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말하였네 1 - 시가 된 나무, 나무가 된 시 나무가 말하였네
고규홍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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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칼럼니스트라는 저자는 나무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시 70편과 함께 엮었다. 시가 70편이라고 했지만 그것이 반드시 나무의 수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또 나무는 각각의 이름을 가진 나무도 있고, 그 각각의 나무를 총칭하는 나무로도 등장한다. 왼쪽 페이지에는 시인의 시를 싣고 시에 등장하는 나무나 꽃에 대한 저자의 글은 오른쪽 페이지에 실었다. 시에 대한 섣부른 해석이나 감상을 덧붙인 글은 아니어서 시는 시 대로, 저자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따로 읽을 수도 있다.

 

강은교의 <나무가 말하였네>를 시작으로 오세영의 <나무처럼>까지 내로라하는 시인부터 나는 처음 접하는 시인의 시까지 딱히 어떤 수순에 따르지는 않고 실은 듯하다. 등장하는 모든 나무들을 내가 분별하지는 못하지만 대부분 한번쯤 들어본 이름들이다. 하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는/커다란 소태나무 한 그루가 있다”로 시작하는 고영민의 시는 시도 나무이름도 모두 초면이다. 그런데 정말 소태처럼 쓴 맛을 지닌 소태나무가 있어 초여름에는 황록색의 꽃을 피우고 물로 헹궈내도 그 맛이 잘 가시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맛본 가장 쓴 맛은 라일락 이파리였다. 우리이름으로 수수꽃다리라고 불리는 이 꽃은 꽃잎이 네 개인데 어쩌다 다섯 잎을 가진 꽃을 피우기도 한다. 이것을 씹지 않고 삼키면 첫사랑의 연인이 자기를 오래오래 기억해준다고 하는 속설이 있다. 여고시절 독일어를 가르치시던 담임선생님을 짝사랑해서 라일락꽃이 피는 오뉴월이면 쉬는 시간마다 라일락나무아래 섰던 기억이 있다. 어떤 날은 꽃잎이 열네 개나 되는 꽃을 발견한 적도 있었다. 선생님은 라일락 꽃잎뿐만 아니라 라일락 나뭇잎의 쓴맛도 알게 해주었다. 소태나무와 라일락과 사랑 중에 가장 쓴 맛은 어느 것일까?

 

한 시인의 시집을 읽다보면 시에 자주 등장하는 동식물이 있다. 시적 상관물로 등장하는 이러한 동식물로 시인의 성정을 가늠해보는 일은 시를 읽는 또 다른 재미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나무’라는 이름으로 묶인 70명의 시 한편씩이 실려 있다. 나무 시의 숲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나무에 관한 시들은 화려한 미사여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깨달음이나 겸허함, 배움의 자세 등이 주로 나타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듯도 한데 나는 이제야 겨우 이것을 발견했다.

 

이 책을 나는 아름답다고만 말하지 않겠다. 끔찍해서 아름다운 나무도 있고, 반짝이며 흔들리는 나무도 있고, 사람도 싣지 않은 텅 빈 기차 같은 나무도 있고, 한 평생 배워야할 나무도 있다. 굳이 말하자면 이 책은 나무답다. 이 많은 나무에 관한 시들을 골라낸 저자도 역시 나무답다.

 

 

고로쇠 나무/마경덕

 

 

백운산에서 만난 고목 한 그루, 밑둥에 큼직한 물통 하나 차고 있었다. 물통을 반쯤 채우다 말고 물관 깊숙이 박힌 플라스틱 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군가 등치에 구멍을 뚫고 수액을 받던 자리. 시름시름 잎이 지고. 발치의 어린 순들, 마른 잎을 끌어다 푸른 발등을 덮고 있다.

 

주렁주렁 링거를 달고 변기에 앉은 어머니. 기저귀를 갈아주는 자식놈에게 부끄러워 얼른 무릎을 붙이는 어머니, 옆구리에 두 개의 플라스틱 주머니와 큼직한 비닐 오줌보를 매단 어머니. 호스를 통해 세 개의 주머니에 채워지는 어머니의 붉은 육즙肉汁, 오십 년 간 수액을 건네준 저 고로쇠나무.

 

 

 

 

미루나무/박재삼

 

미루나무에

강물처럼 감기는

햇빛과 바람

돌면서 빛나면서

이슬방울 튕기면서

은방울 굴리면서.

 

사랑이여 어쩔래,

그대 대하는 내 눈이

눈물 괴면서 혼이 나가면서

아, 머리 풀면서, 저승 가면서,

 

 

 

죽편竹篇 1/서정춘

-여행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나무학교/문정희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푸른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놓을 때

사랑한다!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하며 나무를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P.S : 이부분은 나도 남들처럼 '접힌부분 펼치기' 기능을 이용해 넣고 싶은데 나는 왜 이 기능이 안되는 걸까?    


이책은 마음산책의 블로그 오픈 이벤트로 받은 책이다. 선착순 50명이라고 했으니 나는 원래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책을 받게 된 까닭은 순전히 댓글로 응원을 달아주신 분들 덕분이거나 '마음산책'님의 자비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책을 알게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음산책입니다. 

3주동안, 마음산책 식구들을 너무나도 행복하게 했던  블로그 오픈 이벤트에 참여해주신 독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고심하여 고르셨을 책을 보내드리는 마음 참으로 뿌듯하고, 받아보시고 기뻐하실 걸 생각하니 웃음이 씨익-나고, 어쩐지 연애편지를 쓰는 기분이 드는 건 오버일까요?^^: 

도란도란 이야기가 있는 마음산책 블로그- 부디 잊지 마시고 자주 들러주세요. 

이른 더위와 곧 다가올 장마에 지치지 마시고 건강 잘 지키시는 여름 보내시고요. 

감사합니다! 

마음산책 올림

 

 
   

 책속에 넣어보내준 메모다. 메모를 읽으면서 책만 덜렁 받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프던 몸이 씻은듯이 나았다면 '마음산책'님이 오버한다고 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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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07-12 12:30   좋아요 0 | URL
ㅎㅎ 저승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다시 사랑에 빠지고 싶어하잖아요.
'눈물의 시인'이라는 별명이 저 시인에게 왜붙었는지 이제 좀 알것도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