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SULEBOOK ver.3/ 독서기록장 책 50권 읽기 - red
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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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억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건 30대 중반이었다. 아이가 미술학원에 있는 동안 나는 같은 건물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수영장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보니 수영복은 없고 스케치북만 들고 있었다. 아이에게 수영복을 주어서 학원에 보냈으면 좋으련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준답시고 수영복과 아이는 집에 두고 스케치북만 들고 갔던 것이다.

쓰레받기나 무선전화기를 냉장고에 넣어두는 일은 사건도 아니었다. 공과금을 내기 위해 은행에 가던 날, 가는 길에 버리겠다고 쓰레기 봉지를 같이 들고 나갔는데 은행에 도착해보니 지갑은 온데간데없고 쓰레기봉투만 들고 있었다.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이 지갑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던 것이다. 내게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고 나름 심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한바탕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나 역시 치명적이 아니었던 탓인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가 내 머리 속에 무슨 벌레가 한 마리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던 건 단어들이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때였다. 딸아이 이름을 부르는데 갑자기 아이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나도 모르게 아들이름을 부른다거나 동생들 이름을 다 부르고 나서야 아이 이름이 떠오르는 식이었다. 더 심각한건 책을 읽어도 읽을 때 뿐 책을 덮으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전에서 찾은 영어단어의 해석을 보고 읽던 책으로 옮겨오면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수준까지 가버렸다. 거리상으로는 불과 10cm도 안되고 시간상으로 겨우 2,3초 걸린 경우인데도 말이다. 나는 이것이 내 관자놀이 주변에서 펄떡거리는 편두통 때문이라 여겼다.

나는 메모를 시작했지만 메모한 사실을 햄스터가 해바라기 씨 까먹듯 까먹었다. 소형이를 준형이로 부른다고 아이가 바뀌는 것도 아니요, 냉장고 속 전화기는 꺼내면 그만,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지갑도 사다리타고 들어가 건져오면 그만이다. 밑줄은 좍좍 그어져있는데도 그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읽은 책에 대한 아무런 기억 없음은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이래서 시작한 것이 리뷰쓰기였다. 리뷰는 써보니 쓴 것만큼 딱 그만큼만 내 몫이라는 것이다. 리뷰를 쓰기 위해 이런 저런 노트들을 쓰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대학노트, 삼공노트, 스프링노트, 가네쉬 데일리 노트, 옥스포드 프리미엄 노트 등의 순으로 진화해왔다.  

 

 집에 굴러다니는 대학노트 두어 권을 쓰고는 새로 사야했을 때 삼공노트를 준비했다. 분량이 많아지면 파일링을 할 수 있어서 편했지만, 크기가 너무 큰 것이 단점이었다. 다음으로 쓴 것은 스프링 노트. 밤늦은 시간, 집중이 잘 안되거나 눈 아플 때 만년필로 좋은 글귀를 옮겨 적거나 뭔가를 끄적일 때 만년필촉이 종이 위를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면 공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스프링 노트는 한참 쓰다보면 스프링에 손이 걸려 불편하다. 그리고 사이즈가 좀 큰 편이어서 핸드백에 잘 안 들어가는 단점이 있다. 한 권 쓰고 가네쉬 데일리 노트로 건너뛰었다. 이 노트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어디를 펴도 180도로 완벽하게 펼쳐져 손에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없다는 것. 360도로 펴도 마찬가지. 겉표지도 단단하고 핸드백에도 속속 들어간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줄 간격이 좁다는 것. 눈이 점점 어두워져서 요즈음은 두 칸에 걸쳐 써야 할 판이다.   

  

 


 

  

  옥스퍼드에서 나오는 프리미엄 노트북은 착한 가격에 사이즈 알맞고 180도로 완벽하게 펼쳐지고 줄 간격도 적당하다. 굳이 아쉬움을 찾자면, 자주 쓰다 보니 노트 귀퉁이가 뒤집어진다.

