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SULEBOOK ver.3/ 독서기록장 책 50권 읽기 - red
국내
평점 :
절판


 

기억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건 30대 중반이었다. 아이가 미술학원에 있는 동안 나는 같은 건물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수영장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보니 수영복은 없고 스케치북만 들고 있었다. 아이에게 수영복을 주어서 학원에 보냈으면 좋으련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준답시고 수영복과 아이는 집에 두고 스케치북만 들고 갔던 것이다.

쓰레받기나 무선전화기를 냉장고에 넣어두는 일은 사건도 아니었다. 공과금을 내기 위해 은행에 가던 날, 가는 길에 버리겠다고 쓰레기 봉지를 같이 들고 나갔는데 은행에 도착해보니 지갑은 온데간데없고 쓰레기봉투만 들고 있었다.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이 지갑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던 것이다. 내게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고 나름 심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한바탕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나 역시 치명적이 아니었던 탓인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가 내 머리 속에 무슨 벌레가 한 마리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던 건 단어들이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때였다. 딸아이 이름을 부르는데 갑자기 아이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나도 모르게 아들이름을 부른다거나 동생들 이름을 다 부르고 나서야 아이 이름이 떠오르는 식이었다. 더 심각한건 책을 읽어도 읽을 때 뿐 책을 덮으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전에서 찾은 영어단어의 해석을 보고 읽던 책으로 옮겨오면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수준까지 가버렸다. 거리상으로는 불과 10cm도 안되고 시간상으로 겨우 2,3초 걸린 경우인데도 말이다. 나는 이것이 내 관자놀이 주변에서 펄떡거리는 편두통 때문이라 여겼다.

나는 메모를 시작했지만 메모한 사실을 햄스터가 해바라기 씨 까먹듯 까먹었다. 소형이를 준형이로 부른다고 아이가 바뀌는 것도 아니요, 냉장고 속 전화기는 꺼내면 그만,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지갑도 사다리타고 들어가 건져오면 그만이다. 밑줄은 좍좍 그어져있는데도 그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읽은 책에 대한 아무런 기억 없음은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이래서 시작한 것이 리뷰쓰기였다. 리뷰는 써보니 쓴 것만큼 딱 그만큼만 내 몫이라는 것이다. 리뷰를 쓰기 위해 이런 저런 노트들을 쓰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대학노트, 삼공노트, 스프링노트, 가네쉬 데일리 노트, 옥스포드 프리미엄 노트 등의 순으로 진화해왔다.  

 

 집에 굴러다니는 대학노트 두어 권을 쓰고는 새로 사야했을 때 삼공노트를 준비했다. 분량이 많아지면 파일링을 할 수 있어서 편했지만, 크기가 너무 큰 것이 단점이었다. 다음으로 쓴 것은 스프링 노트. 밤늦은 시간, 집중이 잘 안되거나 눈 아플 때 만년필로 좋은 글귀를 옮겨 적거나 뭔가를 끄적일 때 만년필촉이 종이 위를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면 공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스프링 노트는 한참 쓰다보면 스프링에 손이 걸려 불편하다. 그리고 사이즈가 좀 큰 편이어서 핸드백에 잘 안 들어가는 단점이 있다. 한 권 쓰고 가네쉬 데일리 노트로 건너뛰었다. 이 노트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어디를 펴도 180도로 완벽하게 펼쳐져 손에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없다는 것. 360도로 펴도 마찬가지. 겉표지도 단단하고 핸드백에도 속속 들어간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줄 간격이 좁다는 것. 눈이 점점 어두워져서 요즈음은 두 칸에 걸쳐 써야 할 판이다.   

  

 


 

  

  옥스퍼드에서 나오는 프리미엄 노트북은 착한 가격에 사이즈 알맞고 180도로 완벽하게 펼쳐지고 줄 간격도 적당하다. 굳이 아쉬움을 찾자면, 자주 쓰다 보니 노트 귀퉁이가 뒤집어진다.

  

 

최근 받은 캡슐 노트북. 공교롭게도 가네쉬 노트북과 색깔도 크기도 비슷하다. 다만 가네쉬의 커버가 가죽느낌이 난다면 캡슐노트는 양장본 책 커버의 두꺼운 종이 느낌이 난다는 것이 다르다. 이 캡슐노트는 오직 독서노트로 쓰도록 만들어졌다. 읽어야할 책 목록과 읽은 책의 목록을 적을 수 있게 되어있다. 제목, 지은이, 옮긴이, 출판사 등 책에 대한 기본정보를 적는 칸을 포함, 책 50권을 읽고 정리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번호도 매겨 두었다. 무엇보다도 반가웠던 것은 노트 뒤쪽에 있는 대한민국 지역별 도서관 리스트다. 도서관의 주소와 전화번호, 인터넷 싸이트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두었다. 절판된 책을 구해야 할 때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목표를 세우고 책읽기에 도전하는 사람이나 청소년들에게 선물로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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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25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런 말씀... 좀 그렇지만... "최근 받은 캡슐 노트북..."으로 시작하는 문단을 두 번 쓰셨는데요... 일부러 그러신 거죠? 그렇죠?

