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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0년 전부터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정확히 해두자면 30년 전에 그 사실을 당당하게 
밝혔다고 말해야겠다. 어쩌면 그 이전부터 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믿음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는 없다지만 내 경우에는 꼭 그렇지도 않았다. 몇 가지 낌새와 사소한 조짐, 그리고 애당초 무시해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부차적인 일들이 나타났었다. 마치 자그마한 씨앗 하나가 내 안에서 싹을 틔우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머지않아 땅을 가르고 나와 아직 연약하지만 꿋꿋하게 자라날 이에게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아요!"라고 고함치는 초록의 여린 줄기를 드러낼 것 같았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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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장ㅡ멋진 신세계로 향하는 체외발생>을 읽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 3장의 제목... 역시 헉슬리의 작품이 중요 소재로 등장한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를 출간했을 때는 아직 우생학이 등장하지 않았었지만 ‘체외발생‘을 말할 때 미국과 영국, 독일 등지에서 만행이라고 할만한 일들이 흑인, 유색인, 원주민, 장애인, 라틴계, LGBTQ,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 유대인... 들에게 일어났다.
요근래 읽었던 책들에서 ‘우생학‘이 너무 자주 보여 정말 읽다가 화가 치민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었던 20대 이후 이 작품의 제목이 가진 상징성 때문에 나는 이후 유토피아, 신세계라고 하는 단어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 책의 제목에도 ‘유토피아‘가 ...

‘체외생산‘과 ‘인공자궁‘을 말하면서 현재와 앞으로의 세상이 결코 ‘유토피아‘일수는 없을 거란 걸 실감하게 되는 사례와 역사적 사실들 앞에서 우리는 깊은 고민을 해야만 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어떠한 경우라도 국가가 재생산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성의 자궁을 도구화해서는 안된다. 
 ˝임신 중 무책임한 행동 및 부모의 ‘적합성‘에 대한 이른바 국가의 염려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우생학의 인종차별주의 전통이다.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미래의 아이들에게 ‘위험‘하다고 생각될 때 인공자궁 기술을 이용하여 임신을 인계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중립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다.(132~133쪽)˝

그들은 대체 무슨 근거로 무엇을 떠올리며 엄마의 행동 때문에 ‘위험‘에 처한 태아를 보호할 목적으로 인공자궁을 사용할, 수용가능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체외발생이 임신한 엄마의 몸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우생학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부모 중 한 사람이 건강하지 않다면 태어날 아이의 이익을 위해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부모가 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을 것‘이라거나 ‘자녀가 일부 부모에게서는 아예 태어나지 않는 편이 ‘최선의 이익‘임을 국가가 공정하게 결정할 수 있다는˝ 우생학이 주장했던, 무서운 생각들이 지금도 여전히, 암암리에 남아있다.



1990년대는 미국에 근거를 둔 흑인 페미니스트 단체가 임신 중지 합법화 회의에서 재생산을 정의하는 틀을 도출해 내면서, 백인 여성의 이익에만 오랫동안 초점을 두었던 재생산권 운동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풀뿌리 운동이 시작되었다. 재생산 정의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들, 활동가들, 의료인들, 법률가들, 교육자들이 이 틀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면서 알게 된 것은 재생산 자유를 요구하는 운동이 진정 포용적인 운동이 되려면, 임신을 종결하거나 예방할 권리를 보호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출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재생산 정의는 '아이를 가질 권리, 아이를 갖지 않을 권리, 자녀를 양육하고 출산 방식을 통제할 권리', 그리고 '이런 권리들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얻기 위해 싸우는 일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접근이라 할 수 있다.(135~136쪽)  


