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강남역을 지나다가 허삼관이라는 영화 포스터를 보았다.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가 떠올랐고, 원작의 재미를 살렸을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196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을 한국적 상황으로 그려내는 것이 쉽지 않아보였다. ‘허삼관이 결혼자금을 위해 또 돈이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피를 팔아야하는 상황은 비참한 내용과는 달리 많은 웃음을 주었었다. <허삼관 매혈기>매혈기에 강조점을 둔 책이었는데 매혈기라는 뒷말은 떼어버리고 허삼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면 내용이 어떻게 각색 되었을까? 격변기를 자신의 피로 살아내는 허삼관이 영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을까?

 

<인생>은 내가 읽은 위화의 두 번째 작품이다. 주인공 나는 민요를 수집하러 다니다가 푸구이라는 한 노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구전되어 내려오는 민요를 채록하기 위해서는 만나는 사람이 대부분 노인이었을 것이다. 그가 만난 대부분의 노인은 자기가 살아온 날들에 별다른 애정이 없는 듯, 마치 길에서 주워들은 것처럼 몇 가지 사소한 일들만 드문드문 기억할 뿐이었고 이 사소한 기억마저도 자기가 아니라 남에 대한 것이었고, 한두 마디 말로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표현해버렸다.’

 

그러나 푸구이 노인은 달랐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그처럼 또렷하게, 또 그처럼 멋들어지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말고는 또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자기가 젊었을 때 살았던 방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늙어 가는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푸구이라는 노인의 이야기를 내가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작품 역시 중국의 정치적 혼란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굶주림에서 비롯한 삶의 처절함은 <허삼관 매혈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처절함을 부각하거나 부조리에 반항하기보다 그것을 견디며 또 수용하는 한 인물을 그렸다. 피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비슷하다. 위독한 산모에게 헌혈을 하다가 죽는 푸구이 노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야기를 읽을 때면 무지가 가장 큰 폭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피를 뽑다니! 그것도 어린아이의 피를. 소설이긴 하지만 중국에서라면 왠지 가능한 일일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중국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있는 것을 깨닫고 섬짓했다. 한권 책으로 요약된 푸구이 노인의 인생을 통해 내 삶을 요약해보면서 소설의 아니 문학의 기능을 되새겨본 기회였다.

 

장예모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한데 도무지 기억이 없다.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게 되면 대부분 실망하게 되지만 장예모의 영화에 한 번도 나는 실망한 적이 없었다. 원작은 원작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어떤 때는 영화가 원작을 더 빛나게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오래 된 탓인지 영화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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