡이 핀 스튜냄비, 바퀴벌레가 말라붙어 있는 부엌, 찌든 암모니아 냄새에 눈이 따가운 화장실, 온갖 인간의 DNA자료가 뒤섞여 있을 이부자리 속 머리카락들이 이 고서점의 현실이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 곳엔 그런 열악한 현실을 희석시키고 증발시켜버리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그 마법같은 힘은 아마도 조지에게서 비롯되는 것 같은데, ‘셰익스피어 & 컴퍼니’의 사람들은 동막골에서 잠시 전쟁을 잊는 군인들처럼, 미친 듯이 돌아가는 세상과 아픈 과거의 기억에서 비켜나와 잊고 살았던 꿈이랄까, 희망이랄까 하는 것들을 천천히 길어 올리며 자기의 삶을 끌어안게 만드는 조지의 주술에 걸려드는 것만 같다.  

여기 저기 낡은 책들이 잔뜩 쌓여있는 고서점이 아름다울 수 있는 까닭은 그 곳이 책을 상거래하는 장소가 아니라 낭만적 문학의 향취로 장난감 병정처럼 빳빳하게 긴장하며 살던 사람을 느슨하게 풀어 놓는 곳이라서가 아닐까.  조지의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서점 경영 방식과 도깨비굴처럼 지저분한 인테리어에 하하거리며 웃고, 한 일주일이나 이주일, 혹은 한 달 정도 머리도 못 감고 샤워를 못해도 서로의 눈에 붙은 눈곱을 떼어주고 포옹할 수 있고, 주방에서 바퀴벌레를 때려잡으며 식사를 한 후 함께 식사한 사람들과 기쁘게 맥주 한 잔을 기울일 수 있게 하고,  읽던 책에서 쥐오줌 자국을 발견하고도 그 책의 내용이 너무 좋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가슴에 책을 꽉 끌어안게 하고,  중고 벼룩시장에서 괜찮은 싸구려 꽃무늬 치마를 건지고는 백화점에서 명품 옷을 새로 구입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게 웃을 수 있게 만드는 곳이라서.

셰익스피어 & 컴퍼니는 이제 아흔이 된 조지 휘트먼에서 그의 딸 실비아 비치의 손으로 넘겨졌다.  조지 때와는 다르게 전화가 있고 신용카드를 받는 곳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진화하고 발전하더라도 셰익스피어 & 컴퍼니만의 독특함과 문학적 낭만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기를 빌어본다.  언젠가 내가 셰익스피어 & 컴퍼니의 낡은 문을 살짝 열고 들어서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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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책 읽기 기록

1. 내 이름은 에릭 (미출간 도서)
2. 도착 (숀 탠/ 사계절) ; 글자 없는 그림책.
3. 외계인 X파일을 펼쳐보다 (가와사키 유키시게, 책깨비, 양선하 지음/ 웅진주니어)
4. 요리하고 조리하며 배우는 과학 (리틀 쿡 지음/ 대교베텔스만)
5. 고흐보다 소중한 우리 미술가 33 (임두빈 지음/ 가람기획)
6. 연민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온화 옮김/ 지식의 숲)
7.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해냄)
8.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엔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사피엔스21)
9. 고래여인의 속삭임 (알론소 꾸에또 지음/ 정창 옮김/ 들녘)

봄이 되고 날씨가 화창해지니까 우리 막내가 몸이 근질근질한가 보다.
그래서 일주일에 서너 번씩 도시락과 간식을 싸가지고 도서관으로 놀러(?) 다니다 보니
책 읽을 시간도 부족했고, 시간이 나더라도 지쳐서 뻗기 일쑤. 

나이를 먹었다는 건 이럴 때 실감이 난다. 
도서관에 간다고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우리 유빈이는 책은 한 두어 권 볼까 말까하고는 그저 재미있게 논다. 

