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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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7년의 밤으로부터 이어져 온 정유정 님과의 인연(물론, 나만 인연이지. 나만 작가님을 알고 좋아하지.) ... 작가님은 그냥 믿고 보는 작가이다. 그런 거 치고... 책은 일찍 샀지만 너무 늦게 읽은 경향이 없지는 않다.

표지가.... 너무 형광색이어서.... 나는 불호. 안에 목차를 보니... 진이, 민주, 지니... 아니 이름도 내이름과 친구이름... 이거 더 빨리 읽었어야 했지만 괜히 미루었다 연말 결산에야 읽게 되었다. 역시 정유정 님이다. 참 좋은 글이었다.

사람에 관한 따뜻한 시선이 있다. 찌질하고 비루한 군상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거기엔 인간미가 있더라고. 그리고 납득이 되기도 하고. 작가 님은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귀결되지는 또 않지. 그렇기에 여운이 있는 걸까?

이건 동물과 인간에 대한 교감도 있고, 동물권에 대한 것도 담겨있는 판타지이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DNA구조를 가진 것이 보노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짐작은 했지만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이야기들이 너무나 끔찍하기도 했고....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yes2에서의 책소개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직후 보노보 지니와 하나가 되어버린 사육사 진이는 찰나의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된 청년 백수 민주와 거래를 하고, 상황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야기는 가장 절박한 상황 앞에서 성장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묻고, 진이(지니)와 민주의 시점을 넘나들며 시공간을 면밀하게 장악한다. 빈틈없는 자료 조사로 판타지마저 현실성 있게 그려낸 촘촘한 플롯, 독자를 단박에 사로잡는 흡인력과 속도감 넘치는 스토리까지 정유정 고유의 스타일은 건재하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소통이다. 소설 속 진이와 민주가 보여주는 선택은 그러한 소통과 공감이 가져온 선택이자, 정유정이 그려내고자 했던 가장 섬세한 방식의 자유의지이다. 소설은 인간과 비인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인간다움이,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죽음의 두려움을 삶의 희망으로 치환하는지를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성장소설과 스릴러를 거쳐 판타지까지. 책을 펼치는 순간 보이는 모든 문장 하나하나가 독자의 시선을 단단히 붙들어 맨다.

 

정유정님은 어쩜 이렇게 재미있으면서 창의적이고 의미까지 있는 이야기를 이런 독특한 소재와 방법으로 쓸 수 있을까? 그리고 따뜻하기까지 하잖아. 판타지 장르이지만 현실에 단단히 발붙이는 능력, 몰입감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자료 준비도 엄청 나셨겠지? 그리고 이러한 가운데 성장하는 민주’.... ‘진이지니의 인생을 보여주고.... 이건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없지만 또 새드 엔딩은 아닌 매력적인 이야기들...

 

암튼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선사해주신 작가님 언제나 응원합니다.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그녀는 내게 삶이 죽음의 반대말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진실을 일깨웠다. 내게 허락된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르쳤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가진 자에게 내려진 운명의 명령이었다.” _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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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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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없음

 

장은진

 

몇 년 전... 이 작가 님을 알게 되었다.(뚜루 님의 카페에서 책 읽기를 통해서 알게 된 작가... 그 뚜루님은 어디서 무얼하실까?) 참 독특하고 참신하면서 재미있는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이다.

많은 작품을 하시는 분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잊고 살았다가 서점에서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작가 편에서 만났다. 이런 시리즈는 그리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읽고 나서는 참 좋았지만 읽기 전까지는 손이 가기 어렵게 나온 책 같다... 나에게는 그렇다. 딱 각 잡힌 양장본 스타일은 손이 좀 덜 간다. 무거운 책도 싫은데 무거울 거 같고 뭔가 어려울거 같고.... 그래서 보건교사 안은영도 한참 뒤에 읽었다. (물론, 너무 너무 상큼하고 기발하고 재미있었지만....)

 

암튼 그래도 제목도 표지도 괜찮아서...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처럼 다른 책을 제치고 이 책을 선택해서 읽게 되었다.

 

잠깐 책소개를 볼까...

