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의 탄생 일공일삼 91
유은실 지음, 서현 그림 / 비룡소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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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실의 새 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망설임없이 읽기 시작한 책. 이야기의 첫 머리에는 일수의 엄마 아빠의 만남과 결혼, 결혼을 한 후 대부분의 연인들이 그러하듯이 서로에게 심드렁해지기까지의 과정이 나오는데 그걸 읽으면서부터 나는 즐거웠다. 여자의 잘록한 허리와 수줍은 웃음이 마음에 들어서 '이 사람과 결혼해서 날마다 저 모습을 봐야겠다.'고 다짐하고 결혼했지만 아내의 수줍음은 사라지고 결혼한 지 오 년 만에 잘록한 허리가 완벽한 항아리 형으로 변신해서 바라보면 한숨이 나오더라는 이야기, 남자에게서 풍겨오는 기분좋은 비누 냄새와 유머감각이 마음에 들어서 '이 사람과 결혼해서 날마다 재밌는 얘기를 들어야겠다.'고 다짐하고 결혼했지만 남자가 남편이 되고부터는 점점 게을러지고 지저분해져서 코를 쥐고 괴로워했다는 이야기. 그래도 그냥 그럭저럭,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부부로 살았다는 이야기는 첫 두 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걸쳐서 짤막하게 쓰여있었지만 팔딱팔딱 살아있는 생생한 문장들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부부의 결혼 이야기는 세상만사 뜻대로 되는 일이 없더라, 라는 켸켸묵은 진리를 꺼내들고 앞으로 태어날 일수의 인생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을 처음부터 했던 건 아니고, 책을 다 읽고 나서 곰곰 생각했더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를 생각해볼 때 사실 일수 엄마, 아빠의 결혼 스토리는 없어도 무방하니까, 굳이 이 이야기가 책의 앞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건 앞으로 일수의 앞날이 생각대로 쉽게 풀리지는 않을 거라는 복선일 수도 있다는 거다.

 

일수는 이 부부가 결혼한지 15년만에 얻은 귀한 아들이다. 게다가 행운의 숫자 7이 겹친 7월 7일에 태어났고, 로또 당첨의 길몽이라는 황금똥의 태몽을 꾸고 잉태된 아이다. 그러니 부모, 특히나 엄마의 극진한 사랑과 관심과 기대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철철 넘쳐난다. 엄마는 일수가 출세하고 성공해서 자신을 돈방석에 앉혀줄 거라는 부푼 기대와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만사는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일수가 무럭무럭 자라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1학년 담임선생님은, 일 년 내내 상장 한 번 못 탄 일수를 위해 잠시 고민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일수에겐 착한 구석이 없었어요. 말썽을 피우지 않는다고 착한 건 아니니까요. 일수는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칭찬할 것도 야단칠 것도 없는 아이였죠. 2학년, 3학년 선생님도 마찬가지였어요. 일수는 특별히 잘하는 것도 눈에 띄게 못하는 거도 없는 아이였죠. 선생님들은 가끔 일수가 자기 반 아이라는 걸 잊어버렸어요. (29쪽)

 

그러니까 일수의 문제는 '문제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데, 나는 일수의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아, 어쩌면 일수가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수가 '생일잔치를 회갑처럼 하는 것 말고 특별할 게 없는 백일수 어린이'(31쪽)가 되어버린 것도, 말끝에 늘 '같아요'를 붙여서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리며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숨기는 것도 모두 자신의 탄생에 수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커다란 걸 기대하고 있는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혹은 정말 자신이 없다는 아주 극소심한 의지표명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엄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부응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일수의 고민이 드러난 것일 수도.  일수의 아빠는 그런 일수를 측은히 여기며 아내에게 한 마디 한다. 

"일수한테 너무 기대하지 마. 대단해지지 않았을 때, 엄마에게 죄지은 느낌으로 계속 살게 될지도 몰라." (51쪽)

물론 아들에 대한 기대로 눈이 먼 엄마에게 남편의 충고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헛소리 취급을 받지만.

