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5일
오랜만에, 거의 한 달만에 유빈이랑 책엄책아 도서관에 갔다. 12월, 유진이 외고 시험 치룬다고 법석을 떨고 나서 내 몸살을 시작으로 식구들 돌아가며 앓고 명보 기말고사랑 크리스마스도 있었고, 또 내일은 가야지, 하고 마음 먹으면 추위가 심술을 부려 못 가기도 했다.
유빈이는 하도 오랜만에 찾아간 도서관이 설레기도 하고, 선생님들 뵙기가 좀 수줍기도 했었나보다. 유빈이답지 않게 얌전을 빼고 앉아 있더니 친한 여섯 살짜리 오빠 지흔이가 오고 나서야 노는 데 활기를 띄었다.
게다가 유빈이는 도서관 책통장에 개구리 도장 다섯개를 채웠다고 상으로 그림책 <따뜻한 그림백과 책>를 받았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통장에 적은 게 다섯 번 모이면 개구리 도장 하나를 받으니까 스물 다섯 번 가서 책을 읽고 통장에 적어야 받을 수 있는 상이다. 유빈이는 통장을 만든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또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 놀기만 하다가 온 날도 많았으니 이제야 처음 받게 되었다. 그래도 도서관 선생님 말씀으로는 최연소 개구리상 수상자라고 하신다. 하하하하
1학년 언니들이 색종이 접기 하는 데 껴서 거들며 놀더니만 엄마 선물이라며 하얀 꽃무늬가 자잘하게 들어있는 분홍 앞치마를 접어왔다. (언니들이 많이 도와줬겠지만!) 그러더니 또 조금 있다가 언니들이 '말 잘 듣고 종이접기 잘 했다'며 상으로 줬다고 색종이 꽃 두 개를 더 가져왔다. 유빈이 상복이 터진 날이다. ^^ 한참을 종이접기에 몰두하던 아이들이 나중엔 시장을 벌였다. 색종이로 접은 꽃, 앞치마, 티셔츠와 치마 등등을 모아놓고 도서관에 온 엄마들과 선생님들께 장당 100원에 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엄마들과 선생님들은 흔쾌히 지갑을 열었고, 녀석들은 판매수익금으로 슈퍼에 가서 과자를 사다가 저희들끼리 과자파티를 열었다.
유빈이가 책엄책아 도서관을 좋아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거다. 저희들끼리 모여 그림을 그리고, 뭔가를 만들고, 일을 벌이는 기쁨 같은 거. 누가 이거 해라 하는 사람도 없고, 뭔가 해놓으면 잔뜩 칭찬하고 감탄해주는 사람들만 수두룩하니 아이들은 신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내일은 도서관에서 아이들 데리고 '만화경 만들기'를 하신단다. 토요일엔 '못된 괴물과 세 마리 아기 염소' 이야기로 그림자극을 보여주신다고 하고. 유빈이는 지흔이 오빠랑 내일도 도서관에서 만나자고 꼭꼭 약속을 했다.
집에 돌아와 청국장 찌개를 끓여 밥을 먹었다. 어쩐일로 남편도 일찍 들어왔다. 연말연시 정신이 없었는데, 조금 시간이 났나보다. 이제 좀 한가해진 거냐고 했더니만, 사진을 9천장이나 인화해야 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단다. 일이 끊기지 않는 건 다행인데, 너무 바쁠 때면 또 걱정이 된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이번 겨울엔 여행도 접자고 했다. 남편이야 바쁜 와중에도 양쪽 사무실 직원들이랑 용평이니 강화도니 양평이니.. 단합대회 겸 야유회겸 해서 다녀왔고, 학회 때문에도 다녀왔는데 가족들이 또 어디 가자고 하면 고단할 게 틀림없다. 유진이랑 명보 핑계 대고 그냥 이번 겨울은 조용히 넘어가자고, 정 마음에 걸리면 나중에 시간 날 때 맛있는 거나 한 번 사라고 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데, TV에서 2MB가 비상경제대책회의라나 뭐라나를 '지하벙커'에서 가질 예정이란다. 웬 지하벙커? 경제위기 같은 거 없다고 하더니, 자기 같으면 이럴 때 주식을 사겠다고 그러더니, 이젠 지하벙커에 가서 대책회의를 하겠단다. 나, 우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2MB가 개그를 좀 안다고, 개콘보다 훨씬 더 웃긴다고, 서민들 괴로운 거 알고 웃겨나 주자고 생각했나보다고, 낄낄낄 거리다 갑자기 힘빠지고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