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몸이 천근만근이다. 도서관에 가서 비니를 위한 문화강좌를 하나 신청하려고 계획했던 날이었다. 집을 나서기 싫었는데 '선착순 마감'이라는 압박감에 못이겨 비니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도서관에 이르는 언덕길이 유난히 힘들었다. 도서관 가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비니 데리고 한여름에 문화강좌 듣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다가 중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솟아올랐건만 그래도 나선 길인데 끝을 봐야지 싶어 무거운 걸음을 떼었다. 중간 중간 비니가 안아달라고 매달렸다. 그 때마다 "비니야, 엄마가 힘들어서 비니를 못안아줄 것 같아. 비니를 안으면 엄마가 도서관에 못 갈지도 몰라. 그러니까 걸어가자."했더니 신통하게도 다시 걷곤 했다.
도서관에 들러 '퍼포먼스 미술'강좌를 신청하고 가족열람실에 들어가 비니에게 그림책 몇 권을 읽어주고, 15일에 도서관에서 열리는 야외음악회 티켓을 배부 받고, 매점에서 과자랑 주스 사서 야외 휴식 공간에 앉아 먹으며 비니랑 잠시 쉬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하더니 발바닥, 발목, 무릎, 허리가 지릿지릿 저리고 뻐근하고.. 마치 얼음 꼬챙이가 발바닥부터 허리까지 꽂히는 것 같았다. 장농에서 양모이불을 꺼내어 덮고는 뽀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비니랑 한숨 잤다. 자고 일어난 다음에도 여전히 몸이 말이 아니다. 체온계를 꺼내어 열을 재어보니 체온계 눈금이 39도 가까이까지 뻗어 있다.
몸살인가 싶기도 하고, 한 5,6년 전에 앓았던 불명열 기억도 나고... 5,6년 전에도 거의 보름 이상을 40도가 넘도록 열이 났었다. 한여름이었는데 이가 딱딱 소리가 나도록 부딪치며 떨려서 작은 방에 보일러를 틀고 오리털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타이레놀을 삼키며 지냈었다. (나도 참 미련도 하지) 열이 내리고 나서 병원에 갔더니 원인이 나타나지 않는 불명열이라고 했다. 검사 하느라 피만 서너번 빼고, 해열제 한 알 못 받아 먹었었다. 다시 열이 오르면 응급으로라도 병원에 와야한다고 했었는데 그 이후로는 다시 열이 오르지 않았다.
요즘 며칠, 기운이 없긴 했다. 오죽하면 기운 좀 챙겨야겠다 싶어 전날 마트에서 삼계탕 재료를 사다놓았었으니까... 저녁 때가 가까이 되자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삼계탕을 끓이고 밥을 지었다. 어디 중국집에라도 전화해서 시켜 먹고 싶은 생각이 났으나 기운을 차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삼계탕을 끓였던 거다. 그리곤 다시 잠... 지니가 비니를 봐줬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렇게 12일 화요일 하루를 푹 쉬고 나자 다음 날 아침 산뜻하게 일어났다. 하루만에 다 나은 걸 보면 몸살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할머님 장례 치르고나서 계속 제대로 쉴 기회가 없었던 탓에 피곤이 좀
앃였다가 폭발을 했나보다.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 건지... 겨우 그정도 일했다고 그렇게 나가 뻗을 게 뭐람.. 아무튼, 몸살도 불명열도 아니었던 게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