세상은 끝나 가는데, 사랑이 시작됐다

이상기후, 폭설, 재난, 그리고 마지막 하루

종말에 대처하는 연인의 자세

 

장은진 장편소설 날짜 없음이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날짜 없음은 긴 겨울이 계속되는 기이한 재난을 배경으로, 모두가 떠나 버린 텅 빈 도시에서 살아가는 연인의 하루를 다채로운 감정과 대화 들로 채워 넣은 장은진식 고립형 재난 로맨스다. 장은진의 소설에는 대부분 혼자만의 공간에 고립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타인과 단절되고 싶은 동시에 연결되고 싶은 욕망을 그려 내는 것은 장은진의 특기다. 대개 종말소설에서는 재난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긴 여정을 떠나거나 험난한 생존 게임에 휘말리는 인물의 이야기를 보여 준다. 그러나 장은진이 주목하는 이들은 떠나지 않고 남은 자들, ‘하지 않을 것을 택한 사람들이다. 추위와 공포를 무릅쓰고 도시를 탈출하면 더 나은 곳에 도착할지도 모른다거나 먼저 떠나보낸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보다, 그들에겐 지금 하고 있는 연애가 중요하다. 미래에 대한 이 젊은 연인의 태도는 우리 세대 청년들이 미래에 대해 지니는 태도 혹은 가치관에 대한 거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뭔가 실험가 같은 작가 님은 평범한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시작부터 숫자다.

 

179

그게 온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178~1까지 이야기가 계속 된다.

완전 재난 상황이다. 어느날 붉은 비가 계속 오더니 어느 순간부터 회색 눈만 내린다. 아무것도 자라지 못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뭔가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났고 많은 이들이 죽었고 죽이고 죽어가며 떠나는 곳에서의 하루의 이야기이다. 처음에 읽을 때는 집중이 안 되었다. 그러나 조금 읽어가면 갈수록.... 어둡고 우울하고 꿀꿀하기만 할 것 같은 재난 세상의 고립된 인간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차갑고 쓸쓸하지만은 않다.

참 독특한 작가다. 외로운 이야기를 하는 건데.. 사랑이 있고 이웃이 있고 인간미가 있고 이상하게 희망이 있다. 가족이 떠난 곳에서 남은 의사인 그녀에게는 구둣방을 하고 있는 그가 있다. 그에게는 이라는 개 한 마리가 있는데 버려졌던 그 에게 대하는 눈빛에 그녀는 그에게 먼저 반했다. 많은 이들이 회색인이 되어 도시를 벗어났다. 뭔가 좀비의 행렬같은 그들의 순례 행렬에서 이탈한 그들에게는 .... 오늘이 마지막 날인지도 모른다. ‘그게온다니까...대략... 지구 종말이라고 할까?

그렇게 그의 컨테이너 구둣방(가게 겸 숙소)에 있자니 습관처럼 마직막 인사처럼 많은 이들이 잊을만하면 한번씩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들....

 

책이 참 매력있었다. 어두울 것 같지만 그래도 우울이 다가 아닌... 왜 종말을 이야기하는데 따뜻함이 있지? 이야기 중간에 환상특급이야기가 나온다. .. 초등학교 때 정말 재미있게 봤던 이야기였는데...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고 친구들에게도 얘기했고 언젠가 나의 일기장에도 쓰여있는 이야기가 여기 나온다. 항상 부산한 자녀들과 이웃 때문에 전쟁을 치르고 살고 있는 그녀는 조용히 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발견된 오래된 시계 모양의 목걸이... 그걸 끼고 조용히 해!” 했더니 모든 것이 멈췄다. 사람들도 공기도, 바람도, 새도, 물도... 정신 사나운 일상에서 이 stop의 시간을 누리며 행복했던 그녀에게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소련이 핵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그녀는 선택한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대신 그녀는 끝없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 암튼 이런 이야기... 나는 종말을 맞을 때 어떤 것을 선택할까?

 

주문을 풀래요

왜요?”

혼자 남겨지는 것보다는 곁에 있는 사람과 죽는 편이 덜 불행하지 않을까요.”

“......”

같은 순간을 살다, 같은 순간에 죽는 것. 해인 씨는요?”

“......”

왜 대답 안 해요?”