 

어떤 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일수가 4학년이 되어 서예반에 들어가면서 약간의 반전을 맞는다. 일수의 '하면 된다' 서예작품이 '새마을초등학교 개교 30주년 기념 전시회'에 서예부 대표로 전시된 것이다.  이 일로 일수가 한석봉 뺨치는 유명한 서예가로 성장할 것이라는 꿈을 꾸게 된 일수 엄마는 일수의 손목을 잡아끌고 급기야 동네 최고의 명필을 찾아가 제대로 서예를 배우게 한다. 한석봉의 꿈을 꾸는 엄마와 달리 겹받침을 틀리지 않고 잘 쓰고 싶다는 소박한 목표를 가졌던 일수가 6학년이 되어 겹받침이 헛갈리지 않게 되자 명필은 일수의 어머니를 불러앉히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수는 자기 글씨체가 없습니다. 그날 그날 교본에 있는 걸 따라할 뿐이에요. 당연하죠.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기 감정이 뭔지도 모르는 녀석인데."

명필은 조금도 떨지 않고 대답했어요.

"뭐라고? 우리 일수가 뭘 모른다고?"

어머니 목소리가 커졌어요.

"당신 아들은 자기 감정을 몰라. 자기 마음을 담는 게 서옌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해. 더 이상 하면 독이 될 뿐이야!"

명필의 목소리도 커졌어요. 어머니보다 더 크게, 더 세게 반말을 했죠. (65쪽)

 

 

일수는 서예학원에서 잘렸다. 언젠가 명필은 일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었다. "일수야, 너는 누구니?", "그런 거 말고, 너는 누구니?"라고.  그렇게 물어봐주는 사람은 명필, 딱 한 사람이었는데, 야속하게도 그 명필이 일수를 잘라버렸다. 이렇게 난데없이 불쌍할 수가. 명필만은 주눅들고 위축된 일수에게 언젠가 벼락같은 깨달음을 내려주어 일수가 자기 스스로 우뚝 설 수 있게 만들어주기를 바랐는데 말이다.

 

하기는 그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일 거다.  120쪽 정도의 이 얇은 책 속에 주인공의 30 여년의 세월을 조금도 허술하지 않게 짜임 좋게 담아놓은 것 말이다.  일수가 서른이 넘는 어른이 될 때까지의 삶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살면서 깨달음은 그렇게 쉽게 오지도 않고, 꼬인 인생은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고, 일수 아빠의 말처럼 인생은 별 것 아닐 수 있다라고. 하지만 스펙터클하지도 버라이어티하지도 않고, 력셔리나 판타스틱 같은 단어와는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손아귀에 잡혀 되는대로 끌려다니며 살아서는 안된다고.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작가는 일수의 탄생부터 서른을 넘긴 나이까지, 그 별 볼일 없는 삶의 여정을 모두 이야기해야 했던 건가 보다. 대부분의 어린이책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드문 경우다.

 

일수 씨는 천천히 가훈을 읽기 시작했죠. 짧아서 쓰기 좋은 가훈과 길어서 쓰기 힘든 가훈, 웃기지 않는 가훈과 웃긴 가훈, 많이 써 본 가훈과 처음 써 보는 가훈, 아이가 썼다고 치거나 부모나 조부모가 썼다고 치는 가훈의 구별은 사라졌어요. 오직 하나 '나의 가훈'으로 삼고 싶은 것과 '나의 가훈으로 삼고 싶지 않은 것'만이 있었죠. 그리고 동네 최고의 명필이 했던 질문이, 질문하던 눈빛이 떠올랐어요. 일수 씨는 거울 앞에 섰어요. 그리고 오래전 받았던 질문을 따라했어요.

"일수야, 넌 누구니?"

"그런 거 말고, 넌 누구니?"

"네 쓸모는 누가 정하지?"

다리가 저릴 때까지, 일수 씨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 보았어요. 국민, 시민, 예비군, 어머니의 하나뿐인 아들, 가훈업자, 일석 반점 단골, 문구점 아저씨인 일수 씨는 분명했어요. 하지만 그것이 아닌 일수 씨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죠.

(117쪽)

 

작가는 스스로가 명필이 되어 독자에게 묻고 있는 거다. 그리고 일어나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를 들여다 보라고 하고 있는 거다. 

