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봄날(기 드 모파상)

따뜻한 날들이 찾아오고, 땅이 다시 깨어나 푸르러지며, 봄 내음 가득한 공기가 우리를 감싸 가슴속 깊이 스며들 때, 마음 깊은 곳까지 퍼져나가는 듯한 순간이 온다. 그 순간, 막연한 행복에 대한 갈망이 인다.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고, 무작정 길을 나서고 싶고,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고 싶고, 봄을 온몸으로 마시고 싶어진다.
지난겨울이 유난히 혹독했기에, 5월이 오자 봄의 
기운이 마치 취기처럼 강렬하게 나를 휘감았고, 넘쳐흐르는 수액처럼 내 안에서 솟구쳤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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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ㅡ 임신중지의 해법

캐나다에서 임신중지는 임신기간 내내 합법이다. 하지만 캐나다의 상황은 임신중지를 완벽하게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돌봄에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임신중지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외딴 지역이나 농초ㆍ지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또 12~16주 이후에는 시술을 받을 수 없는 주도 있다. 20주 이후에 임신종결이 필요한 사람들은 이 시기에 임신중지가 가능한 도시로 이동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는 미국으로 이동해야 하기도 한다.
이렇게 접근성이 부족한 상황과 때로는 사람들이 여행을 하거나 임신중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다.

어떤 일에 대해 ‘법적권리‘란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다. 즉 권리에 의미가 있으려면 실제로 사람들이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자원과 지원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5장 ㅡ임신중지의 해법
문제는 인공자궁이 아니다. 오히려 일부 국가에서는 애초부터 임신중지를 법적으로 방어해야 할 일로 계속해서 규정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 법들이 기초하고 있는 가부장적 간섭주의의 잔재,
여성들이 자기 몸에 대해 권한을 갖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문제이다. 재생산의 자유를 위해 협소한 영역을 조금씩 계속 개척하거나 임신중지를 형법 사안으로 간주하는 제한된 법적 해결책은 필요치 않다. 재생산과 관련된 삶을 통치하는 법은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 대신 임신중지를 비범죄화하고, 필수 보건의료 서비스로 취급하고, 세계 어느 곳에서나 지역과 문화에 적합한 안전한 임신 종결 방식에 접근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임신중지를 인정하는 곳에서만이 부모가 원해서 낳은 미숙아를 돕기위해 설계된 인공자궁 같은 기술이 재생산권을 위협할 일은 없을 것이다. - P206

유용한 예를 캐나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캐나다에도 강경한임신중지 반대 단체들이 잔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된 지역이 많지만, 임신중지는 임신 기간 내내 합법이다. 연방 정부 차원에서는 태아에게 있는 생명으로써의 잠재력을 임신한 사람의 권리와 견줄 만한 이해 사안이라고 표현한 적이 결코 없다. 캐나다에서 임신중지권을 확립한 여왕대 모겐탤러r.v.Morgentaler 사건은 1988년 대법원에 상고되었다. - P206

모겐텔러는 이미 한차례 법정에 선 적이 있었다. 로우 사례의 법률팀이 법정에서 임신중지 범죄화에 이의를 제기했듯이, 모겐탤러와 그의 동료들은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 임신중지 금지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얻어낼 수 있기를 바랐다. 결국 법원은 ‘모든 사람에게는 개인의 생명, 자유, 안전에 대한 권리가 있으며 기본적 정의의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한,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는다‘라는 <권리와 자유에 관한 캐나다 헌장 Canadian Charter of Rights andFreedoms> 7조에 근거하여 병원 위원회의 승인을 요구하는 조항이 여성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데 동의했다.  - P207

