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친구는 전우익이면서 만날 좌익만 안 하는기요."하는 친구의 우스개."

 한 때 사회안전법에 걸려 주거제한을 당한 보호관찰자.

 

하지만 이 책 속에서 선동자요 시위자인 그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다만 우직하고 순박하게 나라의 미래와 안위를 걱정하는 농부가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전우익님이 지인인 스님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담은 것이다.

  편지 속에는 그가 농사와 자연을 통해 깨달은 이치들을 하나하나 세상 이야기와 함께 풀어간다.

 

찬 두개, 밥 한공기 소박한 시골 밥상을 보는 것 같고, 소담히 핀 한 무더기 들꽃을 보는 것 같은 흐뭇하고 애틋한 느낌을 준다.

 

욕심이 담기지 않은 삶을 살기란 촌 생활에서도 쉽지 않은 일.

 그에게 그런 생활이 가능한 것은 그가 시대착오적인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 자연인이기 때문일 것 같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6쪽. 스님 술에다 수유를 담구어 석 달쯤 두면 약주가 됩니다. 약효는 수렴, 자양강장, 식욕 증진 등인데 술을 담그면서 생각해 봤어요. 사람도 변할까? 술은 담그다 보면 왕왕 썩기도 해요. 부패, 타락, 왜소화가 아닌 참된 의미의 인간 개조가 과연 가능할까? 이건 사람에 대한 믿음 같기도 합니다.

 

같은 재료를 이용해 같은 단지에 넣어도 어떤 단지는 약주가 되고 또 어떤 단지는 썩어버린다 합니다.

 그것은 사람도 똑 같아서 모두 같은 사회에서 모두 같이 사는데 누구는 청렴하고 누구는 부패하고, 누구는 넉넉하고 다른 누구는 인색하기가 개 먹는 밥그릇까지도 채뜨릴 기세입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는 것일까요?

 잘 살면 모두 행복한 세상이 올 줄 알았답니다. 하지만 잘 살게 될수록 불행한 사람은 더 느니 이것은 어찌된 노릇일까요?

 

 누가 뭐래도 '믿음'에 갈급한 세상으로만 보입니다.

 사방에 '사랑'이 넘쳐흐르지만 모두 겉만 번지르한 가짜 사랑투성이지 진짜 사랑은 나날이 메말라갑니다.

 

참된 의미의 인간 개조란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저자의 물음을 홀로 되뇌어 봅니다.

 

30쪽. 우리는 통계 숫자로 사는 게 아니라, 그해 여름 그해 겨울을 살기에 언제나 그해 겨울과 그해 여름이 가장 춥고 더워요.

 

하하, 정말 그렇습니다.

 매해 여름은 더워서 못살겠고, 매해 겨울은 어찌나 매서운지 여름엔 겨울이 걱정이고 겨울엔 여름이 걱정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이에겐 이렇게 말을 보탭니다.

 그만큼 더워도 그만큼 추워도 그동안 잘 지내왔는데 무얼 새삼스레 걱정하느냐구요.

 

통계에 55년만의 강추위다 무어다하니 너도나도 유난히 추운 모양입니다.

 사실 겨울은 늘 추우니까 겨울인데 말이지요.

 걱정해도 더워지지 않으니 그저 덤덤히 맞고 보낼 뿐입니다.

 

67쪽. 삶 자에서 가장 작은 점 하나 떼어 보자고 그랬더니 싦이 돼요. 싦이란 사전에도 없는 아무것도 아니래요. 확실히 싦은 싦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작은 점 하나 찍으니 '삶'자가 되어요. 삶에서 점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요? 점 하나는 누구나 뗄 수도 찍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참 살에 닿고, 뼈에 새겨지는 이야기입니다.

 단 하나의 점을 떼어낸 것으로 '삶'이 '싦'이 되면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니요.

 우리가 '삶'을 살아 간다지만 정말 우리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 가끔 되돌아봅니다.

 혹시 점 하나를 떼어내고 의미없는 '싦'을 계속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요.

