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을이면 나와 개똥이가 다니는 도서관이 '나랑 같이 놀자'라는 잔치를 연다.  지역주민들을 초청해서 한마당 어울어지는 장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올해도 변함없이 열두 번째 잔치가 벌어진다.  이번주 토요일, 그러니까 바로 내일 왕십리 광장에서다.

 

 

날이 쌀쌀해져서 좀 걱정이다. 책과 관련된 여러가지 체험활동도 도서관 쌤들과 엄마들이 많이 준비했고, 올한해동안 도서관 각 모임에서 했던 여러 활동에 대한 전시도 있고, 공연도 있는데 부디 화창한 가을볕 아래에서 사람들 북적이는 신나는 잔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작년에 이억배 선생님과 송언 선생님을 모셨었는데 이번엔 이루리 선생님을 모시게 됐다. 지난 봄에 이루리 선생님을 모시고 도서관에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북극곰이라는 작은 출판사의 주인이시자 그림책 작가이신데, 뵙는 순간 왜 출판사 이름을 '북극곰'이라고 지었는지 딱 느낌이 왔다.

이번 '나랑 같이 놀자'에서 나는 서울그림책 전시코너나 피노키오가 진행하는 실팽이 코너를 지키게 될 것 같다. 작년엔 본부석을 지키라는 명을 받고 내내 본부석을 지키는데 재미가 없었더래서 '이제 본부석 안지킬래요.'하고 항의를 했었다. 전시코너보다는 체험부스에 있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우리 개똥이는 종이놀이터에 잔뜩 기대하고 있다.  작년에 서울도시만들기가 차지했던 공간에 종이놀이터를 만들어 놓기로 했다. 각종 박스들을 잔뜩 쌓아놓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게 하는 코너다. 아마 날씨만 좋다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할 코너가 아닐까 싶다.

 

내일이다. 얼마나 바쁘고 고된 날이 될까 걱정되면서도 한바탕 벌어질 잔치마당이 기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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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10-26 0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오랫만이네요~ 좌르르 페이퍼를 읽어보니 알라딘에 뜸한 이유가 있었네요.^^
거리상 놀러가긴 어렵겠지만, 사진이라도 구경하고 싶었는데... 사진이 안 보여요. 아래 텃밭도요~ ㅠ

섬사이 2013-11-12 21:52   좋아요 0 | URL
와~~ 순오기님, 반가워요~^^
근데 왜 사진이 안 보일까요....?

제 컴에서만 보이나봐요. 왜...그런지 모르겠네요. ㅠ.ㅠ

순오기 2013-11-28 02:32   좋아요 0 | URL
사진은 다른 곳에 올린 걸 복사해서 붙이면 x만 보이고 사진은 안 보이던데...
혹시 그렇게 복사해 온 건 아닌지....

섬사이 2013-11-28 08:3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구나!!!
이 페이퍼, 수리해야겠네요.
 

 

 

삼각뿔.

아우마메와 덴고와 우시카와가 각각 꼭짓점을 이루는 삼각형이 밑면이다.  그 밑면의 각 꼭짓점에서 맨 위의 꼭짓점을 향해 뻗어가는 모서리를 차례차례 더듬어가면 단단한 구조의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세 옆면마다 후카에리, 고마쓰, 다마루, 리더, 스킨헤드와 포니테일, 노부인, NHK수금원이었던 덴고의 아버지, 요양원의 간호사들, 아유미 같은 인물들이 좌표 위에 찍혀있는 점처럼 포진해있다.  1Q84를 읽는 내내 나는 아주아주 단단한 밀도와 강도를 가진, 모서리가 날카롭게 빛나는 삼각뿔을 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차하는 순간 그 날카로운 모서리에 베일 수도 있겠구나 싶을 만큼.  

소설에서 스토리는 참으로 중요한 요소이지만 글쎄,,  1Q84의 이야기 줄거리를 간단하게 축약해 말한다는 건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만큼 이야기의 얼개 사이를 촘촘하게 메우고 있는 작가의 생각과 의미들이 주는 무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것이 필요해.  말로는 잘 설명이 안 되지만, 의미를 가진 그런 풍경.  우리는 그 뭔가에 제대로 설명을 달기 위해 살아가는 그런 면이 있어.  난  그렇게 생각해.    (2권 440쪽)

 

이 문장을 만났을 때 나는 책을 잠시 덮고 내 안의 '의미를 가진 그런 풍경'을 찾아갔다.  운동장에 쪼그리고 앉아 피아노 건반을 그리고 있던 나를 오랜만에 만났다.  지금 누군가가 "그 때, 네가 운동장 흙바닥에 돌멩이로 피아노 건반을 그리고 있었을 때 하늘에 달이 두 개였어."라고 말한다면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1984년으로 돌아왔다. 아오마메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곳은 이미 그 1Q84년이 아니다. 원래의 1984년의 세계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렇게 간단히 세계가 원래대로 돌아올까. 예전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통로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리더는 죽기 전에 그렇게 단언하지 않았는가.