책을 덮으면서 가슴이 찌리릿했다. 이 험하디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들려줘야 할 이야기는 성공한 위인의 이야기나 일류대 입학을 위한 학습전략 따위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서.  아이들이 우리들의 말에 귀를 닫는 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들려줘야 할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기껏해야 일수의 엄마처럼 아이들의 출세와 성공과 돈방석을 바라면서 마치 인생의 대단한 비법이라도 알고 있는 것처럼 거만을 떨고 있는 건 아닌지.

그냥 그저 물끄러미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넌 누구니?", "그런 거 말고, 넌 누구니?", "너의 쓸모는 누가 정하지?"하고 물어보는 걸로 충분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생생한 볼륨과 질감을 가진 책 속 인물들과의 만남이 무척 신 나고 즐겁다. 역시, 유은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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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마법서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6
장자화 지음, 전수정 옮김 / 보림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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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나는 이런 제목을 가진 책에 끌릴 수 있구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생각했다. 어린이 책들 중에는 판타지를 담고 있는 책들이 많지만, 그래도 그렇지. 바다 마법서라니. 제목부터가 신비감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느낌이 반감되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릴 때쯤엔 조금 후회가 되기도 했다. 차라리 다른 책을 빌려올걸, 하고.

 

낯선 중국작가의 이름과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이라는 시리즈 제목에 기대서 조금 시큰둥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7개의 단편과 1개의 중편이 들어있는데 모두 바다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돌고래 그림자>, <유리 고래>, <바다 상상화>, <환초 요정>, <바다로 보낸 편지>, <떠 있는 배>, <밀림의 신기한 배>, <바다 마법서>.  제목들이 적혀진 목차에서부터 비릿한 바다냄새가 날 것 같았다. 이 작가는 바다와 무슨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는 걸까.

 

<판타지 동화 세계>(이재복 지음, 사계절>라는 책을 보면 '판타지 동화는 대개 주인공이 고립된 목숨이다.'(87쪽)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책의 주인공들도 외롭고 상처입은 인물들이다. 당연히 애틋하고 아련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이야기에 감돌고 있다. 생각해보면 정신이 쏙 빠지도록 속도감 있고 흥미진진한 판타지 이야기에서도 주인공은 늘 약간의 우수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유명한 해리 포터마저도 얼마나 외롭고 끔찍한 유년기와 아동기를 지나왔던가! 그러니 이 책의 주인공들이 아무리 외롭다한들 다른 판타지 책의 주인공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인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바다 마법서>를 제외하고는 판타지의 주인공들치고 무력한 것 같다. 대부분의 판타지 동화에서 주인공은 판타지 공간 안에서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들을 해결하고 구원을 실현하는 데 비해 이 책의 주인공들은 적극적인 현실 극복보다는 현실 도피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면 판타지 세계에서 또 다른 혼란에 빠져버리거나.

 

그래서 난 주인공보다는 작가가 다루는 이야기 속 시공간에 더 매력을 느꼈다. <판타지 동화 세계>에서 저자는 판타지 동화에 나타나는 시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목숨은 두 가지 시간을 산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흐르는 시간이 있다. 자연의 시간이다. 일정한 규칙 없이 목숨의 내면에 들어 있는 간절한 바람이 무엇인가에 따라 제 맘대로 흐르는 시간이 또 하나 있다. 이 시간에는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일 수 있으리라. 마음의 시간이라 해도 좋고, 상상의 시간이라 해도 좋고, 판타지의 시간이라 해도 좋고, 간절한 바람의 시간이라 해도 좋고. 이렇게 목숨은 자연의 시간과 마음의 시간을 함께 산다.' (<판타지의 동화 세계>,175쪽)

물론 내가 매력을 느낀 것은 주인공이 경험하는 마음의 시간이며 판타지의 공간이다.  하지만 '마음의 시간'이라든가 '판타지의 공간'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살핀다 하더라도 안개에 싸인 듯 그 윤곽을 드러내지 않고, 그마저도 시시각각 형태를 바꾸는 것이 마음의 시간이자 판타지의 공간이 아닐까. 게다가 그 시공간은 개인적이고 중의적이며 해석이 모호할 수밖에 없지 않나.  이 작가는 그런 모호함을 참 잘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이 환상으로, 환상이 현실로 변하는 그 경계에서 긴장하게 만든다.