 

바쁘다고 '삶'에서 떨어진 점 하나를 두고 서둘러 떠나오지는 말아야겠습니다.

 그랬다가는 정말 남은 삶이 의미 없는 '싦'이 되어버릴테니까요.

 바빠도 힘들어도 '우리 삶'이 제일입니다.

 

73쪽. 도랑물이 바다에 이르자면 많은 우여곡절이 있듯, 세상과 인간도 완성을 위해서는 숱한 고비를 넘어야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끊임없이 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랑물은 흐르지 않으면 고여 썩거나 곧 말라버립니다.

 세상도 사람도 마찬가지지 싶은 것이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나날이 활기를 잃어 무기력해집니다.

 살다보면 우리의 흐름을 가로막는 수 많은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이, 돈이, 지위와 권력이 그 모든 욕심이 마음속의 찌꺼기가 되어 길을 막습니다.

 

그러니 그래도 흘러야 합니다. 바다로 넓은 세상의 소통의 장으로 매일 매일 나가야 합니다.

 

86쪽. 우린 비록 작고 작을지라도 발광체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워낙에 빛나는 발광체들이 나날이 떠오르다보니 우리는 그 빛나는 불빛에 눈이 멀어 달려들 뿐인 부나방이 되어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자신도 빛을 낼 수 있는 발광체라는 사실을 잊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들의 빛을 반사할 뿐인 반사체가 되어있지는 않았나 역시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빛과 우리의 색깔을 가지고 있을 때 가장 빛나고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빛 낼때 세상은 더욱 찬란한 빛을 띄게 되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107쪽. 상 차리는 데 힘을 다 쓴 나머지 지쳐서 설거지를 못하는지, 설거지를 시시하게 여겨서 그런지, 저도 설거지를 며칠 만에 한 번 합니다만, 그때그때 하는 것이 좋은데도 잘 안돼요.

 

사실 이 책에 실린 편지들에는 편지한 이의 사상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럴 밖에요.

 그가 그의 생각을 적은 것인데 그의 사상이 담기지 않았다면 되려 이상하기도 하겠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설거지는 행사 혹은 시위나 집회따위의 뒷정리 이야기입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 크게 행사를 치러놓고 행사 뒤를 보면 남는 것은 늘 쓰레기와 무질서하고 통제되지 못한 혼란의 흔적 뿐입니다.

 

이것은 행사만을 중요시하고 뒤처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때문일까요?

 아니면 정말 행사를 준비하고 치르느라 온 힘을 쏟은 나머지 뒷정리할 여력은 없었던 것일까요?

 

크고 활기있게 일을 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가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야만 끝이 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온 뒤도 돌아봐야겠습니다. 

 

130쪽. 사람도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무엇이 착한 사람에게 독한 것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일까요?

 분명 교훈적인 이야기이고,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입에 쓴 것이 차는 기분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역시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허허실실과 헤헤실실은 분명 다르니까요.

 

허와 실을 적절히 삶에 담아 낼 수 있는 지혜를 지녀야겠습니다.

 웃음과 여유가 분명 미덕의 으뜸에 오를만 하지만 화를 내야할 때는 단호하고 분명해야겠습니다.

 

총 130쪽의 짧은 이야기를 읽었는데 곳곳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모아놓으면 두배가 되어버릴 것 같은 책이었네요.

 

손으로 땅을 일구고 계절 따라 씨를 뿌리고 가꾸며 저자는 농사꾼으로 살고 있습니다.

 1990년 쯤 보낸 이 편지에서도 '물자가 너무 흔하다'는 말을 자주하는 그가 지금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할까요?

 혼자만 잘 살면 된다, 나만 잘 살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제는 제법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자는 그 때보다 더 흔해졌지만 못살겠다는 사람은 더 늘어버린 오늘날을 봅니다.

 시대착오적인 사람의 글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가만히 읽으며 생각해보면 시골에서 농사나 짓고 있는 사람의 글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깊은 맛이 납니다.