사람들이 아이를 갖지 못하게 국가가 기관이 막는 것을 용인할 수 있는 윤리적 방법은 없다. 나치가 주도하든 좌파 활동가가 주도하든, 이런 일은 인권 침해이자 재생산에 대한 사람들의 자율성을 박탈하는 행위이다. 그런데도 이런 행위가 계속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문제가 파시스트의 손에 있는 우생학만이 위험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헉슬리뿐 아니라 모든 국가들이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간을 분류하고 서열화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생각이다. 사람들을 더 또는 덜 가치 있는 생명으로 분류하는 그 어떤 시스템의 존재도 마찬가지이다.(136~137쪽)


... 베라 브리튼Vera Brittain은 <태평성대 또는 일부일처제의 미래Halcyon, or the Future of Monogamy>에서 박식한 미네르바 헉스터윈 교수가 2050년대까지 이어지는 과학 발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헉스터윈은 할데인의 이야기와는 다른 계보를 풀어낸다. 보편적인 체외발생이 가능해졌음에도 사회가 결국 이를 널리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즉 양 부모가 모두 제공할 수 있는 '엄마mothering'돌봄 유형이 국가와 기계가 제공할 수 있는 돌봄보다 크게 앞섰다. 헉스터윈은 과학적이고 특정 가능한 돌봄의 가치가 밝혀질 것이라고 상상한다. '체외발생주의자'는 인공자궁으로 가장 '적합한' 형질을 번식할 수 있게 해준 방식을 찬양하겠지만, 그들이 유전자 결정론에 치중한 것은 잘못으로 판명된다. 즉 사람들은 우생학이라는 '과학'을 완성할 목적으로 체외발생을 사용하려 하지만, 아이의 미래는 유전 형질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과 보살핌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이라고, 헉스터윈은 시사한다. 그녀는 인공자궁으로 임신할 수 있는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인공자궁이 있어야 임신할 수 있는 경우에만 이 기술을 사용한다. 헉스터윈의 미래가 베라 브리튼의 미래와 다른 이유는 주로 아기를 체외발생 방식으로 기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신과 자녀를 돌보고 스스로의 재생산과 관련된 삶을 관리할 수 있도록 자원을 충분히 공급받기 때문이다.(137~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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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MIR-5
고대 도시에서 살아난 역사적 상상력
-에페수스 유적지-

에페수스 유적지
에페수스Ephesus는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 가장 큰 항구 도시 중 하나로 여행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탁월한 위치 덕분에 아테네의 이오니아 식민지 개척자들은 아시아 내륙으로 물품을 운송하기 
위한 무역의 거점 도시로 삼았다.

에페수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헬레니즘 시대에 크게 부흥했지만 최고의 전성기는 로마제국의 전성기인 기원전 100년부터 서기 200년대까지였다. 이때 로마제국은 공화정에서 황제시대로 바뀌었고 오현제의 시대를 통해 팍스로마나를 구가하고 있었다. - P113

당시 에페수스는 로마속주의 수도였고 인구 25만 명이 넘는 대도시로, 소아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카이스트로스kaysition 강 하구의 충적작용은 인공수로를 건설해 항구를 보존하려던 에페수스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늪으로 변했다. 이후 항구는 폐쇄되었고 대규모 지진과 말라리아로 인한 전염병의 창궐로 도시는 그대로 버려졌다. 그 덕분에 오히려 도시의 유적은 온전히 남을 수 있었다. - P113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곳을 직접 방문하고 싶은 마음은 여행자라면누구나 갖고 있는 로망이다. 하지만 막상 방문한 뒤 역사적인 유적지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뉜다. 그것은 아마도 방문했던 유적지의 보존 노력에 따른 것 같은데,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상당하다. 특히 유적인지 잔해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면 어렵게 찾아온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도 지난번 바스바네 지역의 아고라 유적을 보고 아쉬움이 많았다. - P114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공간이나 유적들을 찾아볼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공간의 가치는 남아 있는 유적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물길이 바뀌어 폐허가 된 도시도 있고 기후변화로 젖과 꿀이 흐르던 곳이 황무지가 된 곳도 있다. 그런 곳을 보고 오늘날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을 굳이 찾아가는 건 그곳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역사적 공간감‘이다. 이 역사적 공감감이 우리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비록 오늘날의 모습이 전혀 다른 곳으로 변모했다 하더라도 그곳 주변의 풍경과 공기를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역사적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 P115

