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 14번 '월광'& 23번 '열정'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작곡, 브렌델 (Alfred Brendel / Brilliant Classics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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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내 작업의 배경이던 음악이 나를 이끌고 연주자를 확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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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 지날 때까지
나쓰메 소세키 지음, 심정명 옮김 / 예옥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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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신문의 전속 작가였던 소세키는 1910년 3월 1일부터 6월 12일까지 총 104회에 걸쳐 『문』을 연재했다. 이후 그는 위장병으로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8월 슈젠지 온천 요양 중에는 증상이 악화되어 대량의 피를 토하게 되고, 이른바 ‘修善寺 의 大患’이라고 부르는 30분 죽음을 체험한다. 병상생활과 관서지방 여행을 하면서 간간히 강연을 하던 1911년 위장병이 재발하여 다시 입원하게 된다. 9월에는 그가 가장 사랑하던 다섯째 딸 히나코가 갑작스레 죽는다. 『피안 지날 때까지』는 1912년 1월부터 4월까지 연재된 작품으로 이것은 소세키가 딸의 죽음과 본인의 짧은 죽음을 체험한 후의 첫 작품인 셈이다. 
 

죽음을 체험하고 나면 사람이 변하는 것인가. 『피안 지날 때까지』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이다. 소제목이 붙어있는 것도, 각각의 소제목마다 화자가 다른 것도 새로웠다. 하지만 그것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한 가지 이야기로 통합되고 있었다. 
 

주인공 게이타로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여기저기 별 성과도 없이 분주히 다니면서 취직을 부탁해 놓고 있다. 한편 친구인 스나가는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도 있고 손을 써주겠다는 친척들이 있지만 이러쿵저러쿵 말만 늘어놓으며 직업을 갖기를 자꾸 미루고 있다. 하루 종일 하숙방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게이타로는 집을 비우는 일이 없는 스나가를 자주 찾게 되고, 그나마도 미안해지면 특별한 볼일도 없이 거리로 나다니곤 한다. 너무나 무료한 나날을 보내는 게이타로는 하다못해 소매치기라도 맞닥뜨리기를 바랄 정도다. 학교를 졸업해도 먹고 사는 게 힘들다면 교육은 권리가 아니라 속박이라며 한탄하던 게이타로는 급기야 경시청의 탐정 같은 일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탐정은 소세키가 ‘무릇 세상에 천한 가업치고 탐정과 고리대금업자만큼 천한 직업은 없다’고 쓸 만큼 가장 경멸하는 직업중의 하나이다. 게이타로 역시 자신이 탐정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저 남의 어두운 면을 관찰할 뿐 스스로 타락할 위험성은 전혀 없’지만 ‘누군가를 함정에 빠뜨리는 의도를 지닌 직업’인 그런 나쁜 일은 할 수 없다고 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인간의 연구자, 아니 인간이라는 기묘한 존재가 어둠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경탄하며 바라보고 싶다’는 것이다. 
 

‘대머리를 붙잡는 것처럼’ 하나같이 ‘세상은 손에 잡히지 않는’ 가운데 게이타로는 취직을 부탁했던 스나가의 숙부 다구치로부터 연락을 받고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덤빈다. 그러자 어떤 사내가 전차에서 내린 뒤 두 시간 이내에 하는 행동을 정찰해서 보고하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탐정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일에 뛰어든 게이타로. 
 

탐정이라는 직업이 정확하게 언제 처음 등장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산업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탐정이라고 하면 나는 왠지 생각나는 것이라곤 바바리코트의 깃을 세운 형사 콜롬보 밖에 없다. 알리바이를 추적하고 지문을 채취하고 밤낮으로 남을 미행하고, 뒤통수치는 질문을 밥 먹듯이 하면서 닦달하다가 꼼짝 못하게 옭아 넣는 수법을 쓰는 사람이 내가 가진 탐정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의 전부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긴장되면서도 음침한 것도 한몫을 한다. 
 

