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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자전거 여행 ㅣ 창비아동문고 250
김남중 지음, 허태준 그림 / 창비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서 이현 작가 책과 함께 이 책을 빌려왔는데 남편이 꺼내 읽기 시작하더니 아주 푹 빠져서 읽는다. 다 읽기를 기다렸다가 '책 어때?"하고 물었더니 "뭐, 그냥..." 워낙 세심한 표현을 안 하는 사람이고 칭찬에도 인색한 사람이라 '뭐, 그냥' 정도의 대답이면 '흠 잡을 데 없다' 거나 '아주 괜찮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무관하다는 걸 안다.
그날 저녁식사를 마친 후 갑자기 남편이 아들에게 대뜸 "이번 여름에 아빠랑 자전거 여행 해볼까? 한 일주일이나 열흘 쯤."하고 묻는다. 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 남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그러다가 뭔가 미심쩍다는 투로 마지못해 '네..."하고 대답한다. 정말 가려는 걸까? 아니면 자전거 여행에 대한 책을 읽고 충동적으로 나온 일종의 감상일까? 어느 쪽이든 저 책이 '뭐, 그냥..'정도가 아니라 남편의 마음에 지지직!하고 통했구나 싶었다. 사실 남편은 대학1학년 여름에 선배들과 정말로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했었으니까 아마 책을 읽는 동안 그 때의 기억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해본 사람이라 저 책에 지나친 뻥이 들어가 있다거나 사실적이지 않다면 오히려 몰입이 더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 텐데,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걸 보니 책이 정말 괜찮은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처 읽기로 했던 이현 작가의 책들을 잠시 미루고 이 책을 집었던 것이다.
거친 세상과 몸을 부비며 살다보면 사람이 모질어지기도 한다. 특히 부모라는 사람들은 때로 투사가 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의 속내를 미처 헤아리지 못할 때도 많고 밖에서 받은 상처의 아픔을 아이에게 풀 때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 호진이의 부모도 그랬을 거다. 아빠가 엄마를 '교통사고 난 자동차를 보는 것'(p.10)처럼 바라보고 그 사이를 호진이는 '고장 난 신호등'(p.17)처럼 서서 '길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가 되어 버린'(p.17) 기분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서있어야 했다. 부모가 이혼하려 한다는 걸 알게 된 호진이는 그 답답한 현실에서 도망치듯 집을 나와 삼촌을 찾아간다.
삼촌 신석기는 호진이의 부모에게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그러나 '베짱이처럼 빈둥빈둥 인생을 낭비'(p.21)하는 '정신 나간 놈'(p.21) 취급을 받는 삼촌은 실제로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자전거 여행을 하며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호진이의 아픔을 알고 나서는 자전거를 꺼내주며 고민을 멀리 두고 즐겁게 땀을 흘리는 법을 가르쳐주기까지 한다. '인생의 황금기를 도둑맞았다'며 슬퍼하는 아빠나 삶이 지긋지긋하고 외롭다는 엄마보다 훨씬 더 건강한 삶을 꾸리고 있었던 것이다.
가고 싶은 곳에 가는 동안은, 가려고 하는 곳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할 일이 있다. 꼼짝하지 않고 고민만 하는 건 고통이다. 빨리 아침이 오면 좋겠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p.123)
호진이는 삼촌의 자전거 여행을 함께 하면서 높다란 가지산과 미시령을 넘고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고 '봄바람에 벚꽃이 날릴 때 와 보면 눈물 날'(p.72)정도로 아름답다는 섬진강변을 달리며 자기를 발견하고 성장한다. '사람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없다'는 엄마의 말이 100%의 진실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삶도 자전거 타기처럼 남의 속도를 쫓아가려 하지 말고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그저 멈추지 않고 페달을 굴리면 된다는 것, 넘기 힘든 높은 산을 만났을 때엔 산을 이기려들지 말고 나와 싸워 이겨나가면 된다는 것, 그렇게 자전거 여행에 모인 사람들 하나하나가 자기만의 아픔과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전거 여행 중간중간 호진이는 엄마 아빠와 통화를 시도한다. 아빠한테 맞은 곳이 아직도 아프다고 자기를 드러내기도 하고, 아빠의 인생의 황금기를 훔쳐간 사람이 나와 엄마냐고 묻기도 하고,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삼겹살을 구워먹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떠나기 전과 똑같은 집이라면 돌아가기 싫다.'(p.106)는 호진이의 말처럼 '돌아가고 싶을 만큼 그리운 것 하나도 없'(p.106)는 그 장소에서 엄마 아빠가 변화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래서 난 호진이가 결심한 마지막 계획에 박수를 보낸다. 그 계획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호진이네 가족이 좀 더 '가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가까워질 수 있지는 않을까. 적어도 서로 미워하며 헤어지는 최악의 결말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호진이도 동화처럼 행복한 결말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좀 더 성숙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산 하나를 넘었다고 해서 다른 산이 고개를 숙이지는 않는다. (p.186)
호진이는 자전거 여행을 통해서 이런 진실까지도 알아버린 아이니까 말이다.
요즘 이현 작가의 책들을 읽고 이 책까지 읽었더니 아이들의 속내를 표현해주는 글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이 동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이것 아닐까. 아이들의 책을 읽으면 아이들의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 어른들이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알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정말 남편은 아들과 자전거 여행을 떠날까? 무뚝뚝한 남편과 아직 참 많이 어린 아들. 여행에 나섰다가 부자지간이 원수지간이 되어 오는 건 아닐지 난 성급한 걱정으로 앞서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