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감추는 날 - 웅진 푸른교실 5 웅진 푸른교실 5
황선미 지음, 소윤경 그림 / 웅진주니어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앞표지, 안경을 쓴 작은 남자 아이가 빨간 일기장을 뒤로 감추고 있다. 남자아이 왼쪽에 앉아 있는 나이든 여자 선생님은 몸집이 과장되어 그려있다.  한 팔을 뻗어 아이 등에 손을 올려놓았는데 팔의 길이며 손의 크기를 보면 아이에게 너무 무거울 것 같다.  선생님의 다른 한쪽 팔꿈치 밑에는 일기장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책의 뒷표지, 커다란 일기장이 펼쳐져 있고 잠옷을 입은 남자 아이가 자기 키의 두배는 될 것 같은 연필을 힘겹게 들고 일기를 써 나간다.  그 주위에 엄마, 아빠, 선생님으로 보이는 어른들이 아이가 일기쓰는 걸 지켜보면서 뭔가 지시하는 모습도 보이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모습도 보인다. 개 한마리가 그런 일기장에다 오줌을 싸고 있다.  마치 하나도 소중할 것 없는 엉터리라는 듯이..

일기검사라는 것이 너무 일반적인 일이 되어버려서 한 쪽에선 '인권침해'라는 말이 불거져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리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것 같다.  가끔 일기검사를 두고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토론을하는 모양인데 대부분이 일기검사를 하지 말자는 의견인 대부분이라고 한다.  일기를 검사 받아야하는 대다수의 어린이들의 의견이 일기검사를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인데도 '인권침해', '사생활침해'라는 질타를 받아가면서도 일기검사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론 신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어른들이 권력을 앞장세워 일기를 검사하려 하고 그에 대해 고민하는 '동민'이라는 남자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다.  동민이네 반 선생님은 일기를 내지 않으면 그 벌로 남아서 청소를 하게 한다.  청소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남아 점검을 받고 열쇠를 받아다가 교실문까지 잠가야 하는 벌이다. 

엄마는 자기 맘대로 동민이의 일기를 들춰본다.  동민이에게 남들에게 드러내기 싫은 일이 생겼지만 비밀로 하는 일이 여의치가 않다.  반 친구가 일기장을 검사용으로 하나, 자기만의 비밀을 담는 용도로 하나를 만들어 보라고 충고했지만 동민이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어른들이 쓰라는 일기에는 제약도 많다.  매일 써야 하고, 공책을 가득 메울 정도로 써야 성실한 일기라고 하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도 신경을 쓰라고 하고, 경수라는 친구때문에 속이 상해 죽겠는데도 친구가 잘못한 일을 쓰면 고자질이 되니까 안되고,  글씨도 반듯반듯 해야 하고, 엄마가 자존심 상해하는 일은 쓰면 안되고...  

어릴 적을 생각해보면 나도 거짓말 일기를 썼던 것 같다.  쓰기 싫은 날은 '시'라는 형식을 빌려 대충 떼우기도 하고,  일기장에 찍혀 있는 '참 잘했어요'나 '검'자 도장을 보면서 오늘은 선생님이 일기 검사하기 귀찮아서 보지도 않고 도장만 찍었다며 그럴 거면 왜 검사를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친구들과 불평을 하던 기억도 난다. 

동민이는 자기는 도저히 못넘을 것이라고 여겼던 아파트 담벼락을 경수가 보는 앞에서 넘어 보인다.  선생님에게는 '며칠 동안 일기는 못 씁니다.  왜냐 하면 비밀이거든요.  조금만 말씀 드리자면, 엄마가 아직도 슬프기 때문이예요.  이런 건 일기가 아니다 하시면 계속계속 문 잠그는 아이가 될께요.'라는 글을 일기장에 남김으로써 선생님의 이해를 얻어낸다.  맞벌이하시는 엄마 시간에 맞추어 가기도 싫은 학원을 세군데나 다녀야 하는 동민이는 친구 수연이를 따라 도서관 어린이 기자교실에 가려고 마음먹는다. 

주눅들고 소심한 아이였던 동민이는 이렇게 자기 의견을 밝히고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하는 당당한 아이로 변화한다. 우리가 바라는 아이의 모습은 싫어도 부모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고분고분한 아이가 아니다.  변화된 동민이의 모습처럼 밝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해 나가는 아이의 모습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일이 간섭하지 말고  조금 떨어져 있어야 할 것 같다.  믿고 기다려줘야 할 것 같다. 

오늘을 살아가는 도시 아이들의 마음과 생활을 바라보는 황선미님의 시선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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