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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53
존 버닝햄 글, 그림 | 이주령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존 버닝햄에 대해서라면 이미 우리 나라에 알려질대로 알려진 작가라 뭐 따로 할말이 없고,,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나 <지각 대장 존> <알도>등에서 늘 예민한 문제를 다루었던 것과는 달리 <검피아저씨의 뱃놀이>는 아주 밝고 가벼운 그림책이라는 점에서 의외였다.
우리 첫째 둘째 아이가 어렸을 때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를 읽어주면서 동물들에 말 하나하나가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또 <지각 대장 존>을 읽어줄 때는 그 못되게 생긴 선생 앞에 겁먹은 생쥐처럼 작게 옴추린 존이 불쌍해서 마음 쓰렸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마음 아플 일 없이 아이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그림부터가 가볍다. 펜인지 연필인지로 성글고 거친 선으로 스케치된 그림들도 <깃털 없는 거위 보르카>나 <야, 우리기차에서 내려!>에서 보여주는 두텁고 어두운 색채의 그림들과 비교된다. 검피아저씨의 성격도 밝고 따뜻하다.
강가에 있는 집에서 살고 있는 검피 아저씨는 기다란 노를 저어서 움직이는 배를 한 척 가지고 있다. 어느날 배를 끌고 강으로 나왔는데 동네 꼬마, 토끼, 고양이, 강아지, 돼지, 양, 닭, 송아지, 염소들이 배를 태워달라고 차례차례 부탁을 한다. 마음씨 좋은 검피아저씨는 배에서 얌전히 있을 것을 조건으로 배를 태워주는데, 고분고분 말 잘듣고 얌전히 배를 타고 간다면 무슨 이야기가 된담? 당연히 모두들 배안에서 야단 법석을 떨다가 강물에 풍덩 빠진다. 따뜻하고 밝은 햇볕아래서 몸을 말리고 노란 꽃이 가득 피어있는 눈부신 들판을 지나 검피 아저씨는 그 말썽장이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차를 마신다.
검피 아저씨 배를 함께 타고 가는 기분으로, 경치 좋은 강가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아이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밝고 따뜻한 그림책..
그런데 모두 강물로 풍덩 빠지는 그림 속의 검피 아저씨... 모자가 벗겨진 모습을 보니, 허걱, 이마가 훤하다. 미안한 말이지만 꼭 존 버닝햄 자기 자신을 그려 놓은 것 같다. <지각 대장 존>에서도 정규학교를 견디지 못하고 서머힐 학교를 나온 존버닝햄 자기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았는데...
이제 막 만22개월에 접어든 우리 비니가 내 목소리에 가만가만 귀기울이며 듣고 있는 걸 보니 이 책을 살 때 너무 빠르지 않을까 했던 걱정이 사라졌다. 아마 자기가 아는 낱말들이 많이 들리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