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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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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시리즈(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심리학이 서른살에게 답하다)와는 조금 색깔이 다르게 느껴지는 책이다. 

 

조금 더 진솔하게 서술된 그리고 한정된 주제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렇게 느껴진 것 같다.

 

사랑을 시험하는 것들{운명, 사랑, 섹스, 21세기(나르시시스트),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 된 이야기는 사랑하는데 필요한 마음가짐들에 대해 찬찬히 풀려 나간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을 하는지, 섹스하기 위해 사랑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랑이 판치는 세상에서 자신이 하려는 사랑이 어떤 모양인지를 아는 것은 결과적으로 의미가 없을지는 몰라도 생각해볼만한 가치는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사랑의 목적인 '사랑과 행복'에 이르기위해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리라.

 머리로 이것저것 생각하다가는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해도, 또 너무 계산적이고 순수하지 못해 보인다고 해도 사랑하고자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은 비난 받아서는 안될 일이다.

 한번이라도 사랑에 실패해 깊은 절망을 느껴야했던 사람이라면 그 두려움을 알테니까.

 

언제까지나 같은 실수, 같은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개선의 의지도 노력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하늘이 내려주신 천생연분"만 기다리면 될 일이다.

 그러다 그런 사람을 못만나면 혼자 살면 될 것이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을 주는 방법도 모른다는 변명만큼 설득력없이 들리는 변명이 또 있을까?

 그들은 너무 거창한 규모의 자기 혁명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주 작은 변화를 위한 노력이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단지 생각에 그칠 뿐 행동으로 옮길만한 동력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한꺼번에 변하지 못하면 곧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만을 떠올리고 만다.

 

사랑하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한다.

 먼저 자신을 보고 자신의 문제를 알고 그 문제를 고쳐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전부를 주려고도 말고 모든 것을 가지려고도 말고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욕망에 치우치지도, 동정에 치우치지도 말고 과거에 얽매이지도 말고.

 적어놓고 보니 무척 어려운 일들 뿐이다.

 하지만 적어둔 것은 단지 결과라는 것을 떠올린다.

 과정은 작은 노력들이 모이고 모여 있으리라. 그 노력들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리라. 그리고 결과에 닿으리라.

 

특별히 이 책을 통해 전혀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거나 놀라운 발견을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동안 수 없이 보아왔고,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던 것들을 재확인 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하지만 학습은 반복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자주 망각하고 착각하고 오해한다.

 그런 불완전함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번 되풀이해서 그것을 배우고 익혀 잊지 않게 한다.

 

단지 "함께 노력하는 것"으로 우리는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욕심과 욕망을 조절하는 것으로 더 큰 행복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배우는 자'다. 그래서 반복이 필요하고 지속적인 자극제가 있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사랑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나 조언을 구하려는 의도라면 실망할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으므로 추천하지 않으련다.

 다만 사랑함에 있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이나 바램, 심리상태에 대한 단서나 조언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도 좋겠다.

 

 나를 안다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그만큼 중요하다.

 그리고 상대를 안다는 것도 그 다음으로 무척 중요하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자신을 가둬둔 사랑을 방해하는 심리적인 감옥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데 작은 도움이 발견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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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그레이프
피터 헤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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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것엔 관심없어."라고 말하곤 냉정하고 울 줄 모르는 스물 넷 청년 길버트 그레이프.

 그에겐 지능 여덟살의 저능아인 남동생 어니와, 허영 덩어리 사춘기 여동생 엘렌, 마음씨 고운 큰 누나 에이미, 스튜어디스이며 길버트와 앙숙인 작은 누나 제니스, 자살한 아빠를 제일 먼저 발견했던 저능아 동생 어니의 생일에만 집을 찾는 형 래리, 그리고 남편이 자살한 후 폭식을 반복한 결과 웅장한 체구를 지니게 된 뚱뚱한 엄마 보니로 구성된 가족이 있다.

 

그의 뚱뚱한 엄마는 항상 "나는 내 아들이 열여덟 살이 되는 것을 보고 싶을 뿐이야. 그게 그렇게 무리한거니?"하고 묻곤하며 길버트는 없는 것처럼 대하고 어니만을 아끼는 것 같아 보인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7년, 대부분의 친구들은 외지로 나갔고 마을에 남아있는 친구는 몇 되지 않는다.

 그는 그 마을을, 그의 가족을 "떠나지 않을" 길버트다.

 그의 아빠는 그가 8살 때 아무런 표징도 없이 느닷없이 지하실 기둥에 목을 매어 자살한다.

 

 이 후 그의 엄마는 과식에 폭식을 더하여 나날이 비대한 몸뚱이를 가진 뚱뚱한 보니가 된다.

