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8월에 교환학생으로 상하이에 갔던 큰딸이 돌아왔다. 4개월을 떨어져 지냈는데도 오늘 아침 나갔다가 들어온 딸을 맞이하는 것같은 이 기분은 뭘까. 큰딸은 귀국하기 며칠 전부터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며 좋아했는데 엄마인 나는 그냥 무덤덤했다.

남편은 한술 더 떴다. 인천공항에 딸을 마중가는데 좀 일찍 도착할 것 같다며 남편은 근처 을왕리 바닷가에 들러 일몰을 보자고 했다. 공항 주차비도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에 그러자고 했는데 그날따라 바다 너머로 지는 해가 유난히 빛이 고왔다. 남편과 막내딸은 분위기를 만끽하며 해가 바다 밑으로 잠길 때까지 있자고 했다. 나는 좀 불안했다. 큰딸은 상하이에서 유심칩을 잃어버려서 휴대폰을 정지시켜놓은 상태라 공항에 도착하면 문자도 전화도 안되는 상황, 그래서 일찌감치 가서 엄마가 기다리고 있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남편은 바닷가를 떠날 생각을 안했다.

이제 그만 가자고 성화를 부려서 겨우 을왕리를 떠났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남편은 아직 시간도 넉넉하고 석양빛도 좋은데 빨리 가자고 졸랐다고 타박이다. 하지만 웬걸, 공항주차장은 차들이 밀려서 주차할 곳을 못찾고 뱅뱅 돌아야 했는데 그 와중에 모르는 번호로 내 핸드폰이 울렸다. 불길한 마음에 받으니 아니나 다를까. 큰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남편은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계속 뱅뱅 돌고, 나는 내려서 딸이 있다는 게이트까지 달렸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고, 우리집은 다시 5인가족이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집이 되었다.

 

도서관에서 월요일마다 열리는 유아이야기방을 겨울동안 맡아서 진행하기로 했다. 요즘 유아들은, 특히 어린이집에 다니는 유아들은 귀가시간이 4~5시 즈음.  그래서 유아이야기방은 5시부터 시작한다. 요즘 5시면 춥고 어둑어둑한 시간이다. 게다가 무료 오픈된 프로그램이다 보니 출석에 대한 부담이 가볍다. 당연히 이야기방에 오는 아이들이 많지가 않다.  그 당연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인지 오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서운함보다 온 아이들의 성의가 반갑고 고맙다. 책놀이활동 준비는 혹시나 모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10명 정도의 분량을 준비하는데 어제는 딱 2명이 왔다.

독서지도니 독후활동이니.. 그런 거 딱 질색이었는데 하다보니 재미있다. 막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림책과 조금씩 멀어졌는데, 유아이야기방을 준비하면서 다시 그림책과 가까워지는 것 같아 흐뭇하다. 그림책을 읽어줄 때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는 것도 즐겁고, 재미있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터지는 아이들의 웃음도 행복하다.

오늘은 한 아이가 나를 '착하고 예쁜 선생님'이라고 불러줬다. 겨울동안만 맡아 진행하기로 했는데 정들까 걱정이다.

 

일주일에 두 번정도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온다. 늘 내가 읽을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빌려오고, 다 읽지 못하고 반납을 하곤 한다. 지난 금요일에는 이정록 시인의 시집 2권과 동시집 4권을 빌리고, 유은실 작가의 새 책 <일수의 탄생>과 이현 작가의 <오, 나의 남자들!>, 보림에서 나온 '중국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시리즈 중 하나인 장자화의 <바다 마법서>를 빌렸다.

 

 

 

 

 

 

 

 

 

 

 

 

 

 

 

 

 

 

 

 

 

 

 

 

 

 

 

 

 

 

 

 

 

 

 

 

 

 

요즘 책 읽는 시간이 많이 줄었는데, 책 욕심만은 여전한 것 같다. 그래도 예전만큼 사놓고 쌓아두지 않으니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 (그래도 여전히 조금씩 쌓아지고 있다. 다만 쌓아지는 속도와 양이 예전보다 줄었을 뿐..)

 

오래 전에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많다. 살 때는 꼭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책에 밀려서 혹은 다른 일들에 밀려서 존재감을 상실한 책들. 그런 책들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양심이 아프다. 나의 추한 물욕이 책으로 발현한다고 해서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니까. 이건 뭐, 지적 호기심이나 지적 욕구라고 예쁘게 포장해줄 수 있는 단계를 넘었다. 그저 나의 소비욕망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내린 나름의 처방이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만나면 나말고 다른 누군가가 이 책을 많이 찾아서 읽었구나, 이 책을 읽으며 뭔가를 느끼고 배운 사람들이 있겠구나, 싶어서 더 반갑다. 읽고 싶은 신간을 희망도서로 신청하고 연락오기를 기다렸다가 그 책을 첫번째로 대출받아 읽는 것도 뿌듯하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다가온다. 오늘 막내딸은 자치센타에서 하는 영어강좌와 피아노 학원에서 여는 크리스마스 다과파티에 참석하신다. 그리고 저녁에는 2년동안 함께 해온 품앗이 모임 '피노키오' 아이들과 엄마들이 모여 도서관에서 조촐한 파티를 열 계획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막내딸이 거물급 인사다. 참석해야할 파티가 세 개나 된다. 크리스마스가 놀고 먹자는 분위기로 흐르는 것 같아 찜찜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즐겨야 할 순간에 즐기지 못하는 것도 문제니까. 찜찜함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일단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기로 한다.

싼타할아버지는 이제 막 우쿨렐레를 배우기로 한 막내딸에게 입문자용 우쿨렐레를 선물해주시기로 했다.  막내딸이 싼타 할아버지에게 선물받는 우쿨렐레로 나도 우쿨렐레를 배워볼까, 말까, 궁리 중이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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