윌슨 판사는 "재생산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는 현대 여성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성과 가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251조 4항에서] 실제로 여성들은 수단으로, 즉 자신이 바라는 일이 아님에도 통제할 수 없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대우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모겐탤러 판결은 임신중지 보호를 개인의 안전(즉,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온전성‘)과 자유를 모두 보호하는 데 필요한 권리로 인정했다. 정부가 ‘개인의 선택을 가능한 한 최대한 존중해야 하며,
좋은 삶에 대한 하나의 관념에 비추어 그 선택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의미였다. 캐나다 법에서 임신 기간 내내 임신중지가 합법이라는 사실은 인공자궁이 임신중지 보호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임신중지권에 대한 해석이 자유의 문제로 확장되었다는 점은 임신중지 반대 단체들이 인공자궁 기술이 도입됨에 따라 임신중지 반대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법정에서 고전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전망할 수 있다. 태아를 지우는 대신 인공자궁으로 이전하라는 요구가 임신한 사람의안전을 크게 해치지 않는 사례를 상정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임신을 종결하는 대신, 인공자궁을 사용하라고 요구하는 일이야말로 ‘좋은 삶에 대한 하나의 관념‘에 비추어 이들의 선택을 판단하고, 임신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위협함으로써 자유를 보장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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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0년 전부터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정확히 해두자면 30년 전에 그 사실을 당당하게 
밝혔다고 말해야겠다. 어쩌면 그 이전부터 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믿음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는 없다지만 내 경우에는 꼭 그렇지도 않았다. 몇 가지 낌새와 사소한 조짐, 그리고 애당초 무시해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부차적인 일들이 나타났었다. 마치 자그마한 씨앗 하나가 내 안에서 싹을 틔우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머지않아 땅을 가르고 나와 아직 연약하지만 꿋꿋하게 자라날 이에게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아요!"라고 고함치는 초록의 여린 줄기를 드러낼 것 같았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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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장ㅡ멋진 신세계로 향하는 체외발생>을 읽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 3장의 제목... 역시 헉슬리의 작품이 중요 소재로 등장한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를 출간했을 때는 아직 우생학이 등장하지 않았었지만 ‘체외발생‘을 말할 때 미국과 영국, 독일 등지에서 만행이라고 할만한 일들이 흑인, 유색인, 원주민, 장애인, 라틴계, LGBTQ,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 유대인... 들에게 일어났다.
요근래 읽었던 책들에서 ‘우생학‘이 너무 자주 보여 정말 읽다가 화가 치민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었던 20대 이후 이 작품의 제목이 가진 상징성 때문에 나는 이후 유토피아, 신세계라고 하는 단어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겼다.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에 더 가까운 세계관의 설정은 무섭고도 기괴하다. 
이 책의 제목에도 ‘유토피아‘가 ...

‘체외생산‘과 ‘인공자궁‘을 말하면서 현재와 앞으로의 세상이 결코 ‘유토피아‘일수는 없을 거란 걸 실감하게 되는 사례와 역사적 사실들 앞에서 우리는 깊은 고민을 해야만 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어떠한 경우라도 국가가 재생산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성의 자궁을 도구화해서는 안된다. 
 ˝임신 중 무책임한 행동 및 부모의 ‘적합성‘에 대한 이른바 국가의 염려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우생학의 인종차별주의 전통이다.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미래의 아이들에게 ‘위험‘하다고 생각될 때 인공자궁 기술을 이용하여 임신을 인계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중립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다.(132~133쪽)˝

그들은 대체 무슨 근거로 무엇을 떠올리며 엄마의 행동 때문에 ‘위험‘에 처한 태아를 보호할 목적으로 인공자궁을 사용할, 수용가능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체외발생이 임신한 엄마의 몸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우생학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부모 중 한 사람이 건강하지 않다면 태어날 아이의 이익을 위해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부모가 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을 것‘이라거나 ‘자녀가 일부 부모에게서는 아예 태어나지 않는 편이 ‘최선의 이익‘임을 국가가 공정하게 결정할 수 있다는˝ 우생학이 주장했던, 무서운 생각들이 지금도 여전히, 암암리에 남아있다.



1990년대는 미국에 근거를 둔 흑인 페미니스트 단체가 임신 중지 합법화 회의에서 재생산을 정의하는 틀을 도출해 내면서, 백인 여성의 이익에만 오랫동안 초점을 두었던 재생산권 운동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풀뿌리 운동이 시작되었다. 재생산 정의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들, 활동가들, 의료인들, 법률가들, 교육자들이 이 틀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면서 알게 된 것은 재생산 자유를 요구하는 운동이 진정 포용적인 운동이 되려면, 임신을 종결하거나 예방할 권리를 보호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출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재생산 정의는 '아이를 가질 권리, 아이를 갖지 않을 권리, 자녀를 양육하고 출산 방식을 통제할 권리', 그리고 '이런 권리들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얻기 위해 싸우는 일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접근이라 할 수 있다.(135~136쪽)  


