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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 지날 때까지
나쓰메 소세키 지음, 심정명 옮김 / 예옥 / 2009년 9월
평점 :
아사히 신문의 전속 작가였던 소세키는 1910년 3월 1일부터 6월 12일까지 총 104회에 걸쳐 『문』을 연재했다. 이후 그는 위장병으로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8월 슈젠지 온천 요양 중에는 증상이 악화되어 대량의 피를 토하게 되고, 이른바 ‘修善寺 의 大患’이라고 부르는 30분 죽음을 체험한다. 병상생활과 관서지방 여행을 하면서 간간히 강연을 하던 1911년 위장병이 재발하여 다시 입원하게 된다. 9월에는 그가 가장 사랑하던 다섯째 딸 히나코가 갑작스레 죽는다. 『피안 지날 때까지』는 1912년 1월부터 4월까지 연재된 작품으로 이것은 소세키가 딸의 죽음과 본인의 짧은 죽음을 체험한 후의 첫 작품인 셈이다.
죽음을 체험하고 나면 사람이 변하는 것인가. 『피안 지날 때까지』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이다. 소제목이 붙어있는 것도, 각각의 소제목마다 화자가 다른 것도 새로웠다. 하지만 그것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한 가지 이야기로 통합되고 있었다.
주인공 게이타로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여기저기 별 성과도 없이 분주히 다니면서 취직을 부탁해 놓고 있다. 한편 친구인 스나가는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도 있고 손을 써주겠다는 친척들이 있지만 이러쿵저러쿵 말만 늘어놓으며 직업을 갖기를 자꾸 미루고 있다. 하루 종일 하숙방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게이타로는 집을 비우는 일이 없는 스나가를 자주 찾게 되고, 그나마도 미안해지면 특별한 볼일도 없이 거리로 나다니곤 한다. 너무나 무료한 나날을 보내는 게이타로는 하다못해 소매치기라도 맞닥뜨리기를 바랄 정도다. 학교를 졸업해도 먹고 사는 게 힘들다면 교육은 권리가 아니라 속박이라며 한탄하던 게이타로는 급기야 경시청의 탐정 같은 일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탐정은 소세키가 ‘무릇 세상에 천한 가업치고 탐정과 고리대금업자만큼 천한 직업은 없다’고 쓸 만큼 가장 경멸하는 직업중의 하나이다. 게이타로 역시 자신이 탐정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저 남의 어두운 면을 관찰할 뿐 스스로 타락할 위험성은 전혀 없’지만 ‘누군가를 함정에 빠뜨리는 의도를 지닌 직업’인 그런 나쁜 일은 할 수 없다고 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인간의 연구자, 아니 인간이라는 기묘한 존재가 어둠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경탄하며 바라보고 싶다’는 것이다.
‘대머리를 붙잡는 것처럼’ 하나같이 ‘세상은 손에 잡히지 않는’ 가운데 게이타로는 취직을 부탁했던 스나가의 숙부 다구치로부터 연락을 받고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덤빈다. 그러자 어떤 사내가 전차에서 내린 뒤 두 시간 이내에 하는 행동을 정찰해서 보고하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탐정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일에 뛰어든 게이타로.
탐정이라는 직업이 정확하게 언제 처음 등장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산업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탐정이라고 하면 나는 왠지 생각나는 것이라곤 바바리코트의 깃을 세운 형사 콜롬보 밖에 없다. 알리바이를 추적하고 지문을 채취하고 밤낮으로 남을 미행하고, 뒤통수치는 질문을 밥 먹듯이 하면서 닦달하다가 꼼짝 못하게 옭아 넣는 수법을 쓰는 사람이 내가 가진 탐정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의 전부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긴장되면서도 음침한 것도 한몫을 한다.
그러나 소세키는 내가 알고 있는 이와 같은 탐정의 수법은 단 한 가지도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그가 이미 소설 전면에 깔아놓은 복선이 이것을 예상하게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복선조차도 다 읽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탐정 역할을 맡은 게이타로가 하는 일은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료함에서 해방되면서 동시에 다구치가 자기에게 맡긴 탐정의 역할을 하고 직업도 얻게 된다. 그리고 스나가의 신상에 얽힌 비밀, ‘고등유민’을 자처하는 마쓰모토의 입을 통해 그의 인생관을 듣는다. 치요코에게서는 어린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듣고, 모리모토에게서는 그가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듣지만 게이타로에게는 여전히 간접 경험이다. “요컨대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해 그가 얻은 최근의 지식과 감정은 전부 고막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게이타로의 바람대로 그는 인간을 움직이는 어두운 면을 경탄하면서 바라보는 인간 연구자가 된 셈이다.
스나가의 이야기 가운데는 러시아 작가 안드레예프가 쓴 독일어 번역본 <게당케>라는 소설 이야기가 나온다. 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복수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워 여자가 보는 앞에서 문진으로 남자를 때려죽인다. 이성과 감성의 극점에서 일이 완결되었다. 소세키는 이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이전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고등유민’은 적극적으로 근대와 맞서는 느낌이었다. 『피안 지날 때까지』에도 여전히 고등유민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근대에 맞선다는 느낌이 현저하게 격감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전의 작품들이 세계와 자아의 대립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자아 내부의 문제들에 더 비중을 두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덧) 안드레예프의 소설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