 2층의 자신의 방에 올라갈 수 없을 만큼 뚱뚱해진 이후로 지내게 된 거실의 바닥이 둥글게 가라앉아 언제든 부서져 버릴 것 같이 불안하게 만들 만큼 뚱뚱한.

 

길버트는 아빠가 자살한 집, 뚱뚱한 엄마가 늘 거실을 차지하고 큰 볼륨으로 티브이를 보며 언제나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집, 저능아 동생 어니가 있는 집을 떠나지 못한채 죽은듯이 지낸다.

 자신은 의식하지도 못하고 있던 절망과 증오를 머금은 표정으로.

 그러던 어느날 미시간에서 온 소녀 베키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반하게 되지만 어딘지 묘한 관계가 되고 만다.

 

그 소녀를 만나고 가족,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내며 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도시를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실행일을 곧 다가오는 저능아 동생 어니의 생일로 정한다.

 하지만 어니의 생일이 다가올 수록 정작 어디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그런 와중에도 일상은 계속되고 어니의 생일은 다가온다.

 

어니의 생일 전날 그를 찾아온 베키는 거울을 통해 지치고 증오를 품은 것 같은 길버트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고, 길버트는 그 거울을 깨뜨리려 하지만 깨지지 않으며 저능아 동생 어니는 다시 사고를 친다.

 내내 자신이 지켜오던 어니에게 분노를 쏟아낸 길버트는 곧 후회하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베키를 통해 어니와 극적인 화해를 한다.

 

드디어 그레이프가 사람들이 기다리던 어니의 생일날, 그날은 엄마가 늘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이 되었으며 그레이프가의 구성원들이 화해하고 웃게되는 아빠가 자살한 후 처음으로 맞는 최고의 가족적이고 화목한 날이 된 것 같았는데...

 

안쓰던 줄거리를 써보려니 왠지 어색하고 머뭇거리게 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왠일로?" 후훗.

 

퉁명스럽고 냉정한 것 같이 보이는 길버트는 사실은 굉장히 예민하고 다정다감한 청년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런 청년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능아 동생을 이해하려하고 지켜주려는 마음도, 아빠와 형이 부재 상태인 그레이프가를 지탱하기 위해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는 고운 마음이 그렇다.

 

그런 착한 길버트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 것은 당연했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사하고 감동하는 고운 마음을 가진 길버트를 위하는 것도 당연했다.

 

길버트가 이야기하는 일들의 중심엔 항상 저능아 동생 어니가 있다.

 아마 길버트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존재가 어니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가 가족을 사랑하고 베키를 사랑한 것처럼, 가족들도 베키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솔직하고 순수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존재.

 

사랑하고 방황하고 고민하고 결심하는 젊은 영혼의 이야기가 짜임새있게 어우러져 감동과 위로와 교훈을 준다.

 우리는 사랑하면서도 솔직하지 못할 때가 많고, 서로 자주 오해하게 되며, 다투고 화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때로 천사를 상상하기도 하고 극적인 희극 혹은 비극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냈을 때 우리는 행복과 마주 할 수 있다.

 

사랑, 사랑.

 사랑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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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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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 '책을 내려놓는 방법'을 읽게 되기만을 기다리며 읽었던 책.

 

우와, 정말 오랜만에 벙~하고 머엉~하니 부웅~떠서 흐물흐물한 정신상태로 읽어야했던 책을 만났다.

 처음 의도는 프루스트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고 싶어서 구입했던 것인데, 이 사람 '보통'이 아니다.

 

이 책은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의 견해에서 프루스트의 작품과 생전의 행동, 이야기, 친구들의 말을 통해 프루스트라는 사람을 '해석'이랄까 '해설'이랄까를 해주고 있다.

 읽는 내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난 후에 이 책을 읽었으면 조금 더 프루스트라는 인물에대해 이해하기가 수월했을까?하는 물음을 되뇌고 되뇌고.

 

이 책에 대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재미있고 매우 상쾌한 책이다."라는 서평을 내놓고 있는데 난 "뭐가? 이 책이? 재밌어?"라는 의문만 더하게 됐다.

 

프루스트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불과 수 개월 전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매력적으로 들려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읽지 않고 있는 것은 역시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방대한 '분량'이다.

 알랭드 보통의 말을 빌리면 '사람들이 아주 많이 아프거나 다리가 부러지기 전에는 읽을 기회를 얻기 힘들다'고 할 만큼.

 (이부분은 좀 웃기긴 하다.)

 

그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을지 몰라도 무척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수 많은 끊임없는 질병에 시달려).

 그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고통이 뛰어난 작품을 낳게 해준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그를 괴롭혔던 고통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프루스트는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열차 시각표'를 보곤 했다고 한다.

