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었다. 몇 해 전부터 유명세를 탔던 소설이다. 누군가 추리소설이라고 그랬다. 난 추리소설이랑 잘 안맞아, 하고 서점에서든 인터넷에서든 자주 마주치던 이 책을 외면하고 지냈다. 누군가 아주 재미있다고 그랬다.  그 '재미'를 너무 강조하는 바람에 더 읽고 싶지 않아졌다. 재미있는 건 좋지만 재미밖에 없을까봐 꺼렸다.

얼마 전에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딸아이를 기다리다가 이 책을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도구로 삼아볼까 싶은 마음으로 서가에서 뽑았다.  그러다가 집에까지 데려왔다.

이런 책을 추리소설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을 믿지 말아야 했다.  나에게 추리소설이란 사건이 터지고 그 사건을 단서와 증거를 따라가며 해결하는 얼개를 가진 소설이다.  이 소설도 단서를 찾고 퍼즐을 맞추듯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나에겐 그것보다 인간의 내면을 후벼파는 이야기로 읽혔다.  추리소설도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겠지만 이 책은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사건보다 사람쪽에 더 기울어져 있다는 거다.

아주 재미있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도 듣지 말아야 했다. 재미있다기보다는 아팠고, 그 아픈 이야기가 분노의 질주처럼 전개돼서 나는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숨이 가빳다. 다 읽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덮고 나니까 거친 길을 온몸에 힘을 주고 엉덩이가 아프도록 달리다가 차에서 내린 기분이었다. 

남성적 이야기라 더 그런건지도 모른다. 등장인물도 거의 남성이고 여성이라곤 그나마 비중있는 인물이 악착같은 김은주나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리며 수동적으로 살아가던 문하영 정도니까.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덩치좋은 남자들 사이를 정신없이 헤매고 다닌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에 휘말려서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기에는 좋았지만 이야기에 공감되는 부분이 없었던 것 같은, 혹은 LTE급 속도감에 음미할 시간이 부족했던 느낌이다. 책을 읽다가 잠시 호흡을 멈추고 음미할 부분을 찾을 새도 없이 숨차게 읽고 끝낸 느낌.  그게 좀 아쉽다.  소설 한 권을 두고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걸까?  그래도 '흡!'하고 숨이 멎는 결정적 한 줄을 발견하는 것도 책 읽는 즐거움 중 하나인데 말이다.  

 

그래도 사건을 풀어가는 핵심인물 승환과 서원이 잠수에 능하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심연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까 하고 잠시 생각에 잠길 수 있었더랬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떠올랐고.

사건이 해결되는 장소가 등대마을에 있는 등대 안이라는 것도. 어둠 속으로 길게 하얗게 찰나의 빛선을 긋는 등대는 그 본연의 목적성 때문에 서원이 한솔등 쌍둥이 소나무에 묶여 정신을 잃었을 때 세령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환상의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진실은 빛선이 지나며 보여주는 찰나의 장면처럼 간파하기가 쉽지 않은 거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조금 느리게 다시 읽어봐야 하는 걸까?  ............. 뭐,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 정도로 좋지는 않았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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