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욜로욜로 시리즈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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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 작가의 신간을 읽었다. 제목이 좀 길다.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극본의 형식을 차용해서 - 전적으로 극본은 아니다 - 쓰여진 이 소설은 M이 마흔여덟 번째 면접을 보기 위해 7월의 뜨거운 골목길로 나서는 것으로 첫 장면을 시작한다. 세상에, 마흔여덟 번째 면접이라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서류심사에서의 탈락이 있었을 테니, M이 감당했을 좌절의 깊이가 아득하다.

 

나만 빼고 지들끼리 잘 돌아가는 것 같은 세상은 너무 잔혹하다. 어떻게 해야 나도 그들과 같은 편이 설 수 있는지, 그 세계가 아무리 비정하고 냉혹하고 내 정신과 육체를 갉아먹는다 해도 아예 선택받지 못한 외부자보다는 피폐한 영혼의 내부관계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들끓는다. 그 욕망을 실현하기까지 한 개인이 느끼는 피 말리는 강박과 조바심은 취업을 원하는 이 시대 구직 청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건가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뜨겁고 불안한 욕망의 실현을 위해서, 거기 그들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여기선 회사)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자(혹은 그렇게 보이고자)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다. 이 소설이 '극본'의 형식을 차용한 이유가 바로 이게 아닐까.


M    면접이에요?

사장  아, 이 친구 참, 그게 뭐 그리 중요해?

M    확실히 알고 가야 합니다. 면접인지 아닌지.

사장  왜?

M    면접이라면...... 완전히 다르게 행동해야 하니까요.

사장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과자 회사의 연수 합숙 종료 이틀 전에 도망친 후 '복잡한 계약에 따른 고용관계'를 피해 면접 절차가 필요치 않은 단기직, 전단지 배포일을 하던 M이 자판기 관리 일을 소개해주는 야식집 사장과 나눈 대화다. 마음이 서늘해졌다. 사회가 원하는 사람으로 보이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 자아분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연극무대에 선 배우가 보여주는 모습이 실제 현실의 모습과 다른 것처럼.  과자보다 질소를 빵빵하게 채운 화려한 빛깔의 과자봉지처럼,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실제의 나(포장에 비해 보잘 것 없는 과자)와 상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부풀린 포장 사이에 존재하는 그 허무한 부피에 괴로워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그 길이 내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적어도, 길을 잃지 않았다고 착각하며 살 수 있다. 빵빵하게 부푼 화려한 과자봉지 안의 공허한 부피까지 모두 ''라고 세뇌하고 그 포장의 기술까지 나의 능력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날카로운 무언가에 찢겨 질소가 빠져버리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숨 막히게 촘촘하고 단단하고 폐쇄적인 사회라는 그물조직에 바람이 통하는 작은 구멍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쉽게 뚫릴 리 없겠지만 숨 좀 쉬며 살고 싶다. 숨 좀 쉬며 살게 해주고 싶다. 우리집 큰애들 나이가 취업과 무관하지 않아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큰딸과 친한 친구 6명 중 딱 절반인 3명이 취업에 성공했는데, 그 중 2명은 벌써 직장 스트레스로 괴로워 한다. (한 명은 간호사고, 또 한 명은 어린이집 교사다.) 다른 3명은 기약없는 취준 공부 중이다.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거나 토익을 공부한다고 한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아이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다. 그 아이들에게 현실 세계는 방향도 방위도 알 수 없는 일그러진 시공간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나는 어디에 있는 거죠?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요? 너무 어두워서 나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요. 여기가 어딘지도 알 수 없어요. 그러니 그렇게 보고 있지만 말고 제발 알려줘요.

 

우리가,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련할 수 있을까? 묵묵부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모두를 불편하고 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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