  

 

최근 받은 캡슐 노트북. 공교롭게도 가네쉬 노트북과 색깔도 크기도 비슷하다. 다만 가네쉬의 커버가 가죽느낌이 난다면 캡슐노트는 양장본 책 커버의 두꺼운 종이 느낌이 난다는 것이 다르다. 이 캡슐노트는 오직 독서노트로 쓰도록 만들어졌다. 읽어야할 책 목록과 읽은 책의 목록을 적을 수 있게 되어있다. 제목, 지은이, 옮긴이, 출판사 등 책에 대한 기본정보를 적는 칸을 포함, 책 50권을 읽고 정리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번호도 매겨 두었다. 무엇보다도 반가웠던 것은 노트 뒤쪽에 있는 대한민국 지역별 도서관 리스트다. 도서관의 주소와 전화번호, 인터넷 싸이트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두었다. 절판된 책을 구해야 할 때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목표를 세우고 책읽기에 도전하는 사람이나 청소년들에게 선물로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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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25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런 말씀... 좀 그렇지만... "최근 받은 캡슐 노트북..."으로 시작하는 문단을 두 번 쓰셨는데요... 일부러 그러신 거죠? 그렇죠?

글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그만 웃고 말았지만 반딧님껜 고통이자 두려움이었을 걸 생각하니 죄송하네요. 저도 요즘 비슷한 상황이거든요. 가스레인지에 뭘 올려놓기가 겁나고, 사람들과 대화하기도 두려워져요. 정말 잊어서는 안 되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곤 해서요 ㅠㅠ 그래도 힘내세요. 너무 신경쓰면 우울증 생긴다니까 말예요^^

반딧불이 2010-07-25 10:11   좋아요 0 | URL
한 문단을 못넘기는 저의 건망증을 적나라하게 보여드리려고 그만....ㅋㅋ

가스레인지..이거 무서운거죠. 아이들 준다고 메추리알을 삶다가 그만 깜빡했는데 갑자기 집안에서 폭탄터지는 소리가...
메추리알이 천정으로 날아가 불꽃놀이를 하는 기이한 현상이..쩝

2010-07-25 0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5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7-25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년 정도 사용한 독서노트가 있어요. 고등학교, 대학 생활을 함께 했으니 인연이 꽤 깊지요.
중간에 다른 노트도 사용해 봤지만 정들어서 그런지 다시 같은 노트에 적게 되더라구요. 전에 적어놓은 거 보면 유치해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지만 지금의 생각과는 꽤 다르다는 생각도 들구요.
노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시는군요? 사용하는 게 속지만 끼워 놓으면 되는거라 앞으로도 계속 쓸 듯 합니다.

반딧불이 2010-07-25 13:06   좋아요 0 | URL
닥나무님~ 노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게 아니라요, 제가 워낙 양은냄비 풀죽 끓듯 변덕스러워서 그래요.

근데 정말 대단하시다~ 12년을 쓰시다니....그건 어떤 노트에요?(급관심)

파고세운닥나무 2010-07-25 21:23   좋아요 0 | URL
저는 그런 변덕이 좀 부러워요~
흔히 쓰는 다이어리에요. 규격 모양이니 속지만 계속 갈아 끼우면 되구요. 정들어서 다른 노트 쓸 생각도 없어졌네요^^;

반딧불이 2010-07-25 22:07   좋아요 0 | URL
부러울 것도 많으셔라. 이렇게 변덕을 부리다가 마음에 드는걸 만나면 죽도록 한가지만 고집하기는 해요. 저는 가끔 여행갈 때 제가 쓰던 리뷰노트를 갖고 가거든요. 이국에서 과거의 나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닥나무님도 어디 먼길 여행가실 때 들고 가셔서 12년 전의 닥나무님을 낯선 곳에서 만나보세요.

blanca 2010-07-25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저는 님이 참한 아가씨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이가 있다는 말에 놀랐습니다.^^;; 왠지 반딧불이님한테서는 그런 참한 아가씨의 느낌이 풍겨와요.

그리고 저는 리뷰랑 페이퍼랑 범벅에 다 쓰는 것도 아니라서 독서 기록이 엉망입니다. 예전에 어떤 블로거분이 독서달력폼을 올려 놓으셨던데 이런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참, 반딧불이님은 그러면 온라인 오프라인 병행하시는 거예요? 저도 체계를 좀 잡아가야 할 것 같아서요. 이런 노트에 관한 얘기는 언제나 저를 매혹합니다.^^ 제가 문구에 심하게 집착한답니다.

