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1025/pimg_735544173914033.jpg)
삼각뿔.
아우마메와 덴고와 우시카와가 각각 꼭짓점을 이루는 삼각형이 밑면이다. 그 밑면의 각 꼭짓점에서 맨 위의 꼭짓점을 향해 뻗어가는 모서리를 차례차례 더듬어가면 단단한 구조의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세 옆면마다 후카에리, 고마쓰, 다마루, 리더, 스킨헤드와 포니테일, 노부인, NHK수금원이었던 덴고의 아버지, 요양원의 간호사들, 아유미 같은 인물들이 좌표 위에 찍혀있는 점처럼 포진해있다. 1Q84를 읽는 내내 나는 아주아주 단단한 밀도와 강도를 가진, 모서리가 날카롭게 빛나는 삼각뿔을 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차하는 순간 그 날카로운 모서리에 베일 수도 있겠구나 싶을 만큼.
소설에서 스토리는 참으로 중요한 요소이지만 글쎄,, 1Q84의 이야기 줄거리를 간단하게 축약해 말한다는 건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만큼 이야기의 얼개 사이를 촘촘하게 메우고 있는 작가의 생각과 의미들이 주는 무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것이 필요해. 말로는 잘 설명이 안 되지만, 의미를 가진 그런 풍경. 우리는 그 뭔가에 제대로 설명을 달기 위해 살아가는 그런 면이 있어. 난 그렇게 생각해. (2권 440쪽)
이 문장을 만났을 때 나는 책을 잠시 덮고 내 안의 '의미를 가진 그런 풍경'을 찾아갔다. 운동장에 쪼그리고 앉아 피아노 건반을 그리고 있던 나를 오랜만에 만났다. 지금 누군가가 "그 때, 네가 운동장 흙바닥에 돌멩이로 피아노 건반을 그리고 있었을 때 하늘에 달이 두 개였어."라고 말한다면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1984년으로 돌아왔다. 아오마메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곳은 이미 그 1Q84년이 아니다. 원래의 1984년의 세계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렇게 간단히 세계가 원래대로 돌아올까. 예전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통로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리더는 죽기 전에 그렇게 단언하지 않았는가.
혹시 이곳은 또 하나의 다른 장소인 게 아닐까. 우리는 하나의 서로 다른 세계에서 또 하나의 다른, 제삼의 세계로 이동했을 뿐인 게 아닐까. 타이거가 오른편이 아니라 왼편의 옆얼굴을 상냥하게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세계로. 그리고 그곳에서는 새로운 수수께끼와 새로운 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3권 729쪽)
지나간 시간을 더듬다보면 꿈같은 시간들이 있다. 과연 현실이었을까, 내가 정말 그 때 그 속에 있었던 게 맞나, 싶은 시간들. 어떤 통로를 통해 나는 그 때와는 다른 지금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져가고 싶은 소중한 것'만 챙기고 많은 것들과 이별한 채 사나운 칼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고속도로 비상계단을 맨발로 올라 지금 여기 이 시간으로 들어와 있는지 모른다. 그 때의 시간은 지금의 시간과 차원이 다른 세계인 것처럼 느껴진다. 「1Q84」는 그런 생각과 느낌들을 불러왔다.
'1Q84'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그 의문이 풀렸다는 게 가장 개운한 일이지만 아오마메가 정의한 '1Q84'보다는 덴고가 은유적으로 말한 '고양이 마을'이 훨씬 마음에 와 닿았다. 아오마메가 '1Q84'라고 명명하고 덴고가 '고양이 마을'로 설명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열 살에 아오마메와 덴고가 서로의 '의미를 가진 그런 풍경'이 된 후 이십 년이 흘러 두 개의 달 아래 미끄럼틀 위에서 만나기 전 덴고는 잠시 망설인다.
그곳에 있는 아오마메는 정말 내가 찾아헤매던 그 아유마메일까. 그리고 이곳에 있는 나는 정말 아오마메가 찾아 헤매던 가와나 덴고일까. (3권 667쪽)
이 문장을 조심 바꿔본다. '그곳에 있는 너는 정말 내가 찾아헤매던 그 너일까. 그리고 이곳에 있는 나는 정말 너가 찾아 헤매던 나일까.' 아오마메와 덴고의 만남은 확실히 모험이었을 것이다. 만남에 대한 희망, 의미있는 풍경에 대한 그리움은 그간 '손바닥으로 소중히 감싸서 바람으로부터 지켜온 작은 불꽃이'고 그것은 '현실의 난폭한 바람을 받으면 훅 하고 간단히 꺼져버릴지도' 모르는 거니까. 나는 작은 불꽃을 지키는 편이고 실망을 두려워하는 부류다. 그래서 아오마메와 덴고의 용기있는 만남을, 오랫동안 간절하게 기다려왔던 그 아름다운 만남의 장면을 감동하며 지켜보았다. 말없이 손을 마주잡고 감은 눈을 뜨지 못한 채 '마음을 두는 법을, 풍경을 바라보는 법을, 언어를 선택하는 법을, 호흡하는 법을, 몸을 움직이는 법을, 이제부터 하나하나 조정하고 다시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3권 676쪽)'고 생각하는 덴고를 벅찬 마음으로 보았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둘이 함께 고양이 마을을 떠났지만 우리는 영영 떠나지 못하거나 혹은 함께 떠나지 못하고 서로 다른 통로를 거쳐 각각의 다른 세상으로 헤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살아간다. 많은 것을 견디고 많은 것을 겪으면서.
우리는 이곳에 머물 것이다. 아오마메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이곳에 머물 것이다. 이 세계에는 아마도 이 세계 나름의 위협이 있고, 위험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 나름의 수많은 수수께끼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어두운 길을 우리는 앞으로 수없이 더듬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괜찮다.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자. 나는 이곳에서 이제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단 하나뿐인 달을 가진 이 세계에 발을 딛고 머무는 것이다. (3권 740쪽)
마지막 문장까지 다 읽고나니까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하루키는 이 소설을 어떻게 키운 것일까. 이 소설의 맨처음 씨앗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하루는, 일주일은 어떻게 흘러갈까. 이 소설을 쓰기 위해 하루키는 얼만큼의 시간과 공을 들였을까. 하루키의 가슴, 혹은 머리는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어떤 그만의 비법으로 이렇게 촘촘하고 치밀하고 단단한 글을 쓸 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