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동물을 좋아한다. 꼭 반드시 챙겨보는 TV 프로그램은 일요일 아침에 하는 '동물농장'과 EBS에서 방송하는 '동물일기'이고,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도 누가 강아지를 데리고 나오면 그 강아지를 좇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얼마 전에는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갔는데 노란 구렁이를 만져보고 사진을 찍는 체험이 있었지만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그랬더니 울먹울먹하며 아쉬워했고, 그걸 본 관계자 분께서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만져보게 해주겠다'고 하셔서 체험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어이 구렁이를 쓰다듬어주고 왔다.
그런 막내가 강아지를 키우자, 고양이를 키우자 졸라대는 것은 당연지사. 두 달쯤 전에 냉면을 먹으러 충무로 근처를 지나다가 길가에 주욱 늘어선 애견동물 가게를 보고는 강아지를 사달라고 얼마나 떼쓰고 졸라대던지. 네가 똥오줌 다 치워줘야 한다고 윽박질러도 그러겠단다, 자기가 똥오줌 다 치우고 목욕도 시키고 산책도 시키고 밥도 주고 다 할 테니까 사달란다. 오마이갓~!!! 난 세 아이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차단 말이닷~!!! 강아지를 키우려면 장난감도 다 치워야 한다고 하자 그제서야 멈칫, 잠시 곰곰 생각에 잠기더니 그럼 자기가 17살이 되면 그 때는 꼭 사달란다. 그렇게까지 물러서는데 나도 그러마 했다.
얼마 전 같이 이마트에 나갔다. 내가 장을 보는 사이에 오빠랑 애완동물 코너에 가있던 막내가 햄스터를 사달란다. 안된다고 했더니 그럼 물고기를 한 마리만 사달란다. 물고기 한 마리를 키우기 위해 들여놓아야 할 장비며 소품들이 얼마나 되는지 아이는 모르니까. 잠깐 실갱이를 하다가 퍼뜩 떠오른 생각. 우리, 길냥이 밥 사다가 줄까? 아이의 표정이 환해진다. 앗싸, 성공이다!!! 그래서 사온 고양이 밥.
생전 처음 사본 고양이밥이다. 내가 어릴 때 집에서 개나 고양이를 많이 키웠었지만 집에서 가족들이 먹다 남긴 음식들을 줬지 돈 주고 사료 사다 먹이진 않았었다. 세 개 묶어서 2850원이었는데 씨푸드칵테일과 연어+참치로 총 6파우치를 사왔다. 지난 금요일 오후에 한 봉지 뜯어서 에어컨실외기와 베란다에서 화단으로 통하는 나무 계단 사이에 물과 함께 놓아 두었더니 한동안 파리들이 날아와 잔치를 벌였다. 막내가 파리들이 와서 먹는다고 잔뜩 실망했었는데 해가 지고 7시쯤 나가보니가 어느 새 몰래 와서 소리도 없이 싹싹 다 먹고 갔다. 마치 설거지를 한 듯 접시가 반짝였다. 막내가 얼마나 신기해하던지. 솔직히 나도 좀 신기했다. 뿌듯했고.
오늘로 그 때 사온 파우치형 사료는 다 먹었다. 그래서 그저께 인터넷으로 고양이 사료를 주문했다. 고양이 사료도 가격이 천차만별. 그 중 싸고 양이 많은 것으로 주문했다. 날이 추워지면 습식 사료는 얼어버릴 걸 같기도 해서 건식 사료가 필요할 것 같았다. 길냥이가 건식사료에 익숙해질 때까지 섞어서 줄 캔형 습식사료도 같이 주문. 오늘 도착한 사료가 이거다.
왼쪽 사료가 7.5kg에 16990원. 생각보다 양이 엄청 많구나. 저 캔사료는 24개 한 박스에 12900원. 오늘 건식사료를 섞어서 처음 줘봤는데 또 싹싹 다 먹었다.
길냥이 밥을 챙겨주면서 길냥이와 마주친 건 딱 세 번. 처음엔 밥을 주고나서 베란다에서 다 먹었나 보려고 내다 보았는데 길냥이가 아직 식사중이었던 것. 눈이 딱 마주쳤는데 그대로 도망가버렸다. 식사를 방해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래서 얼른 거실로 들어왔는데 다행히도 나중에 다시 와서 마저 식사를 다 했다. 또 한 번은 다 먹었겠지, 하고 밥그릇을 회수하려고 나갔는데 그 날따라 늦게 와서 식사 중이었나 보다. 또 본의 아니게 식사를 방해. "어, 미안미안.. 그냥 맛있게 먹어. 나 들어갈게"하고 자리를 피해주었다. 세번째 마주친 건 오늘. 밥을 주려고 막내랑 같이 나갔더니 이런,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우리를 보고 또 화단 나무 뒤로 숨길레 그냥 밥과 물을 놔주고 돌아왔다.
막내는 언제쯤 길냥이와 친해질 수 있을까, 하고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겨울엔 길냥이가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상자로 집을 만들어줘야겠다고 벼르고 있다. 담요에 핫팩까지 넣어줄거란다.
난? 길냥이 밥주기가 일상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나 할까? 길냥이가 언젠가 나를 알아봐주다면 무척 기쁠 것 같다. 이제 길냥이가 왔다가 밥이 없으면 서운해할까봐, 혹은 "뭐야? 오늘 밥 없는 거야?"하며 짜증을 낼까봐 걱정되어서 오후 5시30분에서 40분 사이라는 식사시간을 꼭 지켜주려고 애쓰고 있다. 게다가 밥만 챙겨주면 되는 동물친구라... 아이 셋을 돌봐야 하는 나로서도 나쁘지 않고, 막내는 길냥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니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