반딧불이 2010-07-25 22:22   좋아요 0 | URL
흠흠..제가 한가면 하지요? 블랑카님.

저는 원래 오프라인이었는데요. 노상 그 노트를 들고 다니기도 뭣하고 먼 곳에 갔을 때도 요긴하고 해서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한거에요. 그러다 여기 알라딘 서재까지 왔구요. 제가 워낙 정리에 젬병인 여자라서 아직도 제대로 틀을 갖추지는 못했어요.

노트들은 가끔 소파위를 뒹굴면서 들여다보는데 요긴하고 블로그는 복사하거나 다른분들의 글과 비교해볼 때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블랑카님께서는 글을 많이 쓰시던데 워드가 훨씬 편하지 않으시겠어요? 좋은 점은 있어요.만년필로 밤에 글씨 연습하듯이 쓰면요. 잉크냄새도 좋구요. 낙엽위를 건너가는 바람의 발자국소리를 듣는 것 같아 마음이 차분해져요.

블랑카님께서도 문구에 집착하시는군요~ 문구관련 글도 좀 올려주세요. 저도 좀 따라하게요.

라로 2010-07-27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이 사용하시는 만년필은 몽블랑????이 글을 읽으며 전 왜 그게 제일 궁금할까요????내가 생각해도 참 독특해,,,ㅠㅠ

라로 2010-07-27 11:30   좋아요 0 | URL
이 질문은 왜 회피하심????ㅎㅎㅎㅎ

반딧불이 2010-07-27 12:43   좋아요 0 | URL
하하..지금 봤어요. 나비님.
참내..메롱~ 하고 도망가봐야 요기 계시면서~

제가 쓰는 만년필은 세일러에요. 많이 비싼건 아니지만 나름 맘에 들어요. 이미지를 올려드리고싶은데..알라딘에는 안보이네요.
 
대통령의 독서법 - 성공으로 이끄는 책읽기의 즐거움
최진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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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최근 독서교육지원 시스템이 2학기부터 각 학교에 도입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초중고생들은 독서교육지원 시스템 안에 자신의 독서활동을 기록 저장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미 부산에서 시범운영을 했고 전국적으로 확대적용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서기록은 대학입학전형에도 적극 활용될 모양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교사의 부담도 늘어나고 학생들 역시 읽고 싶은 책보다 읽어야할 책이 늘어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 문학작품 같은 경우 작품을 감상하는 질보다 축약본 등을 통한 량에 치우치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주위에서 나는 분명히 경험하고 있다. 그 사람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독서량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얼마만큼 체화 하느냐 하는 독서의 질이 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데 독서의 효과를 가늠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대통령의 독서법』이 궁금했던 건 이런 이유에서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그들이 읽은 책이 그들에게 어떤 정책을 펴게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 궁금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이명박 현 대통령까지 대통령 8명의 독서기록을 분석하고 그 결과에 각각의 이름을 붙였다. 이명박은 ‘속독파의 실용 독서법’, 노무현은 ‘다독파의 비판 독서법’, 김대중은 ‘정독파의 관찰 독서법’ 등이다. 사투리 때문에 웃지 못 할 사건도 많았고 ‘지구의 종말이 올 때까지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김영삼의 독서법은 ‘발췌독파의 알맹이 독서법’이다. 사과하나를 잘못 먹어 응급실에 실려가 단층촬영까지 받아야했던 나에게는 참 무서운 실언이었다. 그런 대통령의 실언이 발췌독의 부작용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십년도 더 전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총 8명의 대통령 중 이승만을 제외한 일곱 명 대통령의 시대를 나는 살아왔다. 나는 정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여겼던 적도 있었고 대통령은 단지 우러러야할 대상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무관하다고 여겼던 대통령이나 국가, 정부, 정치 같은 단어들이 내 삶에 속속들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고 대통령의 얼굴을 보며 혀를 차야하는 날도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을 정치인으로 만나는 불편함은 잠시 괄호쳐두고 한 명의 독서인으로 만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이 읽은 독서의 영향력을 가늠해보기 위해서는 미천하지만 그동안 접해왔던 역사서나 현재의 여론, 정책 등을 모두 연계시켜 보아야했다.