그러나 소세키는 내가 알고 있는 이와 같은 탐정의 수법은 단 한 가지도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그가 이미 소설 전면에 깔아놓은 복선이 이것을 예상하게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복선조차도 다 읽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탐정 역할을 맡은 게이타로가 하는 일은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료함에서 해방되면서 동시에 다구치가 자기에게 맡긴 탐정의 역할을 하고 직업도 얻게 된다. 그리고 스나가의 신상에 얽힌 비밀, ‘고등유민’을 자처하는 마쓰모토의 입을 통해 그의 인생관을 듣는다. 치요코에게서는 어린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듣고, 모리모토에게서는 그가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듣지만 게이타로에게는 여전히 간접 경험이다. “요컨대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해 그가 얻은 최근의 지식과 감정은 전부 고막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게이타로의 바람대로 그는 인간을 움직이는 어두운 면을 경탄하면서 바라보는 인간 연구자가 된 셈이다.
 

스나가의 이야기 가운데는 러시아 작가 안드레예프가 쓴 독일어 번역본 <게당케>라는 소설 이야기가 나온다. 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복수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워 여자가 보는 앞에서 문진으로 남자를 때려죽인다. 이성과 감성의 극점에서 일이 완결되었다. 소세키는 이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이전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고등유민’은 적극적으로 근대와 맞서는 느낌이었다. 『피안 지날 때까지』에도 여전히 고등유민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근대에 맞선다는 느낌이 현저하게 격감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전의 작품들이 세계와 자아의 대립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자아 내부의 문제들에 더 비중을 두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덧) 안드레예프의 소설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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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4-1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정신의 풍경'에서 언급되는 나쓰메소세키는 '도련님'을 통해 일본문화 중 '기리義理'에 관해 엿볼 수 있음 이었어요. 그러면서 기리 때문에 정의를 행할 수 없다는 말이 품는 뜻, 즉 일본 사회에서 기리가 도덕보다 더 강력한 사회적 구속력을 갖는 점을 언급한 것이었거든요.

일본의 유명한 감독인 이마무라 쇼헤이는 일본의 근대를 섹스<여자들이 성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된 것>라고 본다고 했고 일본의 사상가인 다케우치는 근대라는 기간이 오직 동양과 서양 사이의 긴장들에서만 출연했고 전쟁은 단지 그러한 긴장관계들의 가장 최근의 일일 뿐이라고 하던데요... 소세키에서의 근대란 개인의 출연.. 개인 내부의 문제로의 침잠일까요? ...반딧불이님?

물론 소세키의 죽음 30, 40년 이후 '근대의 초극'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이는 모든 서양적인 것의 초극으로 그리고 결국 대동아 공영권들의 이데올로기의 정당화로 귀착되기는 하지만은요.
<나쓰메소세키의 책은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어서.. 하지만 모든 것이 언제나 잡거하는 식의 일본 문화의 특성에 주목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아니 어쩌면 데이비드 하비가 그랬듯이 근대성의 신화 가운데 하나인 '과거와의 철저한 단절'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문제일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

반딧불이 2010-04-11 11:48   좋아요 0 | URL
소세키의 작품은 근본적으로 근대가 야기하는 모든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여성의 성과 자유연애, 개인의 탄생, 인간 내면의 출현 등등이요. 이런 것들은 소세키가 의도적으로 쓴 것같지만 일본인들의 정신적 원형이라 할 수 있을 기리(義理)에 대한 것은 소세키에게도 무의식적으로 습득된 것은 아닐까 싶어요.

우리나라의 이식적 근대와는 달리 일본은 자발적 근대라고 말할 수 있다면 소세키는 이렇게 반성없이 그것도 너무나 빨리 진행되는 근대에 대해 비판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보관함에만 담아두고 있는 <일본 정신의 풍경>을 빨리 보고싶어져요. 현대인들님. 소세키 책,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으실 거에요.