도서관에 온 언니오빠들, 친구와 동생들이랑 인형놀이도 하고,

바다 그림이 있는 책을 펴놓고 수족관에 왔다고 하며 놀고,

여러 가지 동물이 나온 책을 펴놓고는 동물원에 왔다고 하고... ^^
어린이 전문 도서관인 ‘책읽는 엄마 책읽는 아이들’이 유빈이와 나의 아지트가 되어가고 있다.
그나저나 4월에는 좀 더 알차게 책을 읽어야할 텐데.. 

못 읽고 책꽂이에 꽂아둔 책들 생각을 하면 든든하면서도 우울한, 묘한 기분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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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빈이의 1월부터 3월까지(36개월~38개월)의 도서대출기록장이다. 도서관에서 읽은 책들은 일일이 기록하지를 못했다.  그것도 함께 기록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전집류 그림책들은 다음과 같이 말을 좀 줄이고 출판사를 따로 표기하지 않았다.  유빈이랑 내가 재밌게 읽은 그림책은 파란색 굵은 글씨다.

웅진 마술피리그림책 꼬마 - 마꼬
웅진 마술피리 그림책 어린이 - 마어
한국 몬테소리 토들피카소 - 토피
프뢰벨 베이비 스쿨 교육프로그램 - 베스교
헤밍웨이 인성동화 - 헤인동

1월
1. 마꼬45. 이 눈사람 누구야?(기시다 에리코 글/야마와키 유리코 그림/햇살과 나무꾼 옮김)
2. 행복한 한스 (그림형제 글/펠릭스호프만 그림/ 김기택 옮김/ 비룡소)
3. 아가야 울지마 (오호선 글/ 유승하 그림/ 길벗 어린이)
4.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 (그림형제 글/ 펠릭스 호프만 그림/ 김재혁 옮김/비룡소)
5. 줄줄이 꿴 호랑이 (권문희 글,그림/ 사계절)
6. 엠마, 네가 참 좋아 (페트리샤 폴라코 글,그림/ 송미경 옮김/ 아이세움)
7. 화물열차 (도널드 크루즈 글,그림/ 박철주 옮김/ 시공주니어)
8. 크리스마스 트리 (미셸 게 글,그림/ 강경화 옮김/ 시공주니어)
9. 바람이 불었어 (펫허친스 글,그림/ 박현철 옮김/ 시공주니어)
10. 양배추 소년 (초 신타 글,그림/ 고향옥 옮김/ 비룡소)
11. 나는 루루야 (캐롤라인 우프 글,그림/ 노경실 옮김/ 계림)
12. 농장에서 (사회성 발달을 위한 구성 3. 한국프뢰벨)
13. 털보아저씨 가족 (사회성 발달을 위한 구성 2. 한국프뢰벨)
14. 다 잘 될거야 (프리텔 슈미트 글,그림/김지연 옮김/어린이작가정신)
15. 월요일 아침에 (유리슐레비츠 글,그림/ 양녕자 옮김/ 미래M&B)
16. 개구쟁이 해리 (G. 자이언 글/ M. 그레엄 그림/ 언어세상)
17. 안녕, 바나나달 (이연실 지음/ 한솔수북)
18. 도서관에 개구리를 데려갔어요. (에릭 킴멜 글/ 블렌치 심스 그림/ 신형건 옮김/ 보물창고)
19. 마꼬 42. 와니와니의 목욕 (고카제 사치 글/ 야마구치 마오 그림/ 고향옥 옮김)
20. 다 큰 아기 당나귀 (린티르트 끄롬하우트 글/안너마리 반해링언 그림/국민서관)
21. 짧은 귀 토끼 (다원시 글/ 탕탕 그림/ 심윤섭 옮김/ 고래이야기)