 

배웠다고 무엇을 안다고 꼭 나서서 손을 쳐들어야 눈에 띄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가만히 걷다보면 어떤 온실의 꽃보다 더 아름답고 놀라운 들꽃을 발견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곳에 그 순간에 단지 '존재'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빛나도록 아름다운 것입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해보며 그만 감상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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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
한상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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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피할 수 없는 것. 죽음, 세금, 외로움.

 

 바쁠 망(忙) 현대인을 대표하는 특성, 마음을 잃어버리다.

 

출세와 등산의 공통점

 1) 오른다.

 2) 곧 내려가야 한다.

 3) 높이 오를수록 더 외롭다.

 

한상복 님의 책에는 자전거가 자주 등장한다.

 아마 자전거 타기가 삶과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아야만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즉, 앞으로 나가기 위해선 균형을 잡아야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삶이 균형을 잃고 삐걱이면 앞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외로움의 발견을, 2장에서는 외로움과 마주하기를, 3장에서는 외로움 속에서 균형잡기를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그 외로움을 뛰어넘기라는 제목이다.

 

 한상복 님의 책은 보통의 자기계발 서적과 차별화 된 점이 눈에 띄는데 그것은 한 권의 책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면서 그 안에서 맞물리고 부딪히면서 어떤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삶과도 닮아있다.

 

삶은 한가지 주제 딱딱 끊어지는, 확실히 구분되는 경계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처럼 여러 주인공들의 삶의 단편을 보여주며 그들의 삶의 모습이 여러가지 인연을 통해 공감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거쳐 어떻게 성장해가는가를 이야기해가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래, 나도 그랬어. 그 때는 정말 그랬어." 하며 격한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다.

 

119쪽. 함께 있어도 외로울 뿐이라면, 그것은 과연 사랑일까.
 

때로 외로운 것과 늘 외로운 것은 분명 구분되어야 한다.

 늘 외롭다면 그것은 어긋난 사랑이다.

 나는 내 사랑을 그는 그의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지 둘이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128쪽. 왜 우리 전문가들은 독서 초심자들에게까지 '수준'을 강요하면서 그들에게서 책 읽는 즐거움까지 빼앗고 있는 것일까요? 학교나 직장마다 무슨 필독서가 그렇게도 많은가요? 그냥 재미있는 책,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보도록 응원해주면 좀, 안될까요? 즐겁게 책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인문학으로 손을 뻗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까지, 여유를 가지고 그들의 독서를 인정해주면 안 될까요? 왜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시켜 결과적으로 다수의 사람을 소외시켜야 하는 것일까요?

 

 이 이야기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 다른 사람이 하라고 하는 것, 다른 사람들도 하는 것을 해야만 하는, 그렇지 않으면 소외되고 마는 세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세태가 독서에까지 위협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개그프로그램이나 이슈가 된 이야기들을 섭렵하는 이유가 단지 그들 틈에 끼기 위해서라면 서글프지 않은가?

 

베스트셀러나 필독도서 북트렌드를 거스르곤했던 과거의 내 독서 경향도 이런 성향에 대한 반발이었다.

 읽고 싶지도 않은 책을 억지로 읽고있는 사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난 너무 괴롭고 슬퍼진다. 그건 참혹한 일이다.

 

153쪽. 큰 물. 두 줄기의 물이 만나 큰 물을 이룬다. 잔잔한 가운데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두 줄기 물은 만나서 뒤섞이면서도 말이 없다. 서로에게 이유를 따져 묻는 법이 없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최고의 선은 물과도 같다고 했다.

 그들은 다투지 않으며, 서두르지 않으며 따지지도 거부하지도 않는다.

 서로를 완전히 품어내며 언제 둘이었느냐는 듯 온전한 하나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물에게서 그들의 덕성을 배워야만 한다.

 그들의 화합을 그들의 포용을 그들의 현명함을 우리 삶에 옮겨와야 한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래야한다.