반딧불이 2010-04-12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행이라니요. 당치 않으십니다. 여우님의 의견 적극 참고 하면서 일단 끝까지 가겠습니다. 다 모아지고 부끄럽지 않으면 여우님께 보내드리겠습니다.늘 모자란 글을 아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슬픈 과녁/이정원

 

 

비 그친 사이
고추잠자리 한 쌍 옥상 위를 빙빙 돌고 있다
두 마리가 하나로 포개져 있다

누가 누구를 업는다는 거
업고 업히는 사이라는 거

오늘은 왠지 아찔한 저 체위가 엄숙해서 슬프다

서로가 서로에게 서러운 과녁으로 꽂혀서
맞물린 몸 풀지 못하고
땅에 닿을 듯 말 듯 스치며 나는 임계선 어디쯤
 

문득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있다
앉는 곳이 곧 무덤일
질주의 끝이 곧 휴식일 어느 산란처

죽은 날개는 너무 투명해서 내생까지 환히 들여다보인다.

 

아버지는 휘파람을 잘 부셨다. 해질녘이면 서쪽하늘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곤 하셨다. 아버지 등에 업혀 휘파람 소리를 듣던 날이 있었다. 아버지 발등에 내 발을 올리고 걸음마를 하던 날도 있었다. 아버지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올려다보면 아버지가 동화속의 키다리 아저씨처럼 커보였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오빠생각’이라는 노래를 불러주셨다.‘뜸북뜸북 뜸북새’로 시작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로 끝나며 여운을 잔뜩 남겨주던 노래. 노래가 끝나면 아버지는 늘 ‘그만 못 사왔네’하시며 다음에는 꼭 구두를 사다주겠다고 약속 하셨었다. 노래를 부를수록 약속은 무한정 연기되곤 했다. 구두도 없고 약속도 잊고 더 이상 아버지의 등을 탐할 수 없게 되었지만 아버지의 등에 대한 기억은 여전하다. 업히면 넓고 따뜻했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면 다이알 비누냄새가 났다. 시큼한 땀 냄새가 나는 날도 많았지만 그것이 피붙이의 냄새인 것 마냥 향기롭기까지 했다. 어깨 너머로는 세상이 신작로처럼 뻥 뚫려 보였다.

 
무너져 내릴 만큼 마음 고단한 날. 따뜻한 등이 그리운 날. ‘누가 누구를 업는다는 거/업고 업히는 사이라는 거’나즈막이 소리 내어 읖조려 본다. 업고 업혀 다다른 곳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라는 거 생각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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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31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31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작법을 위한 기도/박현수

 

 

저희에게

한 번도 성대를 거친 적이 없는

발성법을 주옵시며

나날이 낯선

마을에 당도한 바람의 눈으로

세상에 서게 하소서

의도대로 시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옵시며

상상력의 홀씨가

생을 가득 떠돌게 하소서

회고는

노쇠의 증좌임을 믿사오니

사물에서 과거를

연상하지 않게 하옵시며

밤벌레처럼 유년을

파먹으며 생을 허비하지 않게 하소서

거짓 희망으로

시를 끝내지 않게 하옵시며

삶이란 글자 속에

시가 이미 겹쳐 있듯이

영원토록

살갗처럼 시를 입게 하소서

 

어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에게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이 기도라고 여겼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뻔뻔스럽게 여겨져 기도는 해보지 못했다. 오히려 평소에는 안 찾다가 저 아쉬운 때만 찾는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낼 것 같아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시인은 ‘한 번도 성대를 거친 적이 없는 발성법’을 달라고 한다. ‘나날이 낯선/마을에 당도한 바람의 눈으로/세상에 서게’해달라고 한다. 성대를 거친 적이 없는 발성법과 낯선 눈으로 세상에 서는 것은 누군가에게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또 시인은‘회고는/노쇠의 증좌임을’믿고, ‘밤벌레처럼 유년을/파먹으며 생을 허비하지 않게’해달라고 한다. 시적 지향을 갖지 못하고 과거의 추억담을 늘어놓는 시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경계하는 자기 확인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시인에게 기도는 절대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경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성의 골이 깊을수록 성취의 봉우리는 높을 것이다. '삶이란 글자 속에/ 시가 이미 겹쳐있'다는 것을 아는 시인은 시를 쓰기보다 시를 살것이다. 함께 기도하기로 하자.