저도요

정말 우리가 하는 얘기를 엿듣고 있었던 걸까? 반이 자기도 그렇다는 듯 내 말에 멍, 하고 짖었다. 하지만 저마다의 눈동자는 모두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게 마법의 목걸이가 있다면 그 움직임만은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들의 불안이 아니라 그들의 불안을 지켜봐야만 하는 나의 불안을 위해서. p.93

 

주인 남자는 개의 몸에 쌓인 눈을 맨손으로 털어 주며 오랫동안 눈을 맞췄다. 나는 그 광경을 밖에 서서 숨죽인 채, 눈을 맞으며 지켜봤다. 순간 심장이 꽁꽁 얼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 찾아왔다. 고약한 날씨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 남자의 눈빛 때문에. 그것은 아주 아득하면서도 묘하게 퍼져 나가는 기운이었는데, 그 경건한 냄새로 눈 속에 숨쉬고 있는 건 사람이었다. 내가 의대 공부며 병원냄새로 조금씩 잃어 갔던 인간의 것. 나와 세상이 가져 본 적 없거나 가졌지만 부족하게 가진 걸 그 개의 주인은 제대로 갖고 있었고, 써야 할 곳에 쓰고 있었다. 내가 반한 것이다. p.126

 

그의 인생 모토는 발이 편해야 인생이 편해진다였다. 내 인생이 편치 않았던 건 발 때문이었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발이 아프고 불편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았다. p. 170

 

정말 몰입해서 읽었다.

작가의 말이 나는 항상 가장 좋다.

 

날짜 없는 달력을 대하듯

소설을 쓰는 일은 백지를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모래 위에 까만 문장으로 지어 올리는 작은 세계

벽돌을 차곡차곡 쌓듯 어떤 문장으로라도 백지를 채워 나가야만하는 하는 일.

건너뛰기나 생략할 수 없으면, 날짜 없는 달력처럼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나는 매번 깜빡 잊고는 한다.

그 세계를 모래 위에 지었다는 사실을.

자그마한 바람에 하나의 세계가 부서지고 나면 파도는 잔해들을 쓸어 가고

내 앞에 백지가 막막하게 놓인다.

날짜 없는 달력처럼 언제 문장이 시작될지 알 수 없는.

 

그렇게 다시, 고통과 절망뿐이 백지 위에 홀로 서 있다. p.263

 

작가님의 고통과 고독으로 만들어진 이 글이 참 좋았다. 감사하다. 항상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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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5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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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

 

정세랑

 

.... 아직도 정세랑 작가 님 작품이 남았다.

이 책..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라는데... 아주 얇고 읽기에 부담없고 딱 좋았다.

 

재인, 재욱, 재훈은 화목한 것과 거리가 먼 위기의 가정에서 자란 남매들이다. 재인과 재욱은 세 살 터울로 직장에 다니고 있고 막둥이 재훈은 재인과는 13살 터울의 고등학교 2학년이다.

허구헌날 바람 피고 다니는 아버지 때문에 항상 폭발 직전이다 자주 폭언을 쏟아내는 엄마 밑에 있는 그들은 집에 있는게 편치 않고 딱히 우애도 좋지 않지만 연례행사처럼 여름 휴가를 함께 보냈다. 특히 이번에는 둘째 재욱이 아랍 사막에 파견 근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 좋지 않은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서 우연히 형광빛 바지락칼국수를 사먹게 된다. 그리고 각자 돌아간 일상...첫째는 대전의 연구단지로, 둘째는 아랍 사막 플랜트 공사장으로, 셋째는 급작스럽게 엄마가 교환학생으로 신청한 조지아 염소농장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능력들이 하나씩 생긴다. (엄청난 초능력은 아니고.... 귀엽다.) 나름 당황하던 순간 배달된 메시지와 소포... 뭔가를 구하라는데.... 처음에는 멍하니 읽었고 읽다보니 너무 재미있고 소소하게 유쾌하고 ... 다정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일상에 찾아드는 아무것도 아닌 우연, 아주 조그만 초능력, 평범하고 작은 친절, 자주 마주치는 다정함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님... 주변 친구, 동생의 이름을 빌려 오셨다는... 항상 작가의 말에서 남기시는 이름 스토리와 작품 탄생 배경 등이 너무 기다려지는 아주 좋은 글들... 이번에도 성공! 아주 다정하고 유쾌했다! 누군가를 구하는 일은 인생에 몇 번 오지 않는 특별한 경험... 나도 단 한명이라도 누군가를 구하며 사는 인생이기를 바라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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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마음산책 짧은 소설
백수린 지음, 주정아 그림 / 마음산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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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백수린