 

작가가 이 책에서 고집하고 있는 '바다'라는 배경도 마음이 쓰였다. 생각해보면 바다는 마지막 남은 미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지'라는 것,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의미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바다는 위안을 얻는 고향이자 생명의 근원지이기도 하고, 끝없는 탐험과 모험의 대상이며, 불확실한 미래라고도 볼 수 있는 변화무쌍한 공간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이 바다가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굉장히 큰 힘이 느껴진다. 데이비드 위즈너의 <시간 상자>를 읽었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물음표 하나를 남기는 미스테리 환상동화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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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8월에 교환학생으로 상하이에 갔던 큰딸이 돌아왔다. 4개월을 떨어져 지냈는데도 오늘 아침 나갔다가 들어온 딸을 맞이하는 것같은 이 기분은 뭘까. 큰딸은 귀국하기 며칠 전부터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며 좋아했는데 엄마인 나는 그냥 무덤덤했다.

남편은 한술 더 떴다. 인천공항에 딸을 마중가는데 좀 일찍 도착할 것 같다며 남편은 근처 을왕리 바닷가에 들러 일몰을 보자고 했다. 공항 주차비도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에 그러자고 했는데 그날따라 바다 너머로 지는 해가 유난히 빛이 고왔다. 남편과 막내딸은 분위기를 만끽하며 해가 바다 밑으로 잠길 때까지 있자고 했다. 나는 좀 불안했다. 큰딸은 상하이에서 유심칩을 잃어버려서 휴대폰을 정지시켜놓은 상태라 공항에 도착하면 문자도 전화도 안되는 상황, 그래서 일찌감치 가서 엄마가 기다리고 있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남편은 바닷가를 떠날 생각을 안했다.

이제 그만 가자고 성화를 부려서 겨우 을왕리를 떠났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남편은 아직 시간도 넉넉하고 석양빛도 좋은데 빨리 가자고 졸랐다고 타박이다. 하지만 웬걸, 공항주차장은 차들이 밀려서 주차할 곳을 못찾고 뱅뱅 돌아야 했는데 그 와중에 모르는 번호로 내 핸드폰이 울렸다. 불길한 마음에 받으니 아니나 다를까. 큰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남편은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계속 뱅뱅 돌고, 나는 내려서 딸이 있다는 게이트까지 달렸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고, 우리집은 다시 5인가족이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집이 되었다.

 

도서관에서 월요일마다 열리는 유아이야기방을 겨울동안 맡아서 진행하기로 했다. 요즘 유아들은, 특히 어린이집에 다니는 유아들은 귀가시간이 4~5시 즈음.  그래서 유아이야기방은 5시부터 시작한다. 요즘 5시면 춥고 어둑어둑한 시간이다. 게다가 무료 오픈된 프로그램이다 보니 출석에 대한 부담이 가볍다. 당연히 이야기방에 오는 아이들이 많지가 않다.  그 당연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인지 오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서운함보다 온 아이들의 성의가 반갑고 고맙다. 책놀이활동 준비는 혹시나 모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10명 정도의 분량을 준비하는데 어제는 딱 2명이 왔다.

독서지도니 독후활동이니.. 그런 거 딱 질색이었는데 하다보니 재미있다. 막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림책과 조금씩 멀어졌는데, 유아이야기방을 준비하면서 다시 그림책과 가까워지는 것 같아 흐뭇하다. 그림책을 읽어줄 때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는 것도 즐겁고, 재미있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터지는 아이들의 웃음도 행복하다.

오늘은 한 아이가 나를 '착하고 예쁜 선생님'이라고 불러줬다. 겨울동안만 맡아 진행하기로 했는데 정들까 걱정이다.