 

173쪽. 변화는 나 아닌 누군가가 되려고 할 때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되려고 할 때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일 게다. 그러니까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은 변화가 필요할 때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는 자질이기도 하다.

 

혼자있는 시간이 무조건 외로운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진정한 나를 찾아낼 수 있다.

 지금 앞을 막고 있는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비장의 히든카드를 내 안에서 발굴해 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부러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것이다.

 혼자가 외로운 것이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그 모든 시간을 온전히 나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어떤 간섭도, 방해도 없이.

 

남의 기대에 맞추는 삶을 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남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서는 나의 위에 그들이 원하는 모습을 덧씌워야 한다.

 그것은 나의 삶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러다보면 나중에 남는 것은 극도의 소외감과 상실감뿐이다.

 타인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을 것이라 믿어선 안된다.

 이미 당신도 알고있듯 "군중 속의 외로움"이 홀로 있을 때의 외로움보다 더 처참하게 다가온다.

 

 

 

 

'가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타인의 앞에 서기위해 꾸민 모습의 가면을 한번 쓰는 순간 영원히 벗을 수 없는, 다만 바꿔 쓸 수 있을 뿐인 가면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린다는 생각을 말이다.

 나날이 그 가면은 괴로움으로 무거움으로 마음을 짓누르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내려놓을 수 없다.

 

한때 외롭지 않게 되기 위해, 타인에게 잊혀지지 않기 위해, 단지 그들 안에 존재하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어리기도 했지만 그들 안에서 한번 잊혀질 때마다 한 번 죽음을 경험하는 것 같은 아득한 절망을 느끼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지만 그 때는 정말 절박했던 기억이 난다.

 

기억에 남을 만한 특별한 선물을 하고, 최선을 다해 배려하고, 함께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무리 할 수록 외로움에 더해 허탈함과 화가 늘어갔던 것도 생생하다.

 그랬다.

 혼자 노력하고, 혼자 발버둥치다, 혼자 토라지고 혼자 화를 내고 있었다.

 그것이 더 깊은 외로움의 수렁으로 발을 내딛는 일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내 생각을 그들이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된다.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나의 입장에서 내 생각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입장에서 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329쪽. "겨우 그런 걸 가지고 바보같이."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겨우 그런 것을 가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없다.

 무엇에나 '임계점'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임계점에 이른 사람에겐 아주 사소한 것이 그 경계를 넘어서게 만드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중해야 한다.

  나의 아무렇지 않은듯 건네는 무신경한 한 마디에 그 혹은 그녀가 무너진다면 당신의 마음도 편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나의 마음을 살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우리에겐 절실하다. 

 

341쪽. 스피노자의 말 :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고통을 두려워하고 감추고 피해다녀서는 고통을 벗어날 수 없다.

 고통과 마주하고 그 모습을 바로 보려고 할 때 그것은 이미 고통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이 되어 당신을 괴롭힐 힘을 잃게 된다.

 고통과 당신은 하나가 아니다.

 당신은 고통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자신에게 주는 고통 때문에 괴롭고 힘든 것이다.

 

사실과 현상들에게서 당신을 떼어놓아라.

 당신이란 존재는 좀더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존재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자신의 마음, 가치를 알아주는 이를 곁에 두기를 우리는 바라고 또 원한다.

  춘추 전국시대에 거문고를 기막히게 타는 백아라는 사람과 그의 연주를 기막히게 알아주는 종자기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꺽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외로움의 끝에 서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알아주는 단 한명의 사람뿐이라고 한다.

 진정 자신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단 한사람의 존재가 그 무겁고 무섭던 외로움을 떨쳐낼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고 한다.

 

지금 외롭다고해서 모든 것이 잘못되고 세상에서 외톨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와 자신이 힘들 때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의 존재만 있으면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외로움 속에서 발견한 비장의 재능을 꽃피우며 행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지금 외롭다면 당신은 잘되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재능을 꽃피웠던 사람들은 모두 무척 외로웠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외로움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은 것을 분명히 하며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았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것은 능력이고, 변화가 필요할 때 그 능력은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그리고 곁에 있는 당신을 알아주는 단 한사람.