 

진즉에 사두었던 책....작가님 작품은 친애하고 친애하는을 읽었더랬다. 작품이 애매하게 좋았던 기억이다. 할머니와 어머니... 외가댁에서 자랐던 그녀의 마지막 할머니와의 추억 이야기... 어머니나 할머니의 이야기는 무조건 좋은 거기에... 좋았다고 생각하고.. 글이 예스럽게 서정적이어서... 다음 작품을 기대는 했는데 무조건 좋지는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지난 여름에 잔뜩 사 둔 책 중에 하나인데... 책이 참 예뻤거든.

결론... 너무 좋았다. 이 책 덕에 나는 이 작가님의 책을 다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단편 모음집... 그냥 그냥의 이야기들이 잔잔하고 글이 참 깔끔하고 담백하게 서정적이다.

 

13개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멋진 날..... 아이들이 모래놀이를 하던 한낮의 해변..책을 읽던 가운데... 나타난 누군가의 아름다워서요’ .... 뒤에 무슨이야기가 있는지 모르지만... 아름답다는 말을 듣는 어떤 날은 분명 ... 정말 멋진 날이지.

우리, 키스할까?...권태기였던 그가 어느 여자아이와 남자 아이를 보던 날... 봄 향기가 머물 것 같은 늦가을의 한 때... 함께 있는 주정아 작가 님의 단풍 그림이 예술이다.

완벽한 휴가...너무 더워 휴가로 간 공항... 진우와 주희의 어린 시절 휴가 이야기를 나누다 주희는 그 때의 아빠를 떠올린다. 젊었던 ...아무것도 두렵지 않던 아빠...(이야기가 너무 공감되었다.

그 새벽의 온기.... 멜랑꼴리한 그녀, 삶도 잠도 피곤하고 몸도 마음도 추운 그녀에게 찾아온 버려진 개... 그 개의 온기.

봄날의 동물원... 동물원에서 일하던 내게 찾아왔던 사촌 누나와의 봄날의 추억... 홍학.. 아름답고 슬펐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비치 타올.... 보면서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모른다. 너무 공감이 가서... 어느 부분에서 공감일까... 암튼 유독 결론이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

어떤 끝....처음과 끝의 여행...도쿄... 모든 사랑이란건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니까....쓸쓸했다.

비포 선라이즈....엄마와의 파리 여행... 모녀 간의 여행...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여행은 책이나 드라마에서만 가능할 수 있는 법... 암튼 현실적이었다.

언제나 해피엔딩...조교로 있는 민주, 축제 마지막 날이라 오후 강의가 다 휴강이던 어느 날 철학과 사무실에 찾아온 박 선생(큰 백 팩을 들고 다니며, 세상 유행과 동떨어진 차림새, 화장은 물론 어떤 치장도 하지 않고 남에게 절대 피해 안 주며 융통성 없고 고지식하여 훗날 그렇게 될까 두려운 사람의 전형) 이 나타난다. 나는 절대 저렇게 늙지 않을 거야 다짐하는 민주.. 스물일곱 살이 된 이래로 매일매일 초조하다. 대학에 가면 ~해야지 했던 많은 꿈들... 어느 순간 자신이 원했던 것을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아버렸다. 자신은 현재 비정규직, 남친은 몇 년째 공시생.. 암울한 그녀.

 

민주는 스무 살 이후 자신의 삶이란 꿈꾸어왔던 것들을 조금씩 하향 조정하는 날들의 연속인 것처럼 느꼈다. ... 길을 잃지 않으려고 빵을 떼어 길가에 버리며 걸었다는 동화 속의 남매처럼 민주는 자신의 꿈의 디테일을 하나씩 버리며 걸어왔지만, 자신의 삶이 어디쯤 도착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어떤 끝을 향하는지는 더욱 알지 못 했다. p.149

 

암튼 박 선생이 잠깐 차를 마시고 가도 되냐고 물어본 후 자신의 스테인레스 보온병에서 차를 한잔 따라주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옛날 영화관 아르바이트 시절을 이야기해 준다.

영화관 아르바이트의 가장 큰 장점이 뭔지 알아요?’

공짜 영화 보는 건가요?’