2월 
1. 누굴까 (신기한 그림책 동시 그림책 5./ 한솔교육)
2. 비 오는 날 (신기한 그림책 동시 그림책 7 / 한솔교육)
3. 용 같은 건 없어 (잭 켄트 글,그림 / 노경실 옮김/ 교학사)
4. 여섯 마리 까마귀 (레오 리오니 글,그림 / 마루벌)
5. 꿈 꾸는 윌리 (앤서니 브라운 / 웅진주니어)
6. 아프리카에도 곰이 있을까? (사토미 이치카와/ 사과나무 옮김/ 크레용하우스)
7. 동물친구들은 밤에 뭐해요? (이은숙 글,그림/ 마루벌)
8. 우리들의 사과나무 (조우 홀 글/ 셔리 핼펀 그림/ 사과나무 옮김/ 크레용하우스)
9. 마빡이면 어때 (쓰치다 노부코 글,그림/ 김정화 옮김/ 청어람 미디어)
10. 내가 함께 있을게 (볼프에를브루흐 글,그림/ 김경연 옮김/ 웅진주니어)
11. 왜요, 엄마? (메리 워멀 글,그림/ 이주혜 옮김/ 웅진주니어)
12. 로지의 작은 집 (주디 하인들리 글/ 헬렌 크레이그 그림/ 김서정 옮김/ 웅진닷컴)
13. 에이미와 루이 (리비 글레슨 글/ 프레야 블랙우드 그림/ 장미란 옮김/ 다다북스)
14.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 (사노 요코 글,그림/ 정근 옮김/ 언어세상)
15. 봄맞이 대청소 (코이테 탄 글/ 코이테 야스코 그림/ 예상령 옮김/ 한림출판사)
16. 뛰뛰 빵빵 (낸시 쇼 글/ 마것 애플 그림/ 신형곤 옮김/ 보물창고)
17. 꿈꾸는 작은 오리 (A.H 벤자민 글/ 엘리자베스 홀스테인 그림/ 강무홍 옮김/ 웅진닷컴)
18. 토피74.마샤가 학교에 간 사이 (브루스 잉먼 글,그림/김혜진 옮김/한국몬테소리)
19. 토피32. 사냥감은 어디에 (고미타로 글,그림/ 강미해 옮김/한국몬테소리)
20. 토피60. 맥기아저씨 바다로 가다 (파멜라 엘런 글,그림/사과나무 옮김)
21. 토피63. 열기구 나라에 간 마르타 (제르마노 쥘로 글/ 알베르틴 그림/ 강한수 옮김)
22. 토피36. 장난꾸러기 베보 (캐롤린 베이커 글,그림/ 이정주 옮김)
23. 토피41. 감기에 걸린 별님 (오보 마코토 글,그림/ 이선아 옮김)
24. 베스교 1. 아기 꾀꼬리와 아기 고양이 (김서정 글/김희영 그림)
25. 베스교 4. 딸기 한 알 (정향숙 글/ 강영수 그림)
26. 베스교 7. 누가 곰 아저씨랑 겨울을 지낼까요? (엄미랑 글/ 안수민 그림)
27. 베스교 8. 날아간 우산 (권민수 글/ 윤미숙 옮김)
28. 베스교 9. 깡통 하나 (김해순 글/ 최원선 그림)
29. 베스교 10. 뭘 하고 놀까? (박윤규 글/ 최미영 옮김)