 

일주일에 두 번정도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온다. 늘 내가 읽을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빌려오고, 다 읽지 못하고 반납을 하곤 한다. 지난 금요일에는 이정록 시인의 시집 2권과 동시집 4권을 빌리고, 유은실 작가의 새 책 <일수의 탄생>과 이현 작가의 <오, 나의 남자들!>, 보림에서 나온 '중국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시리즈 중 하나인 장자화의 <바다 마법서>를 빌렸다.

 

 

 

 

 

 

 

 

 

 

 

 

 

 

 

 

 

 

 

 

 

 

 

 

 

 

 

 

 

 

 

 

 

 

 

 

 

 

요즘 책 읽는 시간이 많이 줄었는데, 책 욕심만은 여전한 것 같다. 그래도 예전만큼 사놓고 쌓아두지 않으니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 (그래도 여전히 조금씩 쌓아지고 있다. 다만 쌓아지는 속도와 양이 예전보다 줄었을 뿐..)

 

오래 전에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많다. 살 때는 꼭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책에 밀려서 혹은 다른 일들에 밀려서 존재감을 상실한 책들. 그런 책들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양심이 아프다. 나의 추한 물욕이 책으로 발현한다고 해서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니까. 이건 뭐, 지적 호기심이나 지적 욕구라고 예쁘게 포장해줄 수 있는 단계를 넘었다. 그저 나의 소비욕망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내린 나름의 처방이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만나면 나말고 다른 누군가가 이 책을 많이 찾아서 읽었구나, 이 책을 읽으며 뭔가를 느끼고 배운 사람들이 있겠구나, 싶어서 더 반갑다. 읽고 싶은 신간을 희망도서로 신청하고 연락오기를 기다렸다가 그 책을 첫번째로 대출받아 읽는 것도 뿌듯하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다가온다. 오늘 막내딸은 자치센타에서 하는 영어강좌와 피아노 학원에서 여는 크리스마스 다과파티에 참석하신다. 그리고 저녁에는 2년동안 함께 해온 품앗이 모임 '피노키오' 아이들과 엄마들이 모여 도서관에서 조촐한 파티를 열 계획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막내딸이 거물급 인사다. 참석해야할 파티가 세 개나 된다. 크리스마스가 놀고 먹자는 분위기로 흐르는 것 같아 찜찜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즐겨야 할 순간에 즐기지 못하는 것도 문제니까. 찜찜함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일단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기로 한다.

싼타할아버지는 이제 막 우쿨렐레를 배우기로 한 막내딸에게 입문자용 우쿨렐레를 선물해주시기로 했다.  막내딸이 싼타 할아버지에게 선물받는 우쿨렐레로 나도 우쿨렐레를 배워볼까, 말까, 궁리 중이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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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산타 할아버지가 찾아오시는 크리스마스 이브.

우리 친구들도 바쁜가봐요.

민성이와 준성이, 두 친구만 이야기방을 찾아왔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오늘은 크리스마스 책을 읽었어요.

 

<창문으로 넘어온 선물> (고미 타로 글,그림/비룡소)에서 산타할아버지는 종이 달린 헬리콥터를 타고 오세요.

루돌프는 어디 간 걸까요?  아픈 걸까요?

이 책에서 산타 할아버지는 굴뚝으로 들어오시지 않고 창문으로 선물을 휙 던져 넣어요.

근데 창문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선물을 잘못 주시니,,, 이를 어쩌면 좋아요.

산타 할아버지가 실수로 잘못 준 선물을 받고도 이 책에 등장하는 친구들은 모두 즐거워 하네요.

어쨌든 메리 크리스마스인 겁니다.

 

밤새 온 세상을 다니며 선물을 주시는 산타 할아버지는

선물을 다 주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가면 너무 쓸쓸하지 않을까요?

산타 할아버지에게도 누가 선물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산타에게도 선물을 주는 사람이 있대요.

 

<누가 산타에게 선물을 준 걸까?>(앙투완느 귈로페 글,그림/미래아이)에서도 산타 할아버지는

온세상 곳곳을 다니며 선물을 전해주느라 아주 바빠요.

북극에도 가고, 아프리카도 가고...

민성이 친구는 책 속에서 에펠탑도 찾고, 자유의 여신상도 찾아서 여기는 파리에요, 여기는 미국이에요,

척척 알아맞혔어요.