책읽기를 즐겨하지 않았던 전두환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을 주변에 두었고, 충성도보다도 독서량으로 사람을 판단했다고 한다. 이러한 판단기준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모르겠다. 책을 많이 읽은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인 듯 하고 가장 폭넓게 읽은 사람은 이승만 인 것 같다. 그러나 어떤 독서법이 옳고 어떤 독서법이 그르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우리는 성공을 통해서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실패했다면 거기에는 일정정도 독서의 몫도 있었을터이니 우리는 그들의 실패를 거울 삼으면 되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독서 방식에는 왕도가 없다. 아니 왕도가 있다. 나만의 방식이 바로 왕도이다.” 능력이 된다면 그들의 다양한 독서법을 모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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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5 0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5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근데 어떻게 가져가야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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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7-13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이렇게 하는거구나. 근데..허락도 받기전에 갖고 와버렸네. 어쩌냐.

비로그인 2010-07-13 13:21   좋아요 0 | URL
오호~ 이렇게 하는 거로군요. 허락은요 무슨.
근데 저렇게 써 있으니 더 재미있네요.
지구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묻고 계신 것 같아요^^

반딧불이 2010-07-13 14:11   좋아요 0 | URL
ㅎㅎ 옮겨놓고 보니 무슨 선문답하는 것 같아 저도 혼자 웃었어요. 감탄만 하시지마시고 답을 내 놓으세요. 답을!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6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하늘연못이란 출판사에서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출간한다고 하네요. 2권까지 나왔던데, 전권이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집이 나온 김에 저도 미뤘던 나쓰메와의 만남을 다시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반딧불이 2010-07-16 22:41   좋아요 0 | URL
네..저도 하이드님 페이퍼에서 소식듣고 확인해봤어요. 이전의 <몽십야>가 나왔네요. 저는 소세키 책은 모두 갖고 있어요. 새로운 작품이 번역되면 좋겠어요. 닥나무님 만남과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7 14:12   좋아요 0 | URL
알고 계셨군요?^^;
'청년 3부작' 가운데 마지막 책인 <문>을 읽어볼 계획이에요. '반딧불이'님은 어떤 번역본으로 보셨나요?

반딧불이 2010-07-17 16:09   좋아요 0 | URL
닥나무님. 소세키 번역자가 어찌나 많던지요. 오유리, 유은경, 노재명, 윤상인,.... 등등이요. <도련님> <고양이> <마음>은 번역자가 여러명인것으로 알고 있어요.번역본을 다 살펴볼 수는 없었구요. <마음>은 김성기본과 박유하 본을 보았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박유하번역이 훨씬 좋았구요. <문>은 유은경 번역으로 알고 있는데, 그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거에요. 특별히 걸리는 부분도 별로 없었던 기억이구요. 닥나무님 읽으신다니까 저도 문득 다시보고싶은 생각이...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8 11:06   좋아요 0 | URL
네, 유익한 정보 고맙습니다^^
 
나무가 말하였네 1 - 시가 된 나무, 나무가 된 시 나무가 말하였네
고규홍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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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칼럼니스트라는 저자는 나무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시 70편과 함께 엮었다. 시가 70편이라고 했지만 그것이 반드시 나무의 수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또 나무는 각각의 이름을 가진 나무도 있고, 그 각각의 나무를 총칭하는 나무로도 등장한다. 왼쪽 페이지에는 시인의 시를 싣고 시에 등장하는 나무나 꽃에 대한 저자의 글은 오른쪽 페이지에 실었다. 시에 대한 섣부른 해석이나 감상을 덧붙인 글은 아니어서 시는 시 대로, 저자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따로 읽을 수도 있다.