  혹시 이곳은 또 하나의 다른 장소인 게 아닐까. 우리는 하나의 서로 다른 세계에서 또 하나의 다른, 제삼의 세계로 이동했을 뿐인 게 아닐까. 타이거가 오른편이 아니라 왼편의 옆얼굴을 상냥하게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세계로. 그리고 그곳에서는 새로운 수수께끼와 새로운 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3권 729쪽)

 

 

 

지나간 시간을 더듬다보면 꿈같은 시간들이 있다.  과연 현실이었을까, 내가 정말 그 때 그 속에 있었던 게 맞나, 싶은 시간들.  어떤 통로를 통해 나는 그 때와는 다른 지금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져가고 싶은 소중한 것'만 챙기고 많은 것들과 이별한 채 사나운 칼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고속도로 비상계단을 맨발로 올라 지금 여기 이 시간으로 들어와 있는지 모른다.  그 때의 시간은 지금의 시간과 차원이 다른 세계인 것처럼 느껴진다. 「1Q84」는 그런 생각과 느낌들을 불러왔다.

 

'1Q84'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그 의문이 풀렸다는 게 가장 개운한 일이지만 아오마메가 정의한 '1Q84'보다는 덴고가 은유적으로 말한 '고양이 마을'이 훨씬 마음에 와 닿았다.  아오마메가 '1Q84'라고 명명하고 덴고가 '고양이 마을'로 설명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열 살에 아오마메와 덴고가 서로의 '의미를 가진 그런 풍경'이 된 후 이십 년이 흘러 두 개의 달 아래 미끄럼틀 위에서 만나기 전 덴고는 잠시 망설인다.

 

그곳에 있는 아오마메는 정말 내가 찾아헤매던 그 아유마메일까.  그리고 이곳에 있는 나는 정말 아오마메가 찾아 헤매던 가와나 덴고일까.  (3권 667쪽)

 

 

이 문장을 조심 바꿔본다.  '그곳에 있는 너는 정말 내가 찾아헤매던 그 너일까.  그리고 이곳에 있는 나는 정말 너가 찾아 헤매던 나일까.'  아오마메와 덴고의 만남은 확실히 모험이었을 것이다.  만남에 대한 희망, 의미있는 풍경에 대한 그리움은 그간 '손바닥으로 소중히 감싸서 바람으로부터 지켜온 작은 불꽃이'고 그것은 '현실의 난폭한 바람을 받으면 훅 하고 간단히 꺼져버릴지도' 모르는 거니까. 나는 작은 불꽃을 지키는 편이고 실망을 두려워하는 부류다.  그래서 아오마메와 덴고의 용기있는 만남을, 오랫동안 간절하게 기다려왔던 그 아름다운 만남의 장면을 감동하며 지켜보았다.  말없이 손을 마주잡고 감은 눈을 뜨지 못한 채 '마음을 두는 법을, 풍경을 바라보는 법을, 언어를 선택하는 법을, 호흡하는 법을, 몸을 움직이는 법을, 이제부터 하나하나 조정하고 다시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3권 676쪽)'고 생각하는 덴고를 벅찬 마음으로 보았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둘이 함께 고양이 마을을 떠났지만 우리는 영영 떠나지 못하거나 혹은 함께 떠나지 못하고 서로 다른 통로를 거쳐 각각의 다른 세상으로 헤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살아간다.  많은 것을 견디고 많은 것을 겪으면서.