사람들이 아이를 갖지 못하게 국가가 기관이 막는 것을 용인할 수 있는 윤리적 방법은 없다. 나치가 주도하든 좌파 활동가가 주도하든, 이런 일은 인권 침해이자 재생산에 대한 사람들의 자율성을 박탈하는 행위이다. 그런데도 이런 행위가 계속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문제가 파시스트의 손에 있는 우생학만이 위험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헉슬리뿐 아니라 모든 국가들이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간을 분류하고 서열화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생각이다. 사람들을 더 또는 덜 가치 있는 생명으로 분류하는 그 어떤 시스템의 존재도 마찬가지이다.(136~137쪽)


... 베라 브리튼Vera Brittain은 <태평성대 또는 일부일처제의 미래Halcyon, or the Future of Monogamy>에서 박식한 미네르바 헉스터윈 교수가 2050년대까지 이어지는 과학 발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헉스터윈은 할데인의 이야기와는 다른 계보를 풀어낸다. 보편적인 체외발생이 가능해졌음에도 사회가 결국 이를 널리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즉 양 부모가 모두 제공할 수 있는 '엄마mothering'돌봄 유형이 국가와 기계가 제공할 수 있는 돌봄보다 크게 앞섰다. 헉스터윈은 과학적이고 특정 가능한 돌봄의 가치가 밝혀질 것이라고 상상한다. '체외발생주의자'는 인공자궁으로 가장 '적합한' 형질을 번식할 수 있게 해준 방식을 찬양하겠지만, 그들이 유전자 결정론에 치중한 것은 잘못으로 판명된다. 즉 사람들은 우생학이라는 '과학'을 완성할 목적으로 체외발생을 사용하려 하지만, 아이의 미래는 유전 형질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과 보살핌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이라고, 헉스터윈은 시사한다. 그녀는 인공자궁으로 임신할 수 있는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인공자궁이 있어야 임신할 수 있는 경우에만 이 기술을 사용한다. 헉스터윈의 미래가 베라 브리튼의 미래와 다른 이유는 주로 아기를 체외발생 방식으로 기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신과 자녀를 돌보고 스스로의 재생산과 관련된 삶을 관리할 수 있도록 자원을 충분히 공급받기 때문이다.(137~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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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5-20 0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작가가 중간중간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에 너무 좋더라고요. 그 질문에 저 역시도 ‘나는 어떤가‘라는 답을 해보며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우생학에 대해서도 글을 써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화이팅 입니다!

은하수 2025-05-20 10:34   좋아요 0 | URL
작가의 질문들이 저도 갖고 있던 의문점들이라 작가의 논지들을 따라 읽으며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더라구요. 사실 쓰고 싶고 생각을 유도하는 글을 던지고 남기고 싶은 부분이 많았어요. 특히 우생학은 자꾸 보게되니 ... 지난번 읽었던 <아기퍼가기 시대>에서도 만났고..
이게 제국주의, 가부장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단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너무 부당하다 생각하는데 이런 우생학의 논리가 현대에도 변용되고 있다는게 더 큰 문제잖아요. ...
다음주 여행가기 전에 다 읽고 가려고 아주 맘이 바쁩니다~~^^
끝까지 읽고 가고 싶어요.
우생학에 관련한 글도 꼭 써주세요~~~!
 

IZMIR-5
고대 도시에서 살아난 역사적 상상력
-에페수스 유적지-

에페수스 유적지
에페수스Ephesus는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 가장 큰 항구 도시 중 하나로 여행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탁월한 위치 덕분에 아테네의 이오니아 식민지 개척자들은 아시아 내륙으로 물품을 운송하기 
위한 무역의 거점 도시로 삼았다.