3월
1. 막대기가 안들어 가요 (조임성 글/ 강욱 논술/ 이혜경 그림/ 지식더미)
2. 파란 캥거루야, 이제 뭘 할까? (에마 치체스터 클라크 글,그림/ 이상희 옮김/ 아이세움)
3. 커다랗고 커다랗고 커다란 (후나자키 야스코 글/니시카와 오사무 그림/정유나 옮김/ 중앙출판사)
4. 공주님과 드레스 (슈 히입 글,그림/ 엄혜숙 옮김/ 중앙출판사)
5. 겁쟁이 빌리 (앤터니 브라운 글,그림 / 김경미 옮김/ 비룡소)
6. 토피 34. 비 오는 날 (발레리 고르바체프 글,그림/ 장미란 옮김)
7. 토피 37. 잡았다, 루이! (H.M 에를리피 글/ 에밀리 볼람 그림/ 공경희 옮김)
8. 토피 64. 피터의 조각이불 꿈 (발레민 민 글,그림/ 공경희 옮김)
9. 헤인동 45. 내 꽃 어디 갔지? (야마자키 요코 글/스메자키 사케키 그림/ 성현정 옮김)
10. 헤인동 40. 새로운 친구 무무 (고야마 요사코 글/ 무카이 나가마사 그림/황보영 옮김)
11. 헤인동 11. 날아간 밀짚모자 (다카키 산고 글/시노자키 미츠오 그림/ 엄혜숙 옮김)
12. 헤인동 53. 잠깐만 잠깐만 (미야니시 다츠야 글,그림/ 박지영 옮김)
13. 헤인동 57. 오리가족의 이사 (하아오우치 마사요시 글,그림/ 김난주 옮김)
14. 헤인동 22. 찰싹 달라 붙었어요. (하나노우치 마사요시 글,그림/ 변연희 옮김)
15. 토피 30. 바닷속에서 일어난 일 (마리오비네 글/장 푸라스아 마르탱 그림/ 이정주 옮김)
16. 토피 61. 별을 그려 주세요. (에릭 칼 글, 그림/ 오정환 옮김)
17. 토피 58. 나는 작은 눈으로 (스텔라 블랙스톤 글/ 니콜레타 체콜리 그림/ 정해왕 옮김)
18. 마어 35.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이안 벡 글.그림/ 이경혜 옮김)
19. 마어    거미야, 뭐하니? (이상희 글/ 고광삼 그림)
20. 잭과 호랑이 릴리 (다이엔 구드 글,그림/ 이복희 옮김/ 웅진닷컴)
21. 루의 집을 찾아 주세요.(마쓰타니 미요코 글/ 나가타니 지요코 그림/ 김현희 옮김)
22. 옛날에는 돼지들이 아주 똑똑했어요 (이민희 글, 그림/ 느림보)
23. 아멜리아 할머니의 정원 (릴리아나 스태포드 글/ 스티븐 마이클 킹 그림/ 국민서관)
24. 헤인동 17. 야채 속으로 꼭꼭 (가키우치 이소코 글/ 모토노부 기미히사 그림/정문주 옮김)
25. 헤인동 28. 오빠, 미안해 (오니시 히로미 글,그림/ 김지영 옮김)
26. 헤인동 05. 꾸불꾸불 꾸불이 (이토히로시 글, 그림/ 안미연 옮김)
27. 고 녀석 맛있겠다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백승인 옮김/ 달리)
28. 숲 숙의 나뭇잎 집 (소야 키요시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이영준 옮김/ 한림출판사)
29. 난 드레스 입을 거야 (크리스틴 나우만 빌맹 글/마리안느 발르실롱 그림/이경혜 옮김/ 비룡소)
30. 누가 웃었니? (최승호 글/ 윤정주 그림/ 비룡소)
31. 오늘은 좋은 날 (케빈 행크스 지음/ 신윤조 옮김/마루벌)
32. 꼬마 기차와 커다란 동물들 (크리스토퍼 워멀 지음/공경희 옮김/행복한 아이들)
33. If you see d cow (Golden Books) ; 최초의 영어그림책 대출~!!!

석 달 동안의 대출 도서가 83권..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양이다.  아마 날이 점점 따뜻해지면 대출도서도 더 늘어나지 않을까.. 열심히 열심히 읽어줘야지..  대출받지 않고 도서관에서 읽어준 책까지 보탠다면 100권은 가볍게 넘을 듯.. 그러나 유빈이 나이에는 새로운 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보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주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에 같은 책을 여러 번 대출한 경우도 있고, 도서관에서 저번에 빌려던 책 중에 좋았던 그림책을 일부러 찾아서 읽어준 적도 있다. 
어쨌거나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면 석 달 동안 100권 이상의 책을 어찌 읽어줄 수 있었을까.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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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여인의 속삭임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6
알론소 꾸에또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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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외부적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미모에 유능한 커리어 우먼이며 사랑할 수밖에 없는 멋진 아들과 좀 지루하긴 하지만 그럭저럭 견뎌줄만 한 남편과 안정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베로니카의 삶은 완벽해 보였다.  조금 오만하게 굴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해 줄 수 있을 만큼 꽤 특별해 보이는 그런 여자,  같은 여자들로부터 부러움과 시샘을 받는 동시에  남성들로부터는 추파와 애정 어린 호감을 자연스럽게 끌어낼 수 있는 그런 여자가 바로 베로니카다. 