 

그것만으로 더는 외로움이 두렵지 않으리라.

 지금 곁에 당신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행복에 무척 가까이 있는 것이다.

 더는 불평하지 말기를.

 지금 곁에 당신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 아직 없다고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외로움을 마주하고 외로움을 뛰어넘는 용기를 지닌 당신은 이미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경청, 공감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그런 당신에겐 멀지 않아 그 단 한 사람이 반드시 찾아올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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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본 - 1% vs 99% 누가 양극화를 만드는가
KBS <사회적 자본>제작팀 지음 / 문예춘추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호평을 먼저 적을까 혹평을 먼저 적을까 고민 중이다.

 

자본주의 시대, 민주주의 시대, 국민 소득 2만불 시대.

 또 어떤 이름을 이 시대에 붙일 수 있을까?

 

우리 나라 대한민국은 책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압축적인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있다.

 하지만 소통의 부재가 심각한 사회, 정치적 신뢰, 기업에 대한 신뢰가 극도로 낮은 불신 사회, 공감 부족의 사회라는 이름으로도 제법 널리 알려진 모양이다.

 

이 책은 이러한 신뢰의 부족, 소통의 단절, 협력의 결핍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스탠포드 대 교수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트러스트』에서 다음과 같이 사회적 자본을 정의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은 제 3의 자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계나 땅과 같은 물질 자본, 기술이나 교육과 같은 인적 자본 외에 사람들이 협력해 같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능력이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은 신뢰나 상호주의, 책임감처럼 사회적 협력을 도모하는 비공식적인 가치를 기반으로 한다."(본문 32쪽)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은 학자마다 견해를 달리하고 있지만 KBS <사회적 자본>제작팀은 신뢰와 소통, 협력을 핵심적인 사회적 자본으로 보고 이야기를 진행해 간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이 가장 먼저 「신뢰」를 다루었다는 사실은 큰 공감으로 다가왔다.

 

이 책에는 수 많은 실험이나 게임이 등장하는데 그 첫번째가 '돈 빌리기 실험'이다.

 이 실험은 세계 각국의 중심 도시에서 불특정 대상에게 '돈을 빌려보는' 실험이다.

 실험이 가지는 의미는 나와 무관한 불특정한 개인을 보편적인 신뢰기준으로 신뢰할 수 있느냐다.

 간단히 말해 생판모르는 남을 아는 사람을 대하듯 신뢰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는 실험인 것이다.

  실험에서 우리 나라의 서울은 중간 정도로 돈을 빌려주었다.

  이 실험에서 돈을 빌려준 사람은 자신에게도 언젠가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른 사람도 도와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기에 돈을 빌려주었다고 응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이 신뢰를 가장 먼저 다룬 이유는 모든 것의 바탕에 신뢰가 깔려있지 않으면 무엇도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2장의 소통도 3장의 협력도 상호간의 신뢰가 없이는 결코 시작될 수 없으니 말이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부와 권력에 지배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 즉 신뢰가 부와 권력을 좌우한다.

 예를 들면 완벽경영을 주충하는 학자와 기업가가 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인식, 신뢰의 힘을 안다. 그렇기에 늘 최고, 최상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며 고객의 신뢰를 끌어올리려 한다.

 정치에 있어서도 선거때만 되면 시장을 돌고, 현장을 돌며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이유가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에 '공감'한다는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이 사람은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아니면 무엇일까?

 

핀란드의 과속 벌금제도 '일수 벌금제'와 스웨덴의 '옴부즈만 제도'는 읽어둘 만 하다.

 아직 우리나라 정서에는 용인되기에 무리가 있겠지만 분명 큰 의미를 전해 줄 것이다.

 

2장에서는 '소통'을 이야기한다.