 그는 '작가란 외관상 위대한 예술과는 전혀 조화되지 않는 듯 보이는 것을 향한 열광을 가졌으리라고 여겨질 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한마디로 그는 자신이 '작품과 전혀 관계 없을 것 같은 열차 시각표를 보면서 작품을 구상할 수 있는 열광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을까?

 

프루스트적 자극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말은 '슬픔 속에 빠졌을 때에야만 비로소 우리는 어려운 진실에 맞서고자하는 자극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삶을 고통과 함께 보냈던 프루스트지만 그 고통을 넘어 뛰어난 통찰과 묘사를 담아낸 작품을 지어낸 그의 노력을 기리는 말이기도 하다.

 

이해가 어렵다라고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많았다.

 "저자는 우리가 아니다."라는 말은 좀 더 특별했는데,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고 해도 저자의 뜻이 우리의 뜻과 완전히 부합할 수 없다는 독서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조금은 마음 편히 책을 읽어도 되는 이유가 그것이리라. 난해해도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저자가 내 생각을 어떤 방향으로든 의도적으로 끌고가려고 하는 것 같은 태도에 거부감을 느끼더라도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며 나를 꺽고 굳이 작가의 생각에 맞출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지 그것을 분명히 알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딱 거기까지가 우리가 책에서 기대해야 할 것은 아닐까?

 저술가는 결코 예언가가 아님을 잊지 말자.

 

이 책을 마무리하며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프루스트에게 바치는 진정한 경의는 그의 눈으로 우리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지, 우리의 눈으로 그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테니까.라고.

 난 이 말을 이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프루스트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진심을 보라.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현지 배경이나, 인물, 음식 등의 표면적인 것에 혹되지 말라.라고.

 

위대한 작가는 그 작가가 그 작품을 쓰는데 배경이 된 지역이나 풍경 소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 그 자체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리라.

 

프루스트를 알고 싶어서 산 책인데 되려 궁금증만 더하고 말았다.

 역시 프루스트를 만나려면 그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보다.

 

곧 만나기로 약속하고 오늘은 이만 보내주기로 하자.

 

 

독서를 훈련으로 만든다는 것은 동기에 불과한 것에 너무 큰 역할을 부여하는 일이다. 독서는 정신생활의 문턱을 넘나드는 것이다. 독서는 우리를 정신생활로 이끌어준다. 그러나 독서 자체가 정신생활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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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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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의 내용 "30년 전에 자신이 발견한 정리는 기억해도, 엊저녁에 뭘 먹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할 정도죠. 간단히 말해서, 뇌 속에 80분짜리 테이프가 딱 한 개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아, 80분짜리 테이프 이야기. 하는 혼잣말과 함께 몇년 전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수와 얽힌 박사와 나와 루트의 이야기가.

 새삼스런 반가움과 함께 다시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뛰어난 수학자였던 박사는 오래전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사고가 나던 해에서 기억이 멈춰버린 올해 예순 넷의 노인이다.

 뇌에 80분 짜리 테이프가 들어있다는 말이 일러주는 것처럼 80분간만 기억이 이어지며 80분을 넘어선 순간 사고 당시의 47세의 기억으로 리셋되고 마는 병을 앓고 있다.

 '루트'는 열 살 난 '나'의 아들이고(머리가  √¬ 처럼 평평해서 루트라고 박사가 이름지었다.)

 '나'는 스물여덟(열 여덟 살에 루트를 임신하고 루트가 열살이면 스물 아홉일까?), 직업 파출부인 이십대 후반의 미혼모다.

 

몇년 전에도 그랬겠지만 붙임성 좋고 영리하며 배려깊은 '루트'와 홀로 그런 아이를 키워낸 '나' 그리고 절망적인 단절을 매일 경험하면서도 식지 않는 열정과 깊은 애정을 지닌 '박사'가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그들이 그려가는 특별한 인연, 그 깊은 연대감은 인간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수의 역사만큼이나 깊었다.

 

뭐가 그렇게 특별하게 좋았나를 콕 짚어낼 수 없이 은은하고 눅눅한 종이 냄새가 날 것 같은 포근함이 좋았다.

 첫 인사 대신에 파출부의 신발 사이즈를 묻는 주인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전화번호에서 소수를 떠올리는 사람 그 사람이 박사이고, 그런 박사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일 없이 그가 사랑하는 수를 알아가는 일을 진정으로 즐기는 파출부를 난 상상해내지 못하겠다.

 이런 기발한 시작부터가 좋았다.

 

이렇게 수를 사랑하는 박사가 특히 좋아하는 수는 소수다.

 소수라는 것은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 떨어지는 숫자를 이야기하는데 여기에도 어떤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을 것 같다.