아뇨. 결말을 미리 본다는 점이었어요. 그 시절에 뭐가 그렇게 인생에 불안하게 많던지, 영화만이라도 결말을 미리 알고 싶더라고요. 그러면 나는 해피엔딩인 영화만 골라 볼 수 있잖아요.’

 

....‘...괜찮아지나요?’

그 시기만 지나면 그런 불안한 마음은 괜찮아지나요?’

엔딩이 어떻든 누군가 함부로 버리고 간 팝콘을 치우고 나면 언제나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 깨달으면 그다음엔 다 괜찮아져요.’

....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끝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다만 여기, 여기의 온기에 집중하기 위해 아직은 따뜻한 차를 마셨다. p.155~157

이 작품이 가장 여운이 남았다. 뒷표지에 이 글의 문구가 왜 있는지 읽으면서 납득했다.

 

여행의 시작 교직 생활 30년 후 퇴직한 그는 얼마 전 아내와 사별했다. 외롭던 그는 딸이 있는 프랑스로 떠나기로 했다. 아내가 가고 싶어했던 곳, 혼자 가는 비행기와 공항에서의 이야기... 쉽지 않은 여행의 시작 이야기...

 

오직 눈 감을 때 ...옛 연인과의 낯선 중국집에서의 저녁....칠성반점이었으면서 지금은 차이나향이 되어버린... ‘어향가지가 남다른 맛이었다는... ... 먹고 싶다. 나는 이 이야기도 쓸쓸하고 아련하고 너무 좋았다. 나의 최애 작품이다.

 

별것도 아닌 일로 정의 운운하며 핏대 높이고 싸우다가도, 실연하면 쉽게 동지가 되던 나이. 마흔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고, 서른이 되기 전엔 인생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일 조바심이 났다. 뭐는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 사이를 휘청거리면서도 그 나이에만 허락되던 무책임과 자유를 방탕하게 누리던 날들. p.188

 

...그때 우린 왜 그렇게 없는 것이 많았을까? 그와 사귀는 동안에도, 이별하고도 한동안 나는 내가 만약 조금 더 가진 것이 많았다면, 미모든 재능이든 박애주의자같이 넓은 마음씨든, 우리의 관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만약에, 그러니까 아주 만약에, 내가 아니었다면,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그렇다면 나는 더 사랑을 받았을까?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더 마음에 든다고 나는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나 아인 나 아닌 무엇이 되기 위해 안달할 필요가 없으니까. 이제야 비로소 나는 내가 나인 것을 온전히 좋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 나는 점점 더 그런 사람이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가 잃어버린 것,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오직 눈 감을 때에만 내게로 잠시 돌아왔다 다시 멀어지는 모든 것들이 한없이 그리워졌다. 내 것인 줄 알아차리기도 전에 상실해버린 그 모든 것들이. p.194~195

 

참담한 빛.... 부모 준비를 하는 어린 소년 소녀의 이야기... 그들이 온전히 가정을 꾸릴 수 있기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

 

아무 일도 없는 밤.... 요양원에서의 끝을 앞둔 환자와 눈이 엄청 오던 밤 간병인이 옆을 지키던 이야기...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가 이 이야기에서 나왔다. 따뜻했다.

 

... 이렇게 다 적고 나니... 이 작품들은 참 다 좋았다. 아련하게 슬프고 따뜻하고 애잔한 감정들, 여행의 이야기, 추억이기도 하고 그리움이기도 한 이야기들이 예쁜 일러스트와 버무려 참 아름다운 책이 되었다. 글들도 참 아름다웠고.. 계속 소장하고픈 책이다.

민주는 스무 살 이후 자신의 삶이란 꿈꾸어왔던 것들을 조금씩 하향 조정하는 날들의 연속인 것처럼 느꼈다. ... 길을 잃지 않으려고 빵을 떼어 길가에 버리며 걸었다는 동화 속의 남매처럼 민주는 자신의 꿈의 디테일을 하나씩 버리며 걸어왔지만, 자신의 삶이 어디쯤 도착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어떤 끝을 향하는지는 더욱 알지 못 했다.
- P149

....‘...괜찮아지나요?’

‘그 시기만 지나면 그런 불안한 마음은 괜찮아지나요?’

‘엔딩이 어떻든 누군가 함부로 버리고 간 팝콘을 치우고 나면 언제나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 깨달으면 그다음엔 다 괜찮아져요.’