 

강은교의 <나무가 말하였네>를 시작으로 오세영의 <나무처럼>까지 내로라하는 시인부터 나는 처음 접하는 시인의 시까지 딱히 어떤 수순에 따르지는 않고 실은 듯하다. 등장하는 모든 나무들을 내가 분별하지는 못하지만 대부분 한번쯤 들어본 이름들이다. 하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는/커다란 소태나무 한 그루가 있다”로 시작하는 고영민의 시는 시도 나무이름도 모두 초면이다. 그런데 정말 소태처럼 쓴 맛을 지닌 소태나무가 있어 초여름에는 황록색의 꽃을 피우고 물로 헹궈내도 그 맛이 잘 가시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맛본 가장 쓴 맛은 라일락 이파리였다. 우리이름으로 수수꽃다리라고 불리는 이 꽃은 꽃잎이 네 개인데 어쩌다 다섯 잎을 가진 꽃을 피우기도 한다. 이것을 씹지 않고 삼키면 첫사랑의 연인이 자기를 오래오래 기억해준다고 하는 속설이 있다. 여고시절 독일어를 가르치시던 담임선생님을 짝사랑해서 라일락꽃이 피는 오뉴월이면 쉬는 시간마다 라일락나무아래 섰던 기억이 있다. 어떤 날은 꽃잎이 열네 개나 되는 꽃을 발견한 적도 있었다. 선생님은 라일락 꽃잎뿐만 아니라 라일락 나뭇잎의 쓴맛도 알게 해주었다. 소태나무와 라일락과 사랑 중에 가장 쓴 맛은 어느 것일까?

 

한 시인의 시집을 읽다보면 시에 자주 등장하는 동식물이 있다. 시적 상관물로 등장하는 이러한 동식물로 시인의 성정을 가늠해보는 일은 시를 읽는 또 다른 재미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나무’라는 이름으로 묶인 70명의 시 한편씩이 실려 있다. 나무 시의 숲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나무에 관한 시들은 화려한 미사여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깨달음이나 겸허함, 배움의 자세 등이 주로 나타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듯도 한데 나는 이제야 겨우 이것을 발견했다.

 

이 책을 나는 아름답다고만 말하지 않겠다. 끔찍해서 아름다운 나무도 있고, 반짝이며 흔들리는 나무도 있고, 사람도 싣지 않은 텅 빈 기차 같은 나무도 있고, 한 평생 배워야할 나무도 있다. 굳이 말하자면 이 책은 나무답다. 이 많은 나무에 관한 시들을 골라낸 저자도 역시 나무답다.

 

 

고로쇠 나무/마경덕

 

 

백운산에서 만난 고목 한 그루, 밑둥에 큼직한 물통 하나 차고 있었다. 물통을 반쯤 채우다 말고 물관 깊숙이 박힌 플라스틱 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군가 등치에 구멍을 뚫고 수액을 받던 자리. 시름시름 잎이 지고. 발치의 어린 순들, 마른 잎을 끌어다 푸른 발등을 덮고 있다.

 

주렁주렁 링거를 달고 변기에 앉은 어머니. 기저귀를 갈아주는 자식놈에게 부끄러워 얼른 무릎을 붙이는 어머니, 옆구리에 두 개의 플라스틱 주머니와 큼직한 비닐 오줌보를 매단 어머니. 호스를 통해 세 개의 주머니에 채워지는 어머니의 붉은 육즙肉汁, 오십 년 간 수액을 건네준 저 고로쇠나무.

 

 

 

 

미루나무/박재삼

 

미루나무에

강물처럼 감기는

햇빛과 바람

돌면서 빛나면서

이슬방울 튕기면서

은방울 굴리면서.

 

사랑이여 어쩔래,

그대 대하는 내 눈이

눈물 괴면서 혼이 나가면서

아, 머리 풀면서, 저승 가면서,

 

 

 

죽편竹篇 1/서정춘

-여행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나무학교/문정희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푸른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놓을 때

사랑한다!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하며 나무를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P.S : 이부분은 나도 남들처럼 '접힌부분 펼치기' 기능을 이용해 넣고 싶은데 나는 왜 이 기능이 안되는 걸까?    


이책은 마음산책의 블로그 오픈 이벤트로 받은 책이다. 선착순 50명이라고 했으니 나는 원래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책을 받게 된 까닭은 순전히 댓글로 응원을 달아주신 분들 덕분이거나 '마음산책'님의 자비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책을 알게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음산책입니다. 