그렇다고 모든 역사적 공간이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폐허가 된 유적 근처의 작은 나무 그늘에서 쉴 때 잠시 불어 온 미풍에 불현듯 과거 속 이미지가 그려져 감흥을 돋울 수도 있고, 폐허가 된 도시를 보며 인류 문명과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순간적인 깨달음에 닿을 수도 있다. 이 모두는 역사적 공간을 방문해야만 가 닿을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먼 길을 돌아 힘들지만 역사적 공간을 찾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 P115

ANTALYA-1
지중해를 품은 안탈리아
-칼레이치-

지중해 연안의 안탈리아

새로운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언제나 
낯설다. 안탈리아에서 머물 숙소는 버스터미널과 
역사지구의 중간쯤 안탈리아 주민들이 사는거리에 있었다. 어제 도착해 짐을 풀고 있는데 숙소 직원이 근처에 맛있는 빵집이 있다고 소개해 주었다. 짐을 정리하고 나가 찾아가 보니 튀르키예 빵들이 가득한 동네 빵집이었다. 빵을 고르자 주인은 낯선 여행자에게 홍차를 한 잔 대접해 주었다. 안탈리아의 첫인상이 푸근해졌다. - P142

안탈리아는 아나톨리아의 남서부 해안에 위치하여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큰 도시다. 안탈리아는 헬레니즘 시대인 기원전 150년경에 페르가몬의 왕 아탈루스Attalus 2세가 도시를 창건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아탈레이아Attaleia‘라고 불렀다. - P142

오랫동안 그리스어로 불리던 도시의 이름은 이후 튀르키예어인 ‘안탈리아Antaya 로 바뀌었다. 도시는 로마제국에 편입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번영했지만 역사의 굴곡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1207년엔 셀주크 튀르크로, 1391년에는 확장하는 오스만 제국으로 바뀌는 등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3년 동안 이탈리아에게 점령당했지만 튀르키예 독립전쟁 때 탈환되었다. - P143

안탈리아는 기독교 역사 초기에도 등장한다. 1세기에 사도 바울로와 바나바가 전도여행을 할 때 안탈리아를 방문했다. 또한 위대한 여행가들의 여행기에도 등장하는데, 14세기에는 중세 아랍인 여행자 이븐 바투타Ion Battute가, 17세기 후반에는 오스만 제국의 여행자인 에블리야 첼레비Evliya Celebi가 방문해 기록을 남겼다. 물론 오늘날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중해의 휴양도시로 알려져 있다. 안탈리아 주변에는 유명한 고대도시들이 많이 있지만 이번 안탈리아 여행은 구시가지인 칼레이치를 중심으로 역사적 지구를 살펴보고 오늘날의 튀르키예를 살펴볼 예정이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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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OLIA-3
KONYA

2주 후로 다가온 튀르키예 여행 때문에 그렇겠지만
뭔가 모르게 마음이 바쁘다. 여행 가기 전부터 폭풍 쇼핑을 거의 끝내고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다.
매일 이스탄불과 안탈리아 지방 즐겨찾기 해놓고 날씨를 보고 있는데 튀르키예와 우리나라는 거의 같은 위도여서 기온이 비슷하지만 약간 낮은 듯하다. 얇은 긴팔과 블라우스, 바람막이 점퍼, 반소매, 아이스블루 진, 진청, 그레이진, 스커트, 베이지 면바지 등등을 준비해 놓고 이렇게 저렇게 코디해보고 있다. 여행 일정이 9일이나 되기 때문에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다. 이스탄불과 지중해에 면한 안탈리아 지방은 기온이 약간 차이난다.
나의 여행일정과는 반대로, 그리고 계절도 겨울인지라 아예 책을 거의 거꾸로 읽고 있는데
그게 맞는 거 같다.
콘야에서는 메블라나박물관만 책과 겹쳐서 좀 아쉽다...