 

   

위험한 독서  
박현수 (지은이) |

천년의시작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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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6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7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넙치 2010-03-27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멘!! 외치고 싶은 시네요.^^

반딧불이 2010-03-27 11:12   좋아요 0 | URL
아참. 기도가 끝나면 해야하는거지요. 아멘!!!

알로하 2010-04-29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시 읽었습니다.

반딧불이 2010-04-29 22:51   좋아요 0 | URL
알로하님 반갑습니다. 흔적 남겨주셔서 고맙구요.
 
바퀴벌레
데이비드 조지 고든 지음, 문명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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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래전이었는데 식품보관하는 찬장 바닥에 설탕이 흩어져 있었다. 나는 딸아이가 흘려놓은줄 알고 무심코 지나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건 바퀴벌레의 소행이었다. 어느날 딸아이가 툴툴거리며 미술도구들을 치우고 있었다. 누가 물감가지고 서랍속에 장난을 쳤다는 것이다. 깨알보다도 작은 색색의 물감이 마치 과립물감처럼 서랍속에 흩어져 있었다. 이것도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바퀴벌레의 작품이었다.

이렇게 내가 아는 바퀴벌레는 아주 정직한 동물이었다. 설탕을 먹으면 하얀 똥을 싸고 물감을 먹으면 노란색, 연두색, 빨간색 등 색색의 똥을 싼다. 신기해하면서 찾아보았던 기억으로 이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소화기관의 구조탓이라고 들었다. 바퀴벌레는 음식을 가리지 않지만 상당한 미식가로 알려져 있다. 지방이나 단백질보다도 녹말이나 설탕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오이나 샐러리는 싫어하지만 사람의 속눈썹을 잘라먹기도 하고 코딱지도 먹는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바퀴벌레가 노린 것은 털이 아니라 눈물관의 미네랄과 습기란다. 바퀴벌레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40여일을 견디는데 이것은 바퀴벌레의 정상적인 생명의 절반이라고 한다. 40여일을 안먹고 살아있다는 사실보다 정상수명이 100일도 안된다는 사실이 나는 더 놀라웠다. 그러나 바퀴벌레의 수명은 그 종류에 따라서 300 - 600여일까지 다양했다.

요즈음은 거의 바퀴벌레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의 300여 쪽에 이르는 페이지의 대부분에 바퀴벌레 그림이 나온다. 한두마리씩 나오기도 하고 무더기로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끔찍하다거나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안생긴다. 오래 함께 지내다보면 친구가 되는걸까?

이 책의 원제목은 『바퀴벌레(The Complet Cockroach) 지구상에서 가장 멸시받는 생물에 대한 포괄적 지침서』이다. 바퀴벌레는 단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또 예고 없이 불쑥불쑥 나타난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멸시받은 생물이 되었다. 그러나 3500여종에 달하는 바퀴벌레는 이 지구상에 대륙이 형성될 즈음 나타나 공룡의 출현과 사멸을 지켜보았으며 침팬지와 비슷했던 동물이 인간으로 진화해가는 것을 지켜본 장본인이다. 화석을 연구한 지질학적 증거로 보면 인간보다 3억 4천만년이나 앞서 있다고 한다.

발열성(냉혈) 무척추동물로 몸 속에 등뼈는 물론 뼈나 연골같은 지지구조가 하나도 없다거나 위 속에 이빨이 있다거나 두개의 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들은 무지한 내가 접하는 최신 정보다. 바퀴벌레는 닭같은 육류보다 세 배 이상 단백질이 풍부하며 맛은 새우맛이라고 한다. 바퀴벌레로 잼을 만들어먹기도 하고 날것으로 먹는 민족도 있고 숯불에 그을려 먹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인간이 바퀴벌레를 싫어하는 것보다 바퀴벌레가 더 싫어하는 인간유형이 아닐까 싶다.