그러나 조금 깊숙이 들어가 볼까? 그녀는 어릴 적 늘 우수한 언니와 비교되며 자랐고, 아버지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녀 생애의 단 하나의 사랑 니코를 향한 그리움을 지우지 못하고 살고 있으며 결국 남편 지오반니나 내연의 남자 패트릭과의 관계도 의무이거나 감각적인 차원에 머물 뿐이다. ‘항상 스스로를 프로그램화해서 타인의 이목을 집중시’(p.115)는 동료 마리타를 비꼬며 증오하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앉아서 파티에 초대해준 모나 마르조에 대한 험담을 즐기기도 하는 속물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항상 나의 고상함과 나의 아름다움을 염두에 두었’(p.344)던 베로니카는 완벽하게 포장된 자신의 모습과 삶을 지켜내고자 사방에 벽을 쌓아올리고 그 안에 숨는 듯한 나약함, 그리고 그 나약함을 들키지 않기 위한 얍삽함, 위선, 신경질적인 감정 폭발과 감정적 도피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고래여인 레베카는 상처투성이다. 베로니카와 레베카가 어릴 때부터 친구사이였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철저히 베로니카의 편의를 고려한, 비밀스런 관계였다.  뚱뚱하고 독특한 외모 때문에 왕따였던 레베카는 친구들의 노골적인 놀림과 괴롭힘보다 그래도 친구라고 믿었던 베로니카의 비겁함과 위선에 더욱 큰 상처를 받는다. 영화와 문학을 좋아하고 고운 감수성을 갖고 있던 레베카의 내면은 고등학교 졸업파티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파괴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 두 사람이 25년의 세월을 건너 만난다.  베로니카는 ‘레베카의 출현이 무질서한 삶에서 일어나는 불의의 급습 같은 것’(p.344)이라고 생각했고 레베카는 아직도 남아있는 우정과 애정, 배신에 대한 복수와 증오, 원망 등이 마구 뒤섞인 혼돈된 감정과 행동을 표출한다. 25년의 시간으로도 아물 수 없는 상처, 희석될 수 없는 과오도 있는 법이다. 베로니카는 그 상처와 과오로부터 피해 달아나려고 했고 예민하게 대응했으며 다시 만난 레베카를 어떻게든 떼어내려 안간힘을 쓴다.  그에 비해 레베카는 베로니카 주변을 맴돌고, 이상한 행동과 위협적인 암시를 통해 불안감을 조장하고, 관심을 구걸하고, 해명을 요구한다.

다시 만나게 된 레베카를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베로니카는 서서히 현재의 삶에 드리워진 과거의 안개를 깨닫게 된다.  레베카의 출현을 통해서 니코를, 자신의 부모를,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 베로니카는 ‘과거는 뒤가 아니라 내부에 있으며, 어떤 일들로부터 나오는 베일이며, 안개 속으로 흩어지는 피’(p.345)임을 고백하고 레베카가 떠나자 ‘영원히 길을 잃은 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고독에 빠져 들’(p.364)고 만다.