에페수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헬레니즘 시대에 크게 부흥했지만 최고의 전성기는 로마제국의 전성기인 기원전 100년부터 서기 200년대까지였다. 이때 로마제국은 공화정에서 황제시대로 바뀌었고 오현제의 시대를 통해 팍스로마나를 구가하고 있었다. - P113

당시 에페수스는 로마속주의 수도였고 인구 25만 명이 넘는 대도시로, 소아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카이스트로스kaysition 강 하구의 충적작용은 인공수로를 건설해 항구를 보존하려던 에페수스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늪으로 변했다. 이후 항구는 폐쇄되었고 대규모 지진과 말라리아로 인한 전염병의 창궐로 도시는 그대로 버려졌다. 그 덕분에 오히려 도시의 유적은 온전히 남을 수 있었다. - P113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곳을 직접 방문하고 싶은 마음은 여행자라면누구나 갖고 있는 로망이다. 하지만 막상 방문한 뒤 역사적인 유적지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뉜다. 그것은 아마도 방문했던 유적지의 보존 노력에 따른 것 같은데,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상당하다. 특히 유적인지 잔해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면 어렵게 찾아온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도 지난번 바스바네 지역의 아고라 유적을 보고 아쉬움이 많았다. - P114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공간이나 유적들을 찾아볼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공간의 가치는 남아 있는 유적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물길이 바뀌어 폐허가 된 도시도 있고 기후변화로 젖과 꿀이 흐르던 곳이 황무지가 된 곳도 있다. 그런 곳을 보고 오늘날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을 굳이 찾아가는 건 그곳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역사적 공간감‘이다. 이 역사적 공감감이 우리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비록 오늘날의 모습이 전혀 다른 곳으로 변모했다 하더라도 그곳 주변의 풍경과 공기를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역사적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 P115

그렇다고 모든 역사적 공간이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폐허가 된 유적 근처의 작은 나무 그늘에서 쉴 때 잠시 불어 온 미풍에 불현듯 과거 속 이미지가 그려져 감흥을 돋울 수도 있고, 폐허가 된 도시를 보며 인류 문명과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순간적인 깨달음에 닿을 수도 있다. 이 모두는 역사적 공간을 방문해야만 가 닿을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먼 길을 돌아 힘들지만 역사적 공간을 찾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 P115

ANTALYA-1
지중해를 품은 안탈리아
-칼레이치-

지중해 연안의 안탈리아

새로운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언제나 
낯설다. 안탈리아에서 머물 숙소는 버스터미널과 
역사지구의 중간쯤 안탈리아 주민들이 사는거리에 있었다. 어제 도착해 짐을 풀고 있는데 숙소 직원이 근처에 맛있는 빵집이 있다고 소개해 주었다. 짐을 정리하고 나가 찾아가 보니 튀르키예 빵들이 가득한 동네 빵집이었다. 빵을 고르자 주인은 낯선 여행자에게 홍차를 한 잔 대접해 주었다. 안탈리아의 첫인상이 푸근해졌다. - P142

안탈리아는 아나톨리아의 남서부 해안에 위치하여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큰 도시다. 안탈리아는 헬레니즘 시대인 기원전 150년경에 페르가몬의 왕 아탈루스Attalus 2세가 도시를 창건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아탈레이아Attaleia‘라고 불렀다. - P142

오랫동안 그리스어로 불리던 도시의 이름은 이후 튀르키예어인 ‘안탈리아Antaya 로 바뀌었다. 도시는 로마제국에 편입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번영했지만 역사의 굴곡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1207년엔 셀주크 튀르크로, 1391년에는 확장하는 오스만 제국으로 바뀌는 등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3년 동안 이탈리아에게 점령당했지만 튀르키예 독립전쟁 때 탈환되었다. - P143

안탈리아는 기독교 역사 초기에도 등장한다. 1세기에 사도 바울로와 바나바가 전도여행을 할 때 안탈리아를 방문했다. 또한 위대한 여행가들의 여행기에도 등장하는데, 14세기에는 중세 아랍인 여행자 이븐 바투타Ion Battute가, 17세기 후반에는 오스만 제국의 여행자인 에블리야 첼레비Evliya Celebi가 방문해 기록을 남겼다. 물론 오늘날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중해의 휴양도시로 알려져 있다. 안탈리아 주변에는 유명한 고대도시들이 많이 있지만 이번 안탈리아 여행은 구시가지인 칼레이치를 중심으로 역사적 지구를 살펴보고 오늘날의 튀르키예를 살펴볼 예정이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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