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데이비드 조지 고든 지음, 문명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오래전이었는데 식품보관하는 찬장 바닥에 설탕이 흩어져 있었다. 나는 딸아이가 흘려놓은줄 알고 무심코 지나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건 바퀴벌레의 소행이었다. 어느날 딸아이가 툴툴거리며 미술도구들을 치우고 있었다. 누가 물감가지고 서랍속에 장난을 쳤다는 것이다. 깨알보다도 작은 색색의 물감이 마치 과립물감처럼 서랍속에 흩어져 있었다. 이것도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바퀴벌레의 작품이었다.

이렇게 내가 아는 바퀴벌레는 아주 정직한 동물이었다. 설탕을 먹으면 하얀 똥을 싸고 물감을 먹으면 노란색, 연두색, 빨간색 등 색색의 똥을 싼다. 신기해하면서 찾아보았던 기억으로 이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소화기관의 구조탓이라고 들었다. 바퀴벌레는 음식을 가리지 않지만 상당한 미식가로 알려져 있다. 지방이나 단백질보다도 녹말이나 설탕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오이나 샐러리는 싫어하지만 사람의 속눈썹을 잘라먹기도 하고 코딱지도 먹는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바퀴벌레가 노린 것은 털이 아니라 눈물관의 미네랄과 습기란다. 바퀴벌레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40여일을 견디는데 이것은 바퀴벌레의 정상적인 생명의 절반이라고 한다. 40여일을 안먹고 살아있다는 사실보다 정상수명이 100일도 안된다는 사실이 나는 더 놀라웠다. 그러나 바퀴벌레의 수명은 그 종류에 따라서 300 - 600여일까지 다양했다.

요즈음은 거의 바퀴벌레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의 300여 쪽에 이르는 페이지의 대부분에 바퀴벌레 그림이 나온다. 한두마리씩 나오기도 하고 무더기로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끔찍하다거나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안생긴다. 오래 함께 지내다보면 친구가 되는걸까?

이 책의 원제목은 『바퀴벌레(The Complet Cockroach) 지구상에서 가장 멸시받는 생물에 대한 포괄적 지침서』이다. 바퀴벌레는 단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또 예고 없이 불쑥불쑥 나타난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멸시받은 생물이 되었다. 그러나 3500여종에 달하는 바퀴벌레는 이 지구상에 대륙이 형성될 즈음 나타나 공룡의 출현과 사멸을 지켜보았으며 침팬지와 비슷했던 동물이 인간으로 진화해가는 것을 지켜본 장본인이다. 화석을 연구한 지질학적 증거로 보면 인간보다 3억 4천만년이나 앞서 있다고 한다.

발열성(냉혈) 무척추동물로 몸 속에 등뼈는 물론 뼈나 연골같은 지지구조가 하나도 없다거나 위 속에 이빨이 있다거나 두개의 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들은 무지한 내가 접하는 최신 정보다. 바퀴벌레는 닭같은 육류보다 세 배 이상 단백질이 풍부하며 맛은 새우맛이라고 한다. 바퀴벌레로 잼을 만들어먹기도 하고 날것으로 먹는 민족도 있고 숯불에 그을려 먹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인간이 바퀴벌레를 싫어하는 것보다 바퀴벌레가 더 싫어하는 인간유형이 아닐까 싶다.

'세상 모든 생존의 지존'이라는 바퀴벌레에 관한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책에서 내가 관심있었던 부분은 카프카의 『변신』에 관한 부분이었다. 여전히 넘어야할 산으로 남아있는 카프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여기에 옮겨 놓는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시작되는 프란츠 카프가의 『변신』은 1915년 11월에 독일에서 처음으로 발간되었다. 하지만 이 흉측한 벌레가 많은 독자들이 가정한 대로 정말 바퀴벌레 였을까? 
 

이 실존주의적 고전의 저자는 입을 다물고 있다. 카프카는 표지에 그레고르의 변태된 모습을 그린 삽화를 싣지 못하게 했으며, 특히 출판업자에게는 "곤충 그 자체의 모습도 그려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통보하였다. 이러한 명령에 따라 삽화가인 오토마 스타크는 책의 초판에 사용될 표지를 만들었는데, 가운과 슬리퍼를 신고 있는 한 남자가, 공포에 사로잡혀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남자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는 열린 문이 있고, 그 문을 통하여 심연의 암흑만이 보일 뿐이다. 
 

카프카의 작품에 나오는 곤충을 설명하기 위해 주의 깊게 선택한 단어들은 의도적으로 애매모호하다. 독일어 원본에서는 그레고르를 ungeheueres Ungeziefer라고 묘사하고 있는데, 첫 번째 단어는 '집에서는 설 장소가 없는 괴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고, 두 번째 단어는 '희생시키기에 적합하지 않은 불결한 동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 첨가하여 '괴물 같은 해충'이라는 뜻도 있다. 이처럼 두음(頭音)을 일치시킨 문장은 '악독한 벌레와 '거대한 공충'으로 해석되어왔다. 여기에 대한 단서는 많지 않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다. 잠자는 정확히 어떤 종류의 곤충으로 변한 것일까? 그의 변태의 초기 단계에서는, 그레고르는 빈대처럼 납작하다고 했다. 너무나 얇아 베개 밑으로 쉽게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고, 이빨을 사용하여 문의 열쇠를 조작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문은 "둥근 갈색의 복부, 아치모양의 갈비뼈에 의한 구분" 그리고 "눈앞에서 어찌해볼 수도 없이 물결치는 그 많은 다리들......" 한참 이후에, 잠자의 가정부는 그레고르를 미스터카퍼(mistkafer)라고 불렀는데, 많은 학자들에 의해 '늙은 쇠똥구리'라고 해석되었으며, 다른 이름으로는 '왕쇠똥구리'라고도 한다. 이런 여러가지로 보아 『변신』의 상징주의와 고대 이집트의 내세에 대한 믿음 사이에는 그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려 비평가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내세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믿음은 왕쇠똥구리에 의해 표현되고 있는데, 왕쇠똥구리의 유충은 땅 속에서 부화되어, 건조하고 생명이 없는 사막의 모래를 뚫고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프카가 바퀴벌레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는 41세에 죽기 직전에, 소설가인 막스 브로드에게 그의 소설 원고를 포함한 모든 서류를 소각해 달라는 편지를 썼다. 그렇지만 브로드는 죽어가는 작가의 요청을 무시하기로 결심했고, 수년이 지난 후에, 카프카의 일기들을 모아 출판할 수 있었다. 일기의 어느 부분에도 그레고르의 진정한 본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가장 그럴 듯한 가능성으로, 『변신』의 신비한 주인공은 소원해지고 이간된 저자 바로 그 자신이며, 그는 바퀴벌레처럼 그의 짧은 인생 동안 인간성에 의해 고통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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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4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4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03-25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잘 읽고 갑니다.^^
놀랍고 진지하고 풍부한 느낌을 줘요. 반딧불이님!

반딧불이 2010-03-26 01:3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께서 저를 예쁘게 봐주신 거 아닐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