'세상 모든 생존의 지존'이라는 바퀴벌레에 관한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책에서 내가 관심있었던 부분은 카프카의 『변신』에 관한 부분이었다. 여전히 넘어야할 산으로 남아있는 카프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여기에 옮겨 놓는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시작되는 프란츠 카프가의 『변신』은 1915년 11월에 독일에서 처음으로 발간되었다. 하지만 이 흉측한 벌레가 많은 독자들이 가정한 대로 정말 바퀴벌레 였을까? 
 

이 실존주의적 고전의 저자는 입을 다물고 있다. 카프카는 표지에 그레고르의 변태된 모습을 그린 삽화를 싣지 못하게 했으며, 특히 출판업자에게는 "곤충 그 자체의 모습도 그려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통보하였다. 이러한 명령에 따라 삽화가인 오토마 스타크는 책의 초판에 사용될 표지를 만들었는데, 가운과 슬리퍼를 신고 있는 한 남자가, 공포에 사로잡혀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남자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는 열린 문이 있고, 그 문을 통하여 심연의 암흑만이 보일 뿐이다. 
 

카프카의 작품에 나오는 곤충을 설명하기 위해 주의 깊게 선택한 단어들은 의도적으로 애매모호하다. 독일어 원본에서는 그레고르를 ungeheueres Ungeziefer라고 묘사하고 있는데, 첫 번째 단어는 '집에서는 설 장소가 없는 괴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고, 두 번째 단어는 '희생시키기에 적합하지 않은 불결한 동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 첨가하여 '괴물 같은 해충'이라는 뜻도 있다. 이처럼 두음(頭音)을 일치시킨 문장은 '악독한 벌레와 '거대한 공충'으로 해석되어왔다. 여기에 대한 단서는 많지 않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다. 잠자는 정확히 어떤 종류의 곤충으로 변한 것일까? 그의 변태의 초기 단계에서는, 그레고르는 빈대처럼 납작하다고 했다. 너무나 얇아 베개 밑으로 쉽게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고, 이빨을 사용하여 문의 열쇠를 조작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문은 "둥근 갈색의 복부, 아치모양의 갈비뼈에 의한 구분" 그리고 "눈앞에서 어찌해볼 수도 없이 물결치는 그 많은 다리들......" 한참 이후에, 잠자의 가정부는 그레고르를 미스터카퍼(mistkafer)라고 불렀는데, 많은 학자들에 의해 '늙은 쇠똥구리'라고 해석되었으며, 다른 이름으로는 '왕쇠똥구리'라고도 한다. 이런 여러가지로 보아 『변신』의 상징주의와 고대 이집트의 내세에 대한 믿음 사이에는 그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려 비평가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내세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믿음은 왕쇠똥구리에 의해 표현되고 있는데, 왕쇠똥구리의 유충은 땅 속에서 부화되어, 건조하고 생명이 없는 사막의 모래를 뚫고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프카가 바퀴벌레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는 41세에 죽기 직전에, 소설가인 막스 브로드에게 그의 소설 원고를 포함한 모든 서류를 소각해 달라는 편지를 썼다. 그렇지만 브로드는 죽어가는 작가의 요청을 무시하기로 결심했고, 수년이 지난 후에, 카프카의 일기들을 모아 출판할 수 있었다. 일기의 어느 부분에도 그레고르의 진정한 본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가장 그럴 듯한 가능성으로, 『변신』의 신비한 주인공은 소원해지고 이간된 저자 바로 그 자신이며, 그는 바퀴벌레처럼 그의 짧은 인생 동안 인간성에 의해 고통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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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4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4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03-25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잘 읽고 갑니다.^^
놀랍고 진지하고 풍부한 느낌을 줘요. 반딧불이님!

반딧불이 2010-03-26 01:3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께서 저를 예쁘게 봐주신 거 아닐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