3주동안, 마음산책 식구들을 너무나도 행복하게 했던  블로그 오픈 이벤트에 참여해주신 독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고심하여 고르셨을 책을 보내드리는 마음 참으로 뿌듯하고, 받아보시고 기뻐하실 걸 생각하니 웃음이 씨익-나고, 어쩐지 연애편지를 쓰는 기분이 드는 건 오버일까요?^^: 

도란도란 이야기가 있는 마음산책 블로그- 부디 잊지 마시고 자주 들러주세요. 

이른 더위와 곧 다가올 장마에 지치지 마시고 건강 잘 지키시는 여름 보내시고요. 

감사합니다! 

마음산책 올림

 

 
   

 책속에 넣어보내준 메모다. 메모를 읽으면서 책만 덜렁 받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프던 몸이 씻은듯이 나았다면 '마음산책'님이 오버한다고 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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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07-12 12:30   좋아요 0 | URL
ㅎㅎ 저승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다시 사랑에 빠지고 싶어하잖아요.
'눈물의 시인'이라는 별명이 저 시인에게 왜붙었는지 이제 좀 알것도 같아요.
 


여행은 준비하는 동안 가장 행복하고 돌아와서 추억할 때 두 번째로 행복한 것 같다. 정작 여행 중에는 행복감보다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약간의 두려움으로 다소 긴장되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긴장은 비정기적으로 나를 유혹하고 나는 못이기는 척 넘어가기도 한다. 특별히 옥죄어 살고 있다는 느낌도 없는데 낯선 이국의 땅에 서면 자유로움이 땀구멍까지 파고드는 느낌이 든다. 탕진해야만 할 것 같은 자유로움! 그러나 이 자유는 돌아가야 할 집의 말뚝에 매어 있는 신축성 좋은 끈에서 연유한 것이라는 걸 안다.

준비하는 동안 가장 행복한 것이 여행이라고 했지만 정작 여행을 떠나지 못하면 이 행복은 무효다. 스스로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취소된 이번 여행도 돌이켜보면 행복한 고문이었다. 사실 내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은 다윈의 섬이라 불리는 갈라파고스 군도다. 이곳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된 것은 『핀치의 부리』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리뷰를 연결하면 미리 다녀오신 분의 멋진 사진이 링크되어 있다.) 

    
 

 

 

 

 

 

http://blog.aladin.co.kr/734872133/2083304 

때로는 사막처럼 뜨겁고 또 때로는 무지막지한 스콜이 반복되는 이곳은 한마디로 극한 상황의 무대다. 나는 이곳이 왜 나의 로망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아무런 증세도 없이 잠복기만 있는 무사한 내 일상이 반란을 꿈꾸는 걸까? 만만찮은 비용과 캐나다-에쿠아도르-갈라파고스를 거쳐야하는 거리, 한달 이상을 잡아야하는 시간적 여유, 저질체력 등등이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꿈꾸지도 말아야하느냐고 부추기는 걸까?   

이유가 무엇이든 그곳의 여러가지가 나를 유혹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척박한 환경이 그렇고,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면서도 화려한 동물들의 때깔이 그렇고, 우편배달부 없는 새빨간 우체통이 또한 그렇다. 어떤 요행이 내게 와서 갈라파고스의 땅을 밟을 수 있다면 나는 한 마리 반딧불이가 되어 단 며칠 깜박이다 죽어도 좋으리라. 그리고 나는 내게 보내는 편지를 쓰겠다. 다음 생으로라면 몰라도 아무도 내게 배달해주지 말라는 부탁이 있는 편지 말이다. 

이런 간절함은 늘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올여름 계획했던 곳은 동유럽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헝가리.독일 등등. 그 중에서도 독일은 여행지가 아니라 만나고 싶은 사람, 아니 만나야할 사람때문에 더욱 기대를 하던 곳이기도 했다. 베르테르처럼 슬픔의 총탄을 머리속에 박아넣을만큼은 아니었지만 라일락의  달콤한 향기와 이파리의 소태처럼 쓴 첫사랑의 맛을 알려준 사람이 거기 있었다. 아니 거기 있다고 믿었다.

      

 

 

 

 

 

 

   

 여행지와 관련된 이런저런 책들을 찾다가 알게된 것은 동유럽에 대한 안내책자가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는 표지모델의 저 눈빛 때문에  매료되었던 책이다. 혹시라도 저런 눈빛을 가진 남자를 만난다면??? 물음표를 몇개씩 붙여두고 뒷감당 못할 꿈에 부풀었었다. 