 

우리는 이곳에 머물 것이다.  아오마메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이곳에 머물 것이다. 이 세계에는 아마도 이 세계 나름의 위협이 있고, 위험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 나름의 수많은 수수께끼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어두운 길을 우리는 앞으로 수없이 더듬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괜찮다.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자. 나는 이곳에서 이제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단 하나뿐인 달을 가진 이 세계에 발을 딛고 머무는 것이다.  (3권 740쪽)

 

 

마지막 문장까지 다 읽고나니까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하루키는 이 소설을 어떻게 키운 것일까.  이 소설의 맨처음 씨앗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하루는, 일주일은 어떻게 흘러갈까.  이 소설을 쓰기 위해 하루키는 얼만큼의 시간과 공을 들였을까.  하루키의 가슴, 혹은 머리는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어떤 그만의 비법으로 이렇게 촘촘하고 치밀하고 단단한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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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도서관 옥상이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가더니 멋진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방수목 바닥이 깔렸고 옥상 담을 빙돌아 하얀 팬스가 둘러졌고, 그 아래로 모임별로 텃밭을 꾸밀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나랑 우리 꼬마 개똥이는 '피노키오'라는 2학년 품앗이 모임에 들어가 있어서 그 모임 아이들과 엄마아빠들이 힘을 합쳐 작은 정원을 만들었었다.  이렇게...

 

 

 

 

하지만 어느새 바야흐로 가을.  거두고 갈무리해야할 시기가 찾아왔다. 아이들은 자신들 앞에 펼쳐진 이 새로운 작업에 어지러운 흥분의 기류를 타고 정리를 하는 건지, 흙장난을 하는 건지 모르게 소란스러웠다. 심어놓고 제대로 돌보지 않아 열매를 많이 맺지는 못했지만 고추며, 콩이며, 토마토며, 오이를 아주 조금씩 수확할 수 있었다. 

도서관 공동 텃밭에 심어진 고구마를 캐볼 수 있는 행운을 얻어 고구마까지 수확물에 포함됐다.

 

 

가운데 있는 저것은 콩이다.  저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콩은 처음 봤다. 애들도 우어어어어~하고 놀라워했다.

수확의 즐거움과 재미는 역시 고구마 캐기가 최고다.  내년에는 고구마와 감자를 심자고 의견을 모았다.

아이들과 화분들을 정리하자니 오히려 흙이 여기저기로 튀고 쏟고 난리가 아니다.

그래도 서울 이 회색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이 작은 텃밭이 주는 경험의 기쁨은 정말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여름엔 옥상 텃밭을 보며 아이들이 시도 썼다.

 

우리 개똥이가 지은 시 하나, 여기에 적어둔다.

 

상추

 

 

상추가 급식에 나오면

고기가 있고

 

고기가 나오면

상추가 있지

 

아이들은 환호하고

선생님도 환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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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매주 두 번, 화요일 목요일마다 ㄷ 대학에 간다. 아침에 서둘러서 꼬맹이 딸 학교에 보내고 나서 화장도 하고 옷도 신경써서 골라 입고 지하철 타고 가서 풋풋하고 상큼한 대학 캠퍼스 안에 발을 딛는다. 아침 9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이어지는 강의를 듣고 있으면 딱딱한 강의실 의자와 내 넉넉한 엉덩이가 서로 싸워서 아프기도 하지만 점심시간에 맛볼 수 있는 5천원짜리 깔끔한 대학식당 밥이 아픈 엉덩이도 다 잊을 수 있게 해준다. 점심을 먹고 강의실까지 걸어오는 길에 싱싱한(?) 청년들의 씩씩한 뒷모습과 잔디밭 벤치에 가을 햇빛을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그들의 환한 얼굴에 내가 힐링이 되는 걸 느낀다.  말마따나 대학 캠퍼스를 걸으면서 이 중년의 아줌마는 젊은 기를 흡수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무섭다.  강의실 뒷편에 준비된 커피와 녹차는 또 얼마나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지.  난 사소한 것에 감동할 줄 아는 여자다. 원두커피나 믹스커피나, 다기에 우려낸 녹차나 티백 녹차나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따뜻한 한 잔을 즐길 줄 아는 여자다. 난 이런 내가 좋다.

 

올해는 도서관에서 인연을 쌓아온 좋은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렸고, 운이 좋으면 그 그림들이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오는 걸로 마무리가 될 거라고 여기고 이제 연말까지 내가 걷던 걸음의 속도로 느긋하게 시간 위를 걸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도서관 덕분에 "누가 올 한 해동안 한 일이 뭐예요? "하고 물으면 늘 한 가지 정도 대답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게 한해가 저물어 갈 때마다 참 감사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막판에 도서관 관장님의 추천으로 ㄷ 대학에서 '육아실무코칭과정'을 12월까지 주 2회씩 듣게 됐다. 사실 뭘 하는 건지도 제대로 모르고 일단 시작을 해 본 건데, 첫 날 나눠준 커리큘럼을 보니까 유아동기의 발달과정과 다양한 놀이와 교육에 대해 배우고 나서 자기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와 접목을 시켜볼 수 있도록 하는 것 같다.  같이 강의를 배우는 분들 중에는 아동미술심리치료라든가 영어교육, 혹은 유아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도 많았다.  관장님이 내게 이 교육과정을 추천한 것은 이런 일련의 교육과정을 밟으면서 그림책을 비롯한 어린이 문학에 대한 정리를 해보라는 뜻인 것 같았다.  사실 지난해에 초등과정에 알맞는 각 분야의 책을 추천하는 목록을 만드느라 어린이책을 급하게 많이 읽었더래서 그런지 올해는 어린이책들을 좀 뜸하게 읽었던 게 사실이다. 

