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희망을 (반양장)
트리나 포올러스 지음 / 시공주니어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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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바탕의 표지에 줄무늬 애벌레와 노란 애벌레가 날개를 활짝 펼친 나비를 바라보는 그림이 그려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삶에 관한, 혁명에 관한,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에 관한 이야기이고 학생들과 그밖의 사람들들 위한 것입니다."라고 적혀있다. 

꼭대기가 구름으로 가리워진 애벌레 기둥 속에서 짓밟히고 짓밟혀가며 높이 올라가려는 애벌레들이 등장한다.  꼭 우리네들 모습이다.  우리도 끊임없이 경쟁하도록 자극받는다.  평수를 늘려 이사간 친구에게서, 친구의 우수한 성적표에서, 나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고 승진하는 동료에게서, TV에 나오는 날씬한 몸매의 연예인에게서, 하다 못해 벽걸이형 텔레비젼으로 새로 바꾼 언니에게서까지... 그 경쟁의 끝이 어딘지도 모르고 한없는 욕심의 끈을 따라서 스스로를 재촉하고 조여간다. 

기둥을 오르는 애벌레들처럼 "모두들 저렇게 달려가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 틀림없이 굉장히 좋은 것이 있을 거야. 안녕. 나도 더 이상 시간이 없어!"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그러나 줄무늬 애벌레가 함께 기둥에 오르자고 했을 때 노랑애벌레는 이런 생각을 한다.  확신할 수 없으면서 행동하는 것 보다는 그냥 기다리는 것,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이 더 낫다고.  그리하여 모든 사랑에도 불구하고 줄무늬 애벌레와 함께 가는 것을 거절한다.  하지만 노랑 애벌레도 기약없이 기다리는 것이 무의미하게 여겨졌고, 무엇이든 아무것이나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내가 정말로 원하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하고 스스로에게 물어가면서.

노랑애벌레는 나비가 된다.  고치를 만들고 있는 애벌레에게서 노랑애벌레는 "한 마리의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절실히 날기를 원할 때" 나비가 될 수 있으며 그 때 "그걸 지켜보고 있는 누구의 눈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나비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라고,  "오직 시간이 좀 걸릴 뿐"이며 나비가 됨으로써 우리는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비가 되겠다는 희망을 간직한 채 고치를 만든다. 

줄무늬 애벌레는 기둥 꼭대기에 오른다.  기둥 꼭대기로 오르는 동안 그는 무자비해져 간다.  기둥 꼭대기로 오르려는 애벌레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줄무늬애벌레가 그렇게 오른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 말한다. "이 바보야, 조용히 해! 저 밑에서 듣잖아.  <저들이> 올라오고 싶어하는 곳에 우리는 와 있는 거야.  여기가 바로 거기야."라고.. 꼭대기는 그 뿐이었다.  거기에 어떤 꿈도 희망도 자리 하고 있질 않았다.  그저 모두가 오르고 싶어하는 단순한 장소이상의 가치는 없었다. 더구나 위에서 바라보니 그런 기둥은 사방에 무수히 많았다.  그 때 줄무늬 애벌레는 자기 주변을 맴돌며 날으는 노란 나비 한마리를 보게 된다.  노랑 애벌레의 눈빛을 닮은 나비. 그리고 마침내....

이 책의 내용은 노래로도 만들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노래의 많은 부분들을 잊어버렸지만 "너 비록 추한 몰골의 자그마한 애벌레이나 너 죽어 사라질 때  그 위에서 떠날으는 한 마리 나비되어 들판에서 피어있는 이 꽃들에게 희망을..."하던 부분은 기억이 난다.  기타 반주에 맞추어 부르던 노래였는데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다. 

얇고 글도 짧지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특히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그런 책이다. 그들도 한 마리의 나비가 되기를 꿈꾸는 작은 애벌레같은 존재들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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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내 표범팬티 어디 갔지? - 꿈의동물원 2
재미마주 엮음 / 길벗어린이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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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러스한 그림책이다.  남자 아이가 엉덩이를 내 놓은채 서랍을 뒤지고 있는 첫장의 그림.  표범팬티를 찾고 있다.  순간 내 머릿 속에 떠오르는 아이들의 노래. "도깨비 00는 튼튼해요. 질기고도 튼튼해요. 호랑이 가죽으로 만들었어요.,,," 어쩌구 하던..

아이들은 팬티라는 소재에서부터 입가에 슬슬 웃음을 띠기 시작한다. 서랍 속을 뒤져 팬티를 찾는 아이는 생각한다.  내 표범팬티가 어디 갔을까?  팬티가 그거 하나밖에 없진 않을텐데, 콕 집어 표범팬티를 찾는 걸 보면 아이가 좋아하는 팬티인가 보다. 

