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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선으로부터,
최근에 정말 정세랑 작가님 책을 연속 본다.
너무 좋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변화를 느껴가며 성장을 지켜보며 오랜 세월 함께 걷는 걸 좋아하는데 좀 많이 늦었고 한번에 몰아봐서 감동이 덜 할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라도 챙겨보려고 한다.)
작가 님을 알고 항상 한 박자(대부분 아주) 늦게 작품들을 만났는데 이건 신간이 나왔을 때 바로 사서 읽었다. 비교적 최근에 많은 책을 읽고 있고 좋은 책도 참 많았었는데 그중에서도 그 모든 것 중에서도 이 책이 가장 좋았다. 아마 현실에 없는 심시선 여사 같은 분을 꿈꿔왔었나 보다. 작가 님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 혹독한 지난 세기를 누볐던 여성 예술가가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가를 이루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고 쓰셨다는 (작가의 말에서) ... 이의 이야기가 꿈처럼, 이상향처럼... 아주 즐겁게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심시선 가계도 .... 뭐야?(시선이 사람 이름이었나?.... 난 최근 정세랑 님의 독특한 소설들 쭈욱 보고 있어서 사람이름일거라 생각을 못 했다. 근데 나는 가계도나 인물 설명부터 시작하는 소설을 정말 좋아한다. 우선 첫 장부터 딱 좋았다.)
시작... 어느 TV의 대담이었을까?
‘제사’에 대한 1999년의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가 나와서 무슨 미래과학소설 SF소설일거라 또 이해했다. 현실에서 1999년에 TV에 나와 이렇게 제사 지내지 말자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 거니까...
암튼 심시선 님은 그런 분이었다.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런 분, 화살 맞고 욕을 들으면서도 할 말을 하던 그런 분... 그 분이 죽고 나서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했고 그분의 자손들은 그 이야기를 충실히 따랐지만 돌아가신지 10주기를 맞아 큰 딸 명혜가 딱 한번 ‘제사’를 지내자고 선언한다. 그것도 ‘하와이’에서~!
(하와이... 그곳은 사실 시선에게 아름다운 추억만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리고 시선의 삶은 우리 나라 현대사와 함께 요동친 아픈 상처가 군데군데 많다. 이념으로 인한 전쟁, 그로 인한 가족의 죽음, 하와이로의 이민, 교육을 위한 모험, 독일로의 이주, 학대와 비난, 스승이자 유명 화가와의 얽힌 일로 인한 끝없는 비난, 결혼, 이혼, 재혼, 남과는 다른 인생, 끝없는 작품활동..... 암튼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펼쳐지는 많은 이야기들)
그리하여 모두가 출동~(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큰 딸 이명혜(카리스마 야무진 보스 기질, 회사 기획자로서 대표)
남편 태호(기장 출신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이 집안 편입, 따뜻한 사람)
그들의 큰 딸 화수 (균형감각 있고 평화로운 이였으나 큰 사고를 겪은 사람)-상헌
둘째딸 지수 (자유롭고 엉뚱하고 유쾌한 음악가)
둘째 딸 심명은(방랑자 같은... 땅 속 유물을 찾아다니는 고고학자? 혼자 엄마 성을 받음 )
셋째 아들 이명준(집안 여자들의 무시를 한 몸에 받는 배경 같은 복원 전문가)
처 김난정(엄청 많은 독서를 하는 아주 지적이고 똑똑한 사람)
딸 이우윤(어렸을 때 많이 아팠지만 지금은 미국 가서 ‘괴물’컨셉 아트디렉터)
넷째 딸 홍경아(재혼한 남편의 딸이지만 전혀 위화감 없는 막내, 웹 디자이너..미술)
남편 정보근(곤충 연구가... 얘만 하와이 안 감)
아들 규림 (운동 신경이 좋은 사춘기 남자 중학생)
딸 해림 (새에 빠져 있는 환경애호가, 새박사님)
이많은 식구들 중 넷째 딸 남편만 빼고 모두 함께 하와이로 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색다른 ‘제사’를 제안하는데 제사상에 올리는 것은 각자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한 것들.. 엄마가 좋아했을 것 같은 가장 멋진기억....물건이든 경험이든.... 그 때부터 하나에 몰두하면 아주 몰두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는 이 집안 식구들의 승부욕이 발동하고 다들 열심히 부지런히 배우러 다니고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한명 한명의 스토리가 펼쳐지고... 매 장에서는 심시선 여사의 여러 글, 말 등이 먼저 실리고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정말 ‘심시선의 말들’이라는 책을 묶어서 책을 한권 내 주셨으면 좋겠다.(아... 나 왜 그걸 부록으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지.. 내가 만들어야 할 판이다.) ‘심시선의 말, 또는 글들이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너무 파격적이고 시대를 앞서가고 사이다같은 면도 많았지만 나이 드시면서 과거를 회상하며 쓴 글들이 그녀의 인생의 깊이, 젊은 세대에 대한 사랑, 과거의 추억, 회한...많은 것들이 녹아 있어서 울컥울컥 받아 적고 마음깊이 새기고 싶은 말들이 많아서 멈춰가면서 책을 아껴 읽었다. 그리고 그런 한 글의 꼭지로 시작해서 펼쳐지는 개인 한명 한명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매력있고 미운 사람이 없고 다들 사랑스럽다. 기세 좋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친구 삼고 언니 삼고 싶은 사람들이고 남자들도 폭력적이지 않은 아주 주변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남성다움에 함몰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시선여사로부터 뻗어간 가지들이 이렇게 모두를 멋지게 남다르게 만들면서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도 같았다. 주변에 떼로 이렇게 좋고 멋진 사람들이 함께 있다면 정말 살맛 나는 인생이겠는데....정말 소설이라서 가능한 일이겠지. (이 소설이 별로인 사람들은 아마도 그런 비현실성에서 느껴지는 괴리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암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데 뒤가 궁금하고 뒤를 다 봐도 흐뭇했다. 작가 님 작품은 정말 밝음이랑 행복을 주는 요소가 함께 해서 좋은 것 같다. (나는 비현실적으로 긍정에 밝음을 극단적으로 좋아하는 면이 있음을 밝힌다.)
작가의 말씀대로 심시선 여사 님만큼 죽을 때까지 끝까지 좋은 글 많이 많이 써주시길 바라며 행복했던 독서와 어떻게 이 행복을 남길지 몰라 허둥대는 서평을 여기서 마쳐보고자 한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