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비가 내리던 어제, 흙살림에서 꾸러미가 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요일마다 채소와 과일, 계란이나 간식거리들이 택배로 배송되어 온다. 내가 주문한 물품이 오는 게 아니라, 그 쪽에서 알아서 보내주는 것을 받는건데 덕분에 지난 가을엔 아욱국을 자주 끓여먹었고, 유황훈증을 하지 않고 곶감 덕장에서 자연건조시킨 곶감을 맛보기도 했다. 어제는 유정란과 두부, 딸기, 시금치, 쪽파, 깐마늘, 무가 왔다.
현관문을 열고 꾸러미 상자를 받으며 택배기사분에게 죄송했다. 모두 맞기 꺼려하는 저 비를 우비도 입지 않고 생계때문에, 아이 교육비때문에, 자기일에 대한 책임 때문에 우리집까지 왔을 거라 생각하니, 늘 목요일이면 받던 꾸러미 상자가 더 크고 무거워 보인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말로만 했었는데, 어제는 고개까지 꾸벅 저절로 숙여졌다.
목요일 오전은 우리 아파트 재활용품을 내놓는 날이다. 청소아줌마들과 경비아저씨들이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간 재활용품을 정리하느라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저 비는 저 비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팔자좋은 높은 사람들이 맞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가슴이 쓰렸다.
꾸러미에서 온 쪽파를 까는데 꼬맹이가 도와주겠다며 나선다. 눈 맵다고, 손 더러워진다고 말려도 극구 곁에와 쪽파를 잡는다. 조금 까다가 관두겠지 했는데, 웬걸, 눈이 맵다면서도 끝까지 앉아서 도와주었다. 많이 컸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지난 주에 꾸러미로 온 열무와 얼갈이가 그대로 있어서 꼬맹이딸이 까준 쪽파를 넣어서 얼른 열무물김치를 담갔다. 남은 쪽파로는 냉동실에 있던 홍합살과 굴, 오징어를 넣고 파전을 부쳤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돌아온 아들녀석이 막내와 같이 앉아 맛있게 먹어주었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불길할수록 이런 저녁식탁을 더욱 지켜주고 싶어진다.
이보다 더한 징후가 나타나도 우리는 우리의 일상중에 좋은 쪽만 골라서 살아갈 수는 없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뭔가 석연치않고 찝찝하더라도 옆지기는 일을 하러 나가고, 택배기사는 상자를 들고 뛰어다니고, 우리동네 야쿠르트 아줌마는 집집마다 야쿠르트를 넣은 후 아파트 입구에서 남은 야쿠르트를 팔기 위해 서있고, 환경미화원들은 도로를 비질하고, 버스는 새벽부터 밤까지 정류장을 빼놓지 않고 정해진 노선대로 운행하겠지.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일상이 깨지지 않도록, 아주 작은 실금도 가지 않게 지켜주려는 노력을 더 더 보고싶다. '아, 저 사람들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우리의 이 사소한 일상들을 소중하게 여겨주고 있구나. 지켜주려고 저렇게 애를 쓰고 있구나.'하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 그러면 좀 위로가 될텐데. 아직도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게 나도 참 신기하긴 하지만.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 소식이 또 들려온다. 그 지점까지 가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며 공부했을텐데, 어쩌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지경까지 몰렸을까. 어쩌다가 우리는 이 지경이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