 역시 신뢰만큼이나 소통이 단절된 우리나라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여러가지 실험과 다른 나라의 소통 증대 교육 등을 소개하며 소통이 가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참 웃어야 했던 것은 '보톡스'를 시술받은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읽는 것에 둔해진다는 이야기에서였다.

 사람은 무의식 중에 타인의 표정을 흉내냄으로써 그 사람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게 되는데 강제적으로 얼굴 근육의 활동을 제한하는 보톡스 시술이 공감력의 저하라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이야기에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의미있는 한마디도 던지는데 "갈등이 없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구성원들의 문제제기가 있어야 사회가 발전한다."는 말이었다.

 소통이란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신의 생각을 주고 받으며 문제 해결의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라는 말이리라.

 

 도미노 피자 CEO의 사과는 이제는 낯익은 '깨진 유리창'법칙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적극적 소통의 형태인 진실한 사과를 통해 오히려 기업 이미지와 수익이 증가하는 올바른 소통의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로 등장했다.

 

3장 협력에서는 대부분 외국의 우수한 협력 사례들을 보여주며 협력의 다양한 형태와 효과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수 많은 게임과 실험을 다루고 있는데 그 하나하나가 제법 흥미롭다.

 하지만 아직 내 이해력으로는 멋지게 설명해내기 힘들 것 같아 이곳에 적어내는 것은 포기하기로 한다.

 

전문적인 경제학자의 저술이 아님에도 충분한 설득력과 신뢰를 줄 수 있는 자료와 연구를 제시하고 있고 비교적 쉬운 용어를 택하고 있어 본격적인 경제나 사회문제를 다룬 책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는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신뢰를 주제로 썼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신뢰 관계의 구축과 유지, 신뢰의 증대와 회복 방안을 다양한 실험과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 문제 제기와 분석도 잘 이루어 졌다.

 

하지만 개선책이나 해결방안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어딘가 본문의 내용과 부합되지 않는 것 같은 부제도 조금 마음에 걸린다.

 

문제제기와 분석은 잘 이루어 졌지만 개선택의 제시 해결방안의 강구노력이 적은 것은 아쉽다.

 물론  전문적으로 어떤 기간동안 집중적인 연구를 하지 않았음에도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고 분석하고 사례를 모으고 실험과 게임을 통해 이해를 도우려 했던 노력은 좋았다.

 하지만 되려 너무 많은 문제, 너무 많은 사례, 너무 많은 실험과 게임이 자주 집중력을 흐트리지 않았나 싶다.

 

제기된 문제들을 분석하는 과정들을 통해 독자 나름의 방안을 "유추"해 볼 수 는 있겠지만 결론이 하나같이 제도와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남겨진 숙제라고 말하는 것은 어딘가 용두사미를 떠올리게 만든다.

 

2장과 3장은 뭔가 핵심을 짚어내지 못하고 겉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장황하고 너무 멀리 너무 넓은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있어 무리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도 강했다.

 

한마디로 꿈에 비해 해몽이 신통치 않은 결론이 아쉽게 느껴졌던 책이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감안해주십시요.

 

이 비유로 어수선한 감상을 마치련다.

 

오늘의 선발투수 '신뢰'가 역투함으로 상대의 강타선을 제압 8회말까지 단 2점만을 내주며 승리를 확정한 듯 했다.

 9회 말 교체로 들어간 구원투수 '소통'은 순식간에 3점을 내주며 강판, 이제 게임은 원점이 되었다.

 감독은 믿고있던 최후의 카드 '협력'을 뽑아들지만 끝내기 홈런으로 '신뢰'의 역투는 무의미한 '개고생'이 되고 말았다.

 

오늘의 교훈.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 하면 이미 가진 것조차 잃게된다.

 

 

[이 서평은 네이버 북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제 주관에 따라 작성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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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 법칙 -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비즈니스의 허점
마이클 레빈 지음, 이영숙.김민주 옮김 / 흐름출판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대충형 인간, 단순 경영과 완벽하게 배치되는 책을 만나버렸다.

 이럴수가, 난 이 책의 설득력에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이 책이 주창하는 것은 완벽 경영, 강박형인간이다.