....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끝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다만 여기, 여기의 온기에 집중하기 위해 아직은 따뜻한 차를 마셨다. p.155~157
- P155

...그때 우린 왜 그렇게 없는 것이 많았을까? 그와 사귀는 동안에도, 이별하고도 한동안 나는 내가 만약 조금 더 가진 것이 많았다면, 미모든 재능이든 박애주의자같이 넓은 마음씨든, 우리의 관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만약에, 그러니까 아주 만약에, 내가 아니었다면,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그렇다면 나는 더 사랑을 받았을까?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더 마음에 든다고 나는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나 아인 나 아닌 무엇이 되기 위해 안달할 필요가 없으니까. 이제야 비로소 나는 내가 나인 것을 온전히 좋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 나는 점점 더 그런 사람이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가 잃어버린 것,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오직 눈 감을 때에만 내게로 잠시 돌아왔다 다시 멀어지는 모든 것들이 한없이 그리워졌다. 내 것인 줄 알아차리기도 전에 상실해버린 그 모든 것들이. p.194~195


- P194

별것도 아닌 일로 정의 운운하며 핏대 높이고 싸우다가도, 실연하면 쉽게 동지가 되던 나이. 마흔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고, 서른이 되기 전엔 인생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일 조바심이 났다. 뭐는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 사이를 휘청거리면서도 그 나이에만 허락되던 무책임과 자유를 방탕하게 누리던 날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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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짓, 기적을 일으켜줘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8
팀 보울러 지음, 김은경 옮김 / 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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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짓, 기적을 일으켜줘

 

성장소설을 좋아한다.

[해리포터]를 제치고 카네기메달을 거머쥔 성장소설의 대가 팀 보울러가 10년간 집필한 역작이라는 이 성장소설... ‘리버보이로 유명한 그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표지도 제목도 아름답고 ....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내가 좋아할 모든 요소가 다 들어 있지만... 이 소설은 내겐 썩 좋지 않았다. ... 어둡고 우울한 상황과 이야기라서.... 제목과 표지에서 내가 기대하고 상상했던 방향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미짓(Midget..난쟁이).. 주인공 소년의 상황이자 별명이고 이 책의 원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난쟁이 소년이고 열다섯 살이지만 말을 제대로 하지 못 하게 더듬고, 아이같이 작은 몸, 시도 때도 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비틀린 몸과 근육들로 평생 사람들의 보호막 없는 시선을 받는 삶을 살면서 세상에 버림받고 자신과 세상을 미워하며 사는 아이이다. 간절한 소망이 있지만 누구도 자신이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 아이. 그러다 우연히 자신의 꿈과 같은 미러클 맨을 만나지만.... 그 이야기가 시작되면 정말 아름답고 고운 꿈같은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기적’... 알 수 없는 힘이 아름답게 전개되지 않는 이야기.

미짓을 증오하고 주눅 들게 만드는 것은 몸의 상태보다도 주변 가족이다. 아버지는 좋은 분이시고 사랑을 주지만 두 살 위의 형인 은 정말 이런 나쁜 놈이 다 있나 할 만큼 악랄하고 지속적으로 미짓을 괴롭힌다. 그 이유가 더 끔찍한데.... 미짓을 나으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라나... 그래서 살인자라며... 남들 안 볼 때만 아주 격렬하게 괴롭히는 무슨 싸이코패스같다.

미러클 맨을 만나고 기적을 일으키는 미짓은 서서히 깨닫게 된다. 기적을 일으키는 힘은 자기 안에 있는 거라고.... 그리고 그 아이의 선택...

 

많이 먹먹하다.

삶에 있어 고통이나 행복이 누군가는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했는데... 미짓에게는 왜.... 그의 행복과 기쁨과 사랑과 안위는.... 어디에 있는 걸까?

 

글은 나쁘지 않았다. 그냥 상황이 어두운 거지. 왜 이렇게 고통과 괴로움만이 있는 건데?

 

암튼 성장소설 읽으면 보통 나는 우는데..(그냥도 아니고 눈물콧물 다 흘리며 질질 우는데...) 이건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좋았다는 말은 하기 어려운... ... 왜 이리 어둡고 끝도... 이런 결말 밖에 없어야 했는지... 답답한... 독서였다. 이만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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