 

이 교육과정을 듣고 내가 뭘 얼마나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좀 안이해져 있던 내가 확실히 자극을 받고 있기는 하다. 강의에 오신 분들이 어찌나 열심히 살고 계신 분들인지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 마지막에는 배운 것과 내 관심분야를 접목시켜서 발표를 해야 하니 미리미리 자료도 찾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기분이 좋다. 

얼린 샤베트를 깨문 기분. 

싸늘한 초겨울 밤에 혼자 달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

뜨거운 여름날 얼음짱같은 계곡물에 발을 담근 기분.

정성스럽게 포장된 선물을 풀기 전의 기분.

좋은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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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었다. 몇 해 전부터 유명세를 탔던 소설이다. 누군가 추리소설이라고 그랬다. 난 추리소설이랑 잘 안맞아, 하고 서점에서든 인터넷에서든 자주 마주치던 이 책을 외면하고 지냈다. 누군가 아주 재미있다고 그랬다.  그 '재미'를 너무 강조하는 바람에 더 읽고 싶지 않아졌다. 재미있는 건 좋지만 재미밖에 없을까봐 꺼렸다.

얼마 전에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딸아이를 기다리다가 이 책을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도구로 삼아볼까 싶은 마음으로 서가에서 뽑았다.  그러다가 집에까지 데려왔다.

이런 책을 추리소설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을 믿지 말아야 했다.  나에게 추리소설이란 사건이 터지고 그 사건을 단서와 증거를 따라가며 해결하는 얼개를 가진 소설이다.  이 소설도 단서를 찾고 퍼즐을 맞추듯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나에겐 그것보다 인간의 내면을 후벼파는 이야기로 읽혔다.  추리소설도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겠지만 이 책은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사건보다 사람쪽에 더 기울어져 있다는 거다.

아주 재미있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도 듣지 말아야 했다. 재미있다기보다는 아팠고, 그 아픈 이야기가 분노의 질주처럼 전개돼서 나는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숨이 가빳다. 다 읽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덮고 나니까 거친 길을 온몸에 힘을 주고 엉덩이가 아프도록 달리다가 차에서 내린 기분이었다. 

남성적 이야기라 더 그런건지도 모른다. 등장인물도 거의 남성이고 여성이라곤 그나마 비중있는 인물이 악착같은 김은주나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리며 수동적으로 살아가던 문하영 정도니까.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덩치좋은 남자들 사이를 정신없이 헤매고 다닌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에 휘말려서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기에는 좋았지만 이야기에 공감되는 부분이 없었던 것 같은, 혹은 LTE급 속도감에 음미할 시간이 부족했던 느낌이다. 책을 읽다가 잠시 호흡을 멈추고 음미할 부분을 찾을 새도 없이 숨차게 읽고 끝낸 느낌.  그게 좀 아쉽다.  소설 한 권을 두고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걸까?  그래도 '흡!'하고 숨이 멎는 결정적 한 줄을 발견하는 것도 책 읽는 즐거움 중 하나인데 말이다.  

 

그래도 사건을 풀어가는 핵심인물 승환과 서원이 잠수에 능하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심연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까 하고 잠시 생각에 잠길 수 있었더랬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떠올랐고.

사건이 해결되는 장소가 등대마을에 있는 등대 안이라는 것도. 어둠 속으로 길게 하얗게 찰나의 빛선을 긋는 등대는 그 본연의 목적성 때문에 서원이 한솔등 쌍둥이 소나무에 묶여 정신을 잃었을 때 세령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환상의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진실은 빛선이 지나며 보여주는 찰나의 장면처럼 간파하기가 쉽지 않은 거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조금 느리게 다시 읽어봐야 하는 걸까?  ............. 뭐,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 정도로 좋지는 않았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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