 이 책 속의 무엇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부디 잘 적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

 

깨진 유리창 법칙은 본래 범죄학에 도입되었던 '깨진 유리창 이론'이 경제학에 적용된 것이다.

 깨진 유리창 법칙이란,  한명의 불친절한 직원, 매장벽의 벗겨진 페이트칠 등 기업의 사소한 실수가 결국 기업(초 거대 기업까지도)을 쓰러뜨린다는 이론이라고 한다.

 

2000년 5월 뉴욕시의 줄리아니 시장은 '시장회의'에서 경범죄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흔히 사람들은 경범죄보다 강력범죄를 강력히 단속해야만 사회적 안전이 위협에서 벗어나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범죄학의 '깨진 유리창 이론'은 단순하고 사소한 경범죄가 만연한 사회에 강력범죄 또한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주장은 완벽하게 증명되었다.

 

줄리아니 시장의 경범죄 근절 정책의 시행결과 뉴욕시의 강력범죄 발생률은 급감했고 뉴욕 시민들은 회복된 질서가 가져오는 안정감을 충분히 누릴 수 있게되었다. 

 

이 책에서 이러한 '경범죄'와 같은 사소한 행위들을 '깨진 유리창'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면서 비즈니스에 적용한 '깨진 유리창 법칙'을 구체적 사례들과 함께 자세히 설명해준다.

 

새로 개업한 개인의 식당에서 코카 콜라나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스, 맥도날드와 같은 초 국가적 기업들까지 그들이 깨진 유리창을 방치함으로써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실패의 원인을 방치된 사소함에서 찾았냈던 것이다.

 

이러한 정말 '사소한' 깨진 유리창들이 위험한 이유는 깨진 유리창이 우리에게 유발시키는 '인식'의 형태 때문이다.

 깨진 유리창이 전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업체의 경우 직원도 경영자도), 그러니 당신 마음대로 해도 좋다. 즉 「무법천지」라는 인식 갖게 한다는 것이다.

 

한 번의 실수, 한 명의 불친절한 직원, 한 번의 불쾌한 경험 때문에 고객은 그 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고, 그 결과 기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100 - 1 = 0 이라는 등식이다.(단 하나의 사소한 실수가 99가지의 완벽함을 무효화한다는 의미)

  이 등식은 깨진 유리창이 지니는 인식의 힘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극히 사소한 일이 전체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저자는 완벽 경영과 강박관념, 강박적 행동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사소함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빈틈없는 경영을 시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사소한 실수를 반복하는 직원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취해야하며, 끊임없이 살피고 개선하는 노력을 계속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그 외에도 브랜드가 가지는 의미에 변화를 주려할 때는 신중해야하며 대표적인 실패 사례인 코카콜라의 뉴-코크 사업을 들어 그 위험성을 경고한다.

 브랜드란 소비자들이 이성적 감성적으로 기업을 정의한 것이기에 그것에 변화를 주려는 시도는 기업의 정의 자체를 뒤흔들어 소비자들의 불신과 외면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원하지 않는 것을 더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의 불만에 귀기울여야하며, 아무리 사소한 깨진 유리창이라도 신속하게 고치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경영에 있어 완벽함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정말 적절히 표현해낸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증명된 법칙이 지니는 납득과 적절히 어우러진 사례와 예시는 설득력에 힘을 더한다.

 

기업의 경영과 비즈니스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생활과 직장 생활에서 자신만의 경쟁력이 될 수 있는 특성을 일깨워주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난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은 아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완벽함이 강력히 요구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았다.

 사소하다고 별 것 아니라고 방치해둔채 조치를 미루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즉시! 바로 잡아라.

 그것이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어떤 거대 기업도 고객의 작은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그것을 잊지 말기를. 

 

 

책이 부른 책, 그 인연을 소중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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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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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섬에 울려퍼지는 신비로운 한 곡의 음악을 감상하는 듯한 한편의 희곡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이름에 실리는 기대감을 조금도 저버리지 않는 멋진 작품이었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정말 너무 단순해서 이제 돌아보면 무모했던 것 같이 느껴진다.