 자기 자신은 박사가 되고 1이 자신과 함께 '수'를 공유하는 존재라면 소수라는 묶음은 그들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다리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수학이라는 우리 생활과 전혀 관계없어보이고 멀어보이는 학문이 어떤 이들에게는 관계의 전부가 될 수도 있고, 실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놀라운 '수'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박사의 첫인상에서 '나'가 발견한 숫자의 의미는 '상대방과 악수하기 위해 내미는 오른손,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코트와도 같다고 했다.

 그야말로 '수'만이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이고 보호막인 셈이다.

사고로 세상과 단절되고 기억에서도 단절을 경험하지만 여전히 '수'를 통해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박사의 영원한 연인 이야기라든가 소소한 일상은 아껴두기로 한다.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나는 책이다.

 그 사람은 따뜻한 마음을 가졌고, 희망을 가졌고, 사랑을 가졌고, 열정을 가졌고, 배려를 알고, 미래를 믿는다.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남겨진 그들이 가진 아름다운 것들을 나도 나누어 갖길 원한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듯, 부유하고 풍부한 삶 만이 행복한 삶은 아니다.

박사의 행복이 계산의 어려움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했듯이 단순한 것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기쁨도 우리의 행복도 배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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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력 - 상황을 장악하고 상대를 간파하는
마사히코 쇼지 지음, 황선종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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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재미'로 사봤다.

 

제목 그대로 질문에 상대의 심리를 꿰뚫고,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게해 원하는 '답'을 얻어 낼 수 있는 힘을 실어주는 질문법을 일러주고 있다.

 

저자는 변호사 출신으로 예시들의 대부분이 재판 과정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이다.

 증인에게서 좀 더 사실에 가까운 진술을 이끌어 내기위한 방안,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는 질문 요령과 관찰하면 유용할 특성을 적고 있으며 거짓말에 대처하는 방법이라든가 진실을 파헤치는 방법들을 예시와 함께 담고 있다.

저자의 직업 특성상 재판 과정에서 증인에게 적용하곤 하는 '비법'이 많기 때문에 곧바로 일상 생활이나 비즈니스에 적용하기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기에 그것을 적절히 일상 생활 혹은 비즈니스에서 응용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제시되어있는 구체적인 차치해두고 주의사항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만 해보도록 한다.

   하지만 '질문력'을 사용할 때 주의할 점이 있으니 그것은 간단히 상대를 '거짓말쟁이'로 몰지 말라는 것이다.

 

상대를 거짓말쟁이로 몰지 말라는 말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이유랄 것도 없는 것이다.

 나부터도 상대방에게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상하게되고 좋게 말할 것도, 그들에게 유리하게 진행 할 것도, 사실대로 털어놓을 것도 꼬이고 틀어진 마음이 생겨 순순히 그렇게 말해줄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대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거나 그 말이 그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람은 본래 쉽게 거짓말을 하지 못하며 거짓말을 하게 될 때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기 때문에 스스로 꺼리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흔히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자기 나름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억이란 불완전하기에 누구도 자신의 기억이 완벽하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우며 착각하거나 잘못 기억한 기억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여유있는 마음을 가지고 상대에 대해 도적적 가치 판단을 서두르기 보다 너그럽게 마음을 먹으면 진실에 다가가기가 더 수월할 것이란 거다.

 

 우리집에선 '우기고 한다'는 표현을 쓰곤 했는데 사전적 의미야 어떻든 싫은 소리라고 판단되면 그 말이 옳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듣지 않고 내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한마디로 "삐뚫어질테다!" 상태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런 삐뚫어짐을 비켜가기 위해서는 함부로 상대의 도덕성을 판단하고 흠집내는 발언을 해서는 안되며 서로의 기억의 불확정성을 인지하고 '거짓말은 단지 기억이 다른 것뿐일 수 있다'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슨 책을 읽던 내가 보고 싶고 읽고 싶은 부분만 보이고, 무슨 의도로 어떤 이야기를 썼든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되고 기억된다.

 이처럼 우린 같은 사건, 같은 이야기를 접해도 서로 달리 기억할 수 있다.

 서둘러 그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벽을 만들어두기 보다 진실된 마음으로 순수하게 다가가는 것이 진정 그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질문력'이 되지 않을까.

 기교도 기법도 필요하다. 그것은 전략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언제나 전략에 의거해 전술적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은 피곤하고 지치는 일일 것이고 재미도 없으리라.

 

그래도 알아두면 '사기'에 홀딱 넘어가는 일이나 상대의 유도심문에 '앗사리' 넘어가서 홀랑 벗겨먹히는 일은 당하지 않을 유용한 지식도 있으니 시간이 남는 이는 '재미삼아' 읽어봐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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