글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그만 웃고 말았지만 반딧님껜 고통이자 두려움이었을 걸 생각하니 죄송하네요. 저도 요즘 비슷한 상황이거든요. 가스레인지에 뭘 올려놓기가 겁나고, 사람들과 대화하기도 두려워져요. 정말 잊어서는 안 되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곤 해서요 ㅠㅠ 그래도 힘내세요. 너무 신경쓰면 우울증 생긴다니까 말예요^^

반딧불이 2010-07-25 10:11   좋아요 0 | URL
한 문단을 못넘기는 저의 건망증을 적나라하게 보여드리려고 그만....ㅋㅋ

가스레인지..이거 무서운거죠. 아이들 준다고 메추리알을 삶다가 그만 깜빡했는데 갑자기 집안에서 폭탄터지는 소리가...
메추리알이 천정으로 날아가 불꽃놀이를 하는 기이한 현상이..쩝

2010-07-25 0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5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7-25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년 정도 사용한 독서노트가 있어요. 고등학교, 대학 생활을 함께 했으니 인연이 꽤 깊지요.
중간에 다른 노트도 사용해 봤지만 정들어서 그런지 다시 같은 노트에 적게 되더라구요. 전에 적어놓은 거 보면 유치해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지만 지금의 생각과는 꽤 다르다는 생각도 들구요.
노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시는군요? 사용하는 게 속지만 끼워 놓으면 되는거라 앞으로도 계속 쓸 듯 합니다.

반딧불이 2010-07-25 13:06   좋아요 0 | URL
닥나무님~ 노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게 아니라요, 제가 워낙 양은냄비 풀죽 끓듯 변덕스러워서 그래요.

근데 정말 대단하시다~ 12년을 쓰시다니....그건 어떤 노트에요?(급관심)

파고세운닥나무 2010-07-25 21:23   좋아요 0 | URL
저는 그런 변덕이 좀 부러워요~
흔히 쓰는 다이어리에요. 규격 모양이니 속지만 계속 갈아 끼우면 되구요. 정들어서 다른 노트 쓸 생각도 없어졌네요^^;

반딧불이 2010-07-25 22:07   좋아요 0 | URL
부러울 것도 많으셔라. 이렇게 변덕을 부리다가 마음에 드는걸 만나면 죽도록 한가지만 고집하기는 해요. 저는 가끔 여행갈 때 제가 쓰던 리뷰노트를 갖고 가거든요. 이국에서 과거의 나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닥나무님도 어디 먼길 여행가실 때 들고 가셔서 12년 전의 닥나무님을 낯선 곳에서 만나보세요.

blanca 2010-07-25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저는 님이 참한 아가씨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이가 있다는 말에 놀랐습니다.^^;; 왠지 반딧불이님한테서는 그런 참한 아가씨의 느낌이 풍겨와요.

그리고 저는 리뷰랑 페이퍼랑 범벅에 다 쓰는 것도 아니라서 독서 기록이 엉망입니다. 예전에 어떤 블로거분이 독서달력폼을 올려 놓으셨던데 이런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참, 반딧불이님은 그러면 온라인 오프라인 병행하시는 거예요? 저도 체계를 좀 잡아가야 할 것 같아서요. 이런 노트에 관한 얘기는 언제나 저를 매혹합니다.^^ 제가 문구에 심하게 집착한답니다.

반딧불이 2010-07-25 22:22   좋아요 0 | URL
흠흠..제가 한가면 하지요? 블랑카님.

저는 원래 오프라인이었는데요. 노상 그 노트를 들고 다니기도 뭣하고 먼 곳에 갔을 때도 요긴하고 해서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한거에요. 그러다 여기 알라딘 서재까지 왔구요. 제가 워낙 정리에 젬병인 여자라서 아직도 제대로 틀을 갖추지는 못했어요.

노트들은 가끔 소파위를 뒹굴면서 들여다보는데 요긴하고 블로그는 복사하거나 다른분들의 글과 비교해볼 때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블랑카님께서는 글을 많이 쓰시던데 워드가 훨씬 편하지 않으시겠어요? 좋은 점은 있어요.만년필로 밤에 글씨 연습하듯이 쓰면요. 잉크냄새도 좋구요. 낙엽위를 건너가는 바람의 발자국소리를 듣는 것 같아 마음이 차분해져요.

블랑카님께서도 문구에 집착하시는군요~ 문구관련 글도 좀 올려주세요. 저도 좀 따라하게요.

라로 2010-07-27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이 사용하시는 만년필은 몽블랑????이 글을 읽으며 전 왜 그게 제일 궁금할까요????내가 생각해도 참 독특해,,,ㅠㅠ

라로 2010-07-27 11:30   좋아요 0 | URL
이 질문은 왜 회피하심????ㅎㅎㅎㅎ

반딧불이 2010-07-27 12:43   좋아요 0 | URL
하하..지금 봤어요. 나비님.
참내..메롱~ 하고 도망가봐야 요기 계시면서~

제가 쓰는 만년필은 세일러에요. 많이 비싼건 아니지만 나름 맘에 들어요. 이미지를 올려드리고싶은데..알라딘에는 안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