 단 한 구절.

 미랜더의 "참, 찬란한 신세계로다!"라는 한 구절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의 제목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보고 나니 내 눈으로 확인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똑같은지 아닌지. 푸핫 결국 외국 작품이 지니는 해석의 차이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뭐, 결과는 '멋진 신세계'가 아니라 '찬란한 신세계'로 확인 되었지만 둘다 멋지다.

 

이야기는 밀라노의 대공인 푸로스퍼로는 마술의 연구에 열중하느라 국정을 돌볼 수 없게 되자 무척이나 신뢰하고 있던 동생 앤토니오에게 자신의 직책을 맡긴다.

 하지만 동생 앤토니오는 나폴리의 왕 알론조와 결탁해 푸로스퍼로와 그의 딸 미랜더를 추방한다.

 공국민의 푸로스퍼로에 대한 신망이 두터웠기에 차마 그를 죽이지 못했던 앤토니오는 낡은 배에 두 사람을 태워 바다로 보낸다.

 

하지만 푸로스퍼로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예전 마녀의 지배가 지배하던 섬에 상륙해 마녀의 아들 캘리밴을 노예로 삼고 섬을 지배한다.

 그리고 푸로스퍼로의 마술이 완성된 후 어느날 나폴리의 왕 알론조와 앤토니오 일행은 알론조의 딸과 튀니스 왕과의 결혼식을 마치고 귀환하던 중 폭풍을 만난다.

 

그 폭풍은 푸로스퍼로의 마술로 일으킨 것으로 그의 충실한 정령 에어리얼의 작품이었다.

 푸로스퍼로는 에어리얼에게 명해 그들을 폭풍에 휘말리도록 하되 목숨은 구하도록 지시해두었던 것이다.

 

알론조 일행은 무사히 섬에 도착하지만 왕자 퍼디넌드는 그들과 떨어지게된다.(푸로스퍼로의 계획대로)

 그 결과 알론조 일행은 왕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왕자를 찾아나서고, 왕자는 왕이 죽었다고 여기고 왕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리고 자신을 배신한 왕과 동생에 대한 통쾌한 복수전이 시작된다. 오.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복수가 끝난 후에 그들을, 그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는 너그러움을 발휘하는 푸로스퍼로의 인물됨 때문이었다.

 거기에 이야기를 빛내는 그야말로 '주옥같은' 표현들, 언어유희는 한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실감나는 장면들을 상상하게 한다.

 

마술사 밀라노 대공의 요절복통 복수기라고하면 너무 가벼울까?

 하하하.

 

사 놓고 읽지 않았던 책을 읽게된 동기치고 비록 조금 '불순'했지만 아마 그는 이런 나도 용서해주리라.

 

셰익스피어의 희 비극을 다시 찾아 읽어봐야겠다.

 그가 펼치는 언어의 마술에 다시 한번 빠져들고 싶다.

 

 

"나의 신뢰는 끝이 없었다. 나의 세입뿐만 아니라 기타 나의 권력이 짜낼 수 있는 재산으로 군주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 그는 마치 같은 거짓말을 여러 번 되풀이해 말함으로써 자신의 기억력을 진리에 대한 죄인으로 만드는 즉 자기 거짓말이 거짓말임을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이 진짜 대공이 된 듯이 믿었고, 나의 대리로서 모든 권한을 가지고 군주의 기능을 행사하였다."

 이 부분은 1984년의 '이중사고'를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푸로스퍼로의 노예인 캘리밴의 대사 "당신은 나에게 말을 가르쳐 주었소, 그 덕으로 내가 얻은 이득은 저주하는 법을 아는 것이 전부요!"라는 대사는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배은망덕의 이유가 될 뿐이라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모든 범죄 모든 배은망덕을 용서하는 멋쟁이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끝마침으로써 내게서 감동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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