피곤에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온 산타 할아버지는 침대 위에 놓인 선물상자를 발견하지요.

누가 산타에게 선물을 준 걸까요?

바로. 바로, 바로....... 산타 할아버지의 엄마였어요!!

산타 할아버지에게 엄마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우리 민성이, 준성이 친구와 함께 산타에게 엄마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역시 엄마가 최고라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던 밤,

그러니까 첫번째 크리스마스에도 산타 할아버지가 있었을까요?

그 때는 산타 할아버지 대신 동방박사 세 사람이 있었대요.

아기 예수님은 태어나던 날 밤에 동방박사 세 사람에게 선물을 받았고,

우리 친구들은 지금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아요.

그건 우리 친구들이 아기 예수님만큼이나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인 거죠.

 

자, 다음 책에는 심술궂고 사나웠지만 크리스마스에 사랑스러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늑대 이야기가 나와요.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시공주니어)

돼지 열 두마리를 몽땅 잡아먹으려던 늑대 아저씨는 실수로 자기가 부러뜨린 트리를 밟고 넘어져 크게 다치죠.

돼지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거기에 빨간 장갑까지 선물 받은 늑대 아저씨는 그만,

돼지들의 따뜻한 사랑에 감동을 받아 착해졌답니다.

크리스마스는 선물과 함께 따끈따끈한 사랑도 함께 나눠야 제맛인 거죠.

 

책을 읽고 우리는 크리스마스 리스를 간단하게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크리스마스 리스는 그리스라는 나라에서 아주아주 옛날에 신들에게 바치는 화환에서 비롯되었어요.

영원함을 상징한다고 하죠.

지금은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들기 전에 얼마나 다양한 리스들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어요.

꽃, 구슬, 자투리천, 털실뭉치, 사탕, 자갈, 깃털, 사과, 실패, 종이...

다양한 재료로 만든 다양한 리스들을 보았어요.

 

그리고 우리도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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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갈수록 해가 너무 빨리 넘어가서 유아이야기방이 시작될 즈음엔 날이 벌써 어둑어둑해요.

찬바람 부는 어둑한 길을 걸어서 도서관에 찾아오는 친구들이 고맙고 반가워요.

 

 

 

 

 

 

 

 

 

 

 

 

 

<우리 몸의 구멍>(허은미 글, 이혜리 그림, 돌베개어린이)로 이야기방 문을 열었어요.

우리 몸에 있는 여러 개의 구멍을 통해 신체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잘 알려진 책이지요.

우리 몸의 여러 구멍 중에서 막혀 있는 구멍이 바로 배꼽이에요.

배꼽은 아무 쓸모도 없는데 왜 있는 걸까요?

 

어떤 거인아저씨는 그 아무 쓸모 없는 배꼽이 없다고 슬퍼하고 있대요.

왜 그럴까요?

 

 

 

<거인 아저씨 배꼽은 귤 배꼽이래요>(후카미 하루오 글,그림/한림출판사)를 읽어주는데

거인 아저씨와 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서 우리 친구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했어요.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까 궁금한 점이 생겼어요.

거인 아저씨는 배꼽만 없는 게 아니에요.

신발도 없고, 바지도 없고, 셔츠도 없고, 머리카락도 없어요.

근데 왜 그 중에서도 배꼽이 없는 게 속상하고 슬펐을까요?

 

그 답은 이 책에 있었어요.

 

 

 

<돌돌돌 내 배꼽> (허은미 글, 김선숙 그림, 웅진주니어)은 배꼽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알려줘요.

그리고 배꼽이 '사랑의 기념품'이라는 것도 알려주지요.

 

아하, 그러니까 거인 아저씨는 배꼽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분이었던 거에요.

사랑의 기념품이 없다고 생각하면 정말 슬픈 일인 거죠.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들의 사진도 보고 동물들의 태아(?) 사진도 같이 보았어요.

그리고  엄마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의 나를 생각하며 만들기를 했어요.

 

 

 

태아의 성장을 6단계로 나누었더니 한 친구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대요.

"엄마,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여섯달이면 끝나는 거야?"라고.

정말 똑똑하고 예리한 우리 친구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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