표범팬티는 이제 상상력의 세계 속으로 돌아다닌다.  아기 사자, 커다란 구렁이, 홍학, 수달을 거쳐서 표범이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날쌔게 달리는 장면까지.. 참 재미난 이야기지만 그림만큼은 가볍지 않다.  유화를 사용한 건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건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림이 사실적일 뿐만 아니라 채도와 명도가 낮은 색을 써서 전체적인 분위기도 밝지 않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걸 왜일까? 글의 가벼움과 그림의 무거움이 부딪치면서 느끼는 아이러니의 묘미때문일까?  다소 무겁고 심각해 보이는 그림 속의 동물들이 팬티를 엉뚱하게 사용하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낄낄거리게 되는 것이다.  마치 개그맨들이 우스운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는 하나도 안웃는 것처럼, 우스운 꼴을 하고 있는 동물들은 익살맞지도 경망스럽지도 않고 오히려  아주 점잖고 진지하다.  그게 더 웃기다. 

맨 마지막 장에 아이는 표범팬티를 입고 우리를 향해 흐뭇하게 웃음짓고 있다.  아주 만족스러운가 보다. 

남편은 이 그림책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그림책이 좀 엽기적이고 변태스럽다."고..  그건 때묻고 더러워진 어른들의 생각으로 그림책을 보기 때문이라고 반발했더니 머쓱해 한다.  보면 볼수록 재미만 있구만... 살짝 남편을 흘겨보면서 오늘도 나는 즐겁게 아이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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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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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를 처음 읽은 건 내가 초등학교 5,6학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이차가 많은 오빠들을 둔 덕에 만날 수 있었던 책이다.  그 때는 모모의 이야기가 그저 환타지 동화의 재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어린 내 기억에 깊은 인상을 남겼더랬는지, 그 후로 몇 번을 더 꺼내 읽기도 하고 주변에 선물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며 선물을 하기도 했었다. 

모모의 이야기에는 참 독특한 개성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일단 모모, 원형극장에서 혼자 살아가는 여자 아이다.  자기가 몇살인지도 모르는 아이다.  그러나 주변의 따뜻한 이웃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이다.  모모의 가장 탁월한 재능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줄 아는, 그래서 모모에게 뭔가 두서없이 말을 늘어 놓던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게 만드는 신기한 재주가 있는 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모를 알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여기며 혹시라도 모모가 자기들을 떠날까봐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한 사람 모모의 친구 베포할아버지. 직업은 거리의 청소부다.  신중한 성격의 그는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자기 일을 천천히 하지만 쉬지 않고 해 나가는 사람이다. 베포는 말한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 해낼 수 있어.  그래야 하는 거야.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  그게 중요한 거야."라고.. 어린 나이에 들은 베포의 말은 내가 어떤 일에 조급해질 때나 서두르게 될 때 내 마음 속에 메아리처럼 울리고 했다.

다른 한 사람 기기, (어릴 적 읽던 책에는 이름이 '지지'라고 되어 있었다)관광 안내원 일을 하고 있지만 늘 꿈을 꾸는 사람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에 광대같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듯한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또다른 인물, 사람은 아니지만 어릴 적 꼭 만나고 싶었던... 거북이 카시오페이아. 30분 앞을 미리 아는 능력을 가진 거북이다.  우리는 3년 후, 5년 후, 또는 10년 후나 그 보다 더 먼 미래를 알고 싶어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먼 미래를  궁금해 할 필요는 없다.  카시오페이아를 늘 내 곁에 친구로 두고 30분 앞의 미래를 알 수 있다면, 30분 후의 미래가 쌓여서 먼 미래를 전혀 다르게 변화시킬 수도 있을테니까..  어린 나는 카시오페이아라는 거북이에게 푹 빠져있었더랬다.  아니 30분이 아니라 10분 앞을 미리 알 수만 있어도, 아니면 5분 앞이라도 미리 알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사람들은 5분 앞 정도는 쉽게 알 수 있다고, 그리고 5분 후의 미래라면 내 의지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5분 후를 바꿀 수 있다면 먼 미래도 바꿀 수 있는 것 아닌가.. 어차피 먼 미래도 지금의 5분이 쌓이고 쌓여서 도달하는 시간의 한 지점일테니까..