<오후 5시 동유럽의 골목을 걷다>는 생각보다 조금 두툼하다.  여행지 정보는 본의 아니게 여행자들을  골탕먹이기 쉽다. 사라지는 것들 새로 생기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한시적인 정보들은 거의 없다. 각 나라들의 역사, 문화에 더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또 여행자의 담담한 기술이 여행으로 들뜨기 쉬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겸허하게 준비해야할 것들을 일러준다.

<굴라쉬 브런치>. 아무래도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실망한 책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위의 책과는 여러가지로 비교되는 책이기도 하다. 프롤로그에서 짜라투스트라의 고독을 얘기하다가 짜파게티로 건너 뛰면서 짭짭 입맛을 다실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를 못했다.  몇장 넘기다보니 책장이 두어 쪽 툭떨어지면서 한페이지씩 자꾸 떨어지려 할 때도 나는 이것을 어떤 징후로 느껴야 옳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은이가 욕조가 없는 숙소에서 샤워기로 샤워하는 장면의 글을 읽으면서 모든 기대를 접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 다리를 앞뒤 양옆으로 쳐들고 아크로바틱과 요가와 발레가 결합된 창조적인 동작을 선보여가면서 한참동안 세척에 열중했다." 

저자의 뒷물하는 얘기까지 독자가 읽어야한단 말인가? 그냥 흐르는 물로 닦으면 안되나? 꼭 저렇게 고차적인 자세로 유난을 떨며 씻어야 하나? 지저분하게 사는 나는 이해가 안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읽었다. 읽다가 읽다가 혹시라도 내가 지금 뭘 잘못읽고 있나 싶어 확인하면서 읽다가 이 책이 '동유럽 여행기'가 아니라  '동유럽 독서여행기'라는 걸 알았다. 그러고나서는 몇권 책을 챙기고 던져두었다. 

   

 

 

 

 

 

클림트의 황금빛에 오래 취해 있었는데 이상하게 에곤 실레에게 더 마음이 간다. 빈에는 왜 이렇게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많은건가? <빈이 사랑한 천재들>은 지은이가 기자인 모양인데 깔끔한 글과 적당한 깊이와 넓이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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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7-10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래 폴란드 소설선을 보고 있는데, 폴란드를 한 번 가보고 싶더라구요. 소위 '아우슈비츠 문학'이라 말하는 소설을 봤는데 아우슈비츠도 한 번 가보고 싶구요. 우연찮게 10년만에 다시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봤는데, 아우슈비츠가 또 나오더라구요.
저는 언제쯤 동유럽 여행 계획이라도 세울 수 있을까요?^^;
반딧불이님, 더 좋은 기회가 있으실 거에요^^

반딧불이 2010-07-10 22:51   좋아요 0 | URL
참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영화를 보셨네요. 저는 준비하느라 <프라하의 봄>을 다시봤어요. 점령군과 시위대가 맞서는 장면, 테레사가 마구 찍어대는 카메라가 총알없는 총과 같다는 생각도 해보고, 다니엘 데이루이스를 침흘리며 봤다죠. 아우슈비츠까지는 이번 계획에 없었지만 언젠가 저도 가보고싶은 곳이에요.

그런데 닥나무님.폴란드 소설은 어떤게 있지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1 11:10   좋아요 0 | URL
창비에서 얼마 전에 나온 세계문학전집에 폴란드편이 있어요. 표제작이 <신사숙녀 여러분, 가스실로>인데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어요. 표제작 말고도 좋은 작품이 많더라구요. <쿠오바디스>란 영화 아시죠? 이 선집에도 이 영화의 원작자인 헨릭 시엔키에비츠의 단편이 실려 있어요.
폴란드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모습이 한국과 비슷하기도 해 문학적 모습도 유사한 모습이 꽤 있더라구요.

반딧불이 2010-07-11 21:15   좋아요 0 | URL
아..네 저도 등대지기 인가..하는 단편을 본 기억이 있어요.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본 심보르스카도 폴란드인이네요. 지리학적으로 우리와 비슷하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