처음 레베카와 베로니카가 비행기 안에서 25년만에 해후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재밌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여성의 섬세하고 복잡한 내면 안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두 읽은 날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했다.  왁자한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난 후 혼자 설거지를 하며 레베카와 베로니카에 대한 생각을 했다.  갑자기 레베카와 베로니카가 같이 손잡고 나를 보고 웃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건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순간 내 안에 레베카와 베로니카가 함께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에 대한 열망, 사랑에 대한 환상,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을 가졌지만 치부와 상처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덮으며 화려한 겉껍질 안에서 보호받으려 하는 베로니카와 아픈 기억과 상처에 골몰하며 진실과 대면하면서도 지금의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자꾸만 새로운 열등감과 자기연민과 원망을 양산시키는 레베카.  그 둘은 내 정신의 양 끝에서 서서 서로 만나지도 화해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그 둘은 레베카가 베로니카에게 진실과 대면하게 했듯이, 또 베로니카가 레베카에게 혼돈스러운 감정을 돌아볼 수 있게 했듯이 서로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결국 베로니카와 레베카는 양면의 동전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이 책의 마지막 구절, ‘나는 아직도 그녀의 속삭임을 듣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속삭임을 듣고 있다. 영원히.’(p.365)는 나에게도 해당하는 현재형의 문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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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너무 만만하게 봤다.  300쪽이 조금 넘는 분량에 글자들도 빽빽하지 않은데다 영화화된 소설이니만큼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한 내용일 테니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잡았다가 어찌나 지루하던지 중간에 짜증내며 몇 번이나 덮어버렸는지 모른다.  까칠함으로 따지자면 며칠 전에 읽은 주제 사라마구의 책도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할 텐데, 이 책은 마치 바싹 마른 톱밥과 모래를 반씩 섞어 씹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까칠하고 차갑고 거칠고 불친절하기가 주제 사라마구가 울고 갈 정도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은 이 책에 비하면 너무너무 친절한 책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총기에 관련된 어휘들은 왜 그리 많이 나오는지 나에게는 거의 이해불능의 외국어 수준이었고, 미국 서부극에서 나올법한 배경에서 총격전과 추격전이 벌어지는 이야기는 ‘이거 영 내 취향이 아니네..’하며 한숨이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그렇게 어렵게 질질 끌며 100페이지를 겨우 넘기면서 나는 슬슬 이 책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사내들의 무모하고 잔인한 총싸움 이야기였던 것이 슬며시 다른 면모를 내비치면서 깊이를 더해갔다. 

 

도무지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절대 악의 화신이라 할만한 인물 안톤 시거는 살인을 하면서도 털끝만큼의 흔들림이나 갈등, 번민도 없다.  또 다른 인물 모스는 평범한 트럭 운전사였으나 마약 거래상들의 살인 현장에서 돈가방을 거머쥐면서부터 위험 속으로 빠져든다.  탐욕으로 인해 쉽게 위험한 악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마는 우리 평범한 인간들의 대표주자라고나 할까.  보안관 벨은 선과 진리, 점점 살벌해져가는 세상에 대해 고민하며 안타까워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이 책 제목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노인의 부류에 보안관 벨이 속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지만 이미 제어할 능력을 상실당한(결코 스스로 상실한 것이 아니라) 지난 세대와 인물들 말이다.  결국 보안관직을 포기하고 쓸쓸히 떠날 수밖에 없는 벨은 베트남전 참전 당시 훈장을 받게 했던 전투의 진실을 고백함으로써 우리의 양심과 선한 의지를 일깨우고 경고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제목 “No Country for Old Men'이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에서 인용된 것이라고 한다.  그 시에서 노인이 바다를 건너 성스러운 도시 비잔티움으로 떠나듯이 벨은 보안관직을 포기하고 떠난다.)

책을 덮으며 나는 이 책이 단순히 산탄총을 사람의 얼굴에 대고 쏴대는 잔인한 총싸움에 대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나날이 잔혹해지는 세상에 대한 고발이며, 그 잔혹성에 무뎌져 가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아비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피곤하게 느껴졌던, 감정을 절제한 거칠고 성마른 문장들이 나중엔 이 책의 이야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장이라는 느낌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내가 이 책을 이해하려면 ‘영화’라는 매체의 해석이 필요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해가며 비호감 도서로 분류해 두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영화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책으로 먼저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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