미하엘 엔데는 모모를 통해서 늘 쫓기듯이 바쁘게 살아가느라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마는 현대사회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다.  사람들에게서 시간을 빼앗아 살아가는 회색인간들. 그들은 사람들에게 더,더,더 빨리 일하고 더 바쁘게 살아가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협박하면서 말린 시간의 꽃잎을 말아 담배를 피워 자신의 존재를 유지시키는 사람들이다. 

나이를 먹을 수록 시간의 흐름은 점점 더 빨라졌다.  매년 이맘때 쯤,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사실에 새삼 놀라곤 한다.  그리고는 모모이야기 속에 등장하던 그 회색인간들을 떠올리곤 한다.  어느새 나도 회색인간들에게 시간을 빼앗긴 건 아닐까.. 하고. 

회색인간들이 빼앗아 간 것은 단순히 시간, 그 자체가 아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사고방식 자체를 변화시킨다. 그런 걸 생각하면 나도 회색인간 스타일로 어느새 생각이 바뀐 게 아닐까하고 염려스러워지는 것이다.  다시 또 한해가 간다.  내 마음 속의 모모가 호러박사를 찾아가 회색인간들의 시간창고에서 시간들을 해방시킬 그런 날이 새해 안에 있기를 바래본다.  그래서 새해에는 나도 시간이 없다, 바쁘다, 투덜대지 않고 소중한 시간들을  아이들과 여유있게 나누게 되기를 빈다.  서로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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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감추는 날 - 웅진 푸른교실 5 웅진 푸른교실 5
황선미 지음, 소윤경 그림 / 웅진주니어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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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표지, 안경을 쓴 작은 남자 아이가 빨간 일기장을 뒤로 감추고 있다. 남자아이 왼쪽에 앉아 있는 나이든 여자 선생님은 몸집이 과장되어 그려있다.  한 팔을 뻗어 아이 등에 손을 올려놓았는데 팔의 길이며 손의 크기를 보면 아이에게 너무 무거울 것 같다.  선생님의 다른 한쪽 팔꿈치 밑에는 일기장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책의 뒷표지, 커다란 일기장이 펼쳐져 있고 잠옷을 입은 남자 아이가 자기 키의 두배는 될 것 같은 연필을 힘겹게 들고 일기를 써 나간다.  그 주위에 엄마, 아빠, 선생님으로 보이는 어른들이 아이가 일기쓰는 걸 지켜보면서 뭔가 지시하는 모습도 보이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모습도 보인다. 개 한마리가 그런 일기장에다 오줌을 싸고 있다.  마치 하나도 소중할 것 없는 엉터리라는 듯이..

일기검사라는 것이 너무 일반적인 일이 되어버려서 한 쪽에선 '인권침해'라는 말이 불거져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리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것 같다.  가끔 일기검사를 두고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토론을하는 모양인데 대부분이 일기검사를 하지 말자는 의견인 대부분이라고 한다.  일기를 검사 받아야하는 대다수의 어린이들의 의견이 일기검사를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인데도 '인권침해', '사생활침해'라는 질타를 받아가면서도 일기검사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론 신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어른들이 권력을 앞장세워 일기를 검사하려 하고 그에 대해 고민하는 '동민'이라는 남자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다.  동민이네 반 선생님은 일기를 내지 않으면 그 벌로 남아서 청소를 하게 한다.  청소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남아 점검을 받고 열쇠를 받아다가 교실문까지 잠가야 하는 벌이다. 

엄마는 자기 맘대로 동민이의 일기를 들춰본다.  동민이에게 남들에게 드러내기 싫은 일이 생겼지만 비밀로 하는 일이 여의치가 않다.  반 친구가 일기장을 검사용으로 하나, 자기만의 비밀을 담는 용도로 하나를 만들어 보라고 충고했지만 동민이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어른들이 쓰라는 일기에는 제약도 많다.  매일 써야 하고, 공책을 가득 메울 정도로 써야 성실한 일기라고 하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도 신경을 쓰라고 하고, 경수라는 친구때문에 속이 상해 죽겠는데도 친구가 잘못한 일을 쓰면 고자질이 되니까 안되고,  글씨도 반듯반듯 해야 하고, 엄마가 자존심 상해하는 일은 쓰면 안되고...  

어릴 적을 생각해보면 나도 거짓말 일기를 썼던 것 같다.  쓰기 싫은 날은 '시'라는 형식을 빌려 대충 떼우기도 하고,  일기장에 찍혀 있는 '참 잘했어요'나 '검'자 도장을 보면서 오늘은 선생님이 일기 검사하기 귀찮아서 보지도 않고 도장만 찍었다며 그럴 거면 왜 검사를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친구들과 불평을 하던 기억도 난다. 

동민이는 자기는 도저히 못넘을 것이라고 여겼던 아파트 담벼락을 경수가 보는 앞에서 넘어 보인다.  선생님에게는 '며칠 동안 일기는 못 씁니다.  왜냐 하면 비밀이거든요.  조금만 말씀 드리자면, 엄마가 아직도 슬프기 때문이예요.  이런 건 일기가 아니다 하시면 계속계속 문 잠그는 아이가 될께요.'라는 글을 일기장에 남김으로써 선생님의 이해를 얻어낸다.  맞벌이하시는 엄마 시간에 맞추어 가기도 싫은 학원을 세군데나 다녀야 하는 동민이는 친구 수연이를 따라 도서관 어린이 기자교실에 가려고 마음먹는다. 

주눅들고 소심한 아이였던 동민이는 이렇게 자기 의견을 밝히고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하는 당당한 아이로 변화한다. 우리가 바라는 아이의 모습은 싫어도 부모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고분고분한 아이가 아니다.  변화된 동민이의 모습처럼 밝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해 나가는 아이의 모습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일이 간섭하지 말고  조금 떨어져 있어야 할 것 같다.  믿고 기다려줘야 할 것 같다. 

오늘을 살아가는 도시 아이들의 마음과 생활을 바라보는 황선미님의 시선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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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야, 힘내!
조은수 글, 이혜리 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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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부정적인 자아관을 가진 고릴라 한마리가 있다.  무엇때문에 자기가 고릴라인게 싫은 건지 이유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마법사가 나타나 "안녕? 고릴라야"하고 인사만 해도 자기를 그렇게 부르지 말아달라며 우울해 하는 고릴라다.

부정적인 자아관을 가진 대표로 고릴라가 발탁된 것은 아마도 우락부락 심술맞아 보이는 고릴라 특유의 인상과 너무 긴 팔에 비해 너무 짧은 다리, 지나치게 떡벌어진 어깨와 가슴 같은 불균형스러운 신체 때문인 것 같다. 

어쨌든 고릴라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고릴라를 측은히 여긴 마법사님께서 고릴라를 변신시켜주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마법사님은 왜 이렇게 눈이 많지? 대부분의 마법지팡이는 별 장식을 달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지휘봉처럼 그저 막대기인 적이 많은데 이 마법사님은 마법지팡이 끝에도 눈알이 달려있고, 옷에도 눈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아마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잘 보고 살피는 것이 이 마법사가 맡은 소임이고 그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한 착한 마법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그림작가 이혜리님의 발상인가 보다 하고 이해하기로 했다. 

아무튼 이 고릴라는 좋은 마법사를 만나 쥐로, 토끼로, 뱀으로, 참새로, 사자로 변신을 거듭한다.  그런데 이 고릴라가 워낙 까탈스러운지 그런 동물들이 모두 마음에 안든단다. 변덕스러운 고릴라는 '사자처럼 무섭지 않고, 참새처럼 약하지 않고.,뱀처럼 미끈미끈하지도 않고, 토끼처럼 눈이 빨갛지도 않고, 쥐처럼 징그럽지도 않은 내' 가 좋단다.

그 말에 까탈스런 고릴라의 주문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던 마법사의 얼굴이 환해진다.  그리곤 다시 본연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온 고릴라가 "나는 내가 고릴라인 게 좋아요"하는 고백과 함께 환한 얼굴로 웃음짓는다. 

그림책은 자기자신을 싫어하던 고릴라가 자기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세상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그림책이 담고 있는 메세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3개월이 된 우리 아이는 '아리송 수리송 수리수리 마하수리 얍~!"하는 마법사의 주문을 읽어줄 때마다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다가 책을 톡 친다.  마치 자기가 마법사가 된 것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들이 등장하는 데다가 재미있는 주문이 반복되어 아이가 재밌어 하는 것 같다.   "뭐가 되고 싶은데?" 하고 마법사가 고릴라에게 던지는 질문을 아이에게 던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아직 말이 익숙하지 않아서 불가능하지만, 좀 더 커서 말을 잘 하게 되면 "비니는 무슨 동물이 되고 싶니?"하고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자기가 사랑받고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늘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눈을 많이 갖고 있는 마법사처럼 나도 아이들을 잘 살피고 지켜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법사의 지팡이가 탐난다. 저것만 있으면 훨씬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텐데... 허걱~ 말하고 보니 갑자기 내가 이 그림책 속의 고릴라처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이대로의 내가 가장 좋아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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