메블라나 루미의 도시
-메블라나 박물관-

콘야의 역사
콘야에 도착한 날 아침 창문의 커튼을 걷자 바로 앞에 커다란 모스크가 보였다. 어젯밤에 자는 동안 큰소리에 놀라 깼는데 아마도 무에진Müezzin이 새벽기도를 알리는 에잔Ezan 소리였나 보다. 이렇게 가까이에 모스크가 있었으니 크게 들릴 만도 했다. 그러고 보니 한 달 넘게 튀르키예를 여행하면서 에잔 소리를 별로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새벽의 에잔 소리는 메아리가 울리듯 계속 이어져 좀 특별하게 들렸다.
그 울림이 에잔의 도시, 모스크의 도시에 온 걸 환영해주는 것 같았다. - P172

중앙 아나톨리아 고원의 남서쪽에 위치한 콘야konya는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진 주(州)이면서 일곱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신석기 유적지 차탈회위크 Cerealhoyak 가 근처에 있는 것으로 보아 역사적으로 오래 전부터 인류가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그후 히타이트와 프리기아 왕국을 거쳐 리디아, 페르시아, 알렉산드로스의 침략을 차례로 받다가 끝내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이때는 ‘이코니움‘conium‘이라고 불렸다. - P173

메블라나 박물관

모스크를 나와 메블라나 박물관으로 향했다. 두 모스크 사이에 있는 긴 담을 한참 돌아 박물관 입구로 갔다. 당연히 입장료가 있는 줄 알았는데 간단히 소지품 검색만 하고 입장했다. 박물관 앞에는 아담한 크기의 정원이 있었다. 원래 셀주크조 술탄의 장미 정원이었는데 루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묘지가 되었다. 그리고 루미도 사망 후에 아버지 곁에 함께 묻혔다. 계절이 겨울이니만큼 정원의 꽃과 나무들은 한껏 움츠려 있었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추위를 타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손이 시리고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따뜻한 지중해에 있었는데 내륙 분지인 콘야의 추위가 이렇게 매서울 줄은 몰랐다. - P176

메블라나 박물관 Mevlana Müzesi은 원래 메블라나의 영묘와 함께 메블레비교단의 테케가 있던 곳이었다. 1273년 메블라나가 죽은 후 그의 절친한친구이자 후계자인 후사멧딘 첼레비 Hüsameddin Celebi는 메블라나를 따르는 ‘메블레비‘의 수장이 되었다. 그가 메블라나의 영묘를 지었다. 후사멧딘 첼레비가 사망한 후에는 메블라나의 장남인 술탄 왈라드Sultan Walad가 유지를 이어받아 교단을 조직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P176

메블라나의 묘를 직접 보니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소박한 묘일 것이라 기대했는데 영묘가 좀 화려해 보였다. 물론 후대가 꾸민 묘소이겠지만 평소 그의 성품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메블라나도 생전에 아버지의 영묘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하늘 돔보다 더 웅장한 것을 지을 수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묘소에 의미를89두지 않았다. 하지만 메블라나의 아들 술탄 왈라드는 메블라나의 무덤위에 영묘를 지으려는 사람들의 소원을 받아들였다. - P177

흥미롭게도 박물관의 상징물인 초록색 돔은 메블라나 관 바로 위에 설치되었다. 메블라나가 세상을 떠난 후 120여년이 지난 1397년에 녹색타일로 덮인 16면의 원뿔형 돔이 만들어졌다. 그후 영묘는 초록색 돔을 의미하는 ‘쿱베이 하드라 Kubbe-i Hadra‘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쿱베이하드라는 오늘날 콘야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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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들
번역가들은 왜 배신자일까? 신이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살지 못하게 언어를 흩어놓았는데도 갈라진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해서, 니므롯처럼 신의 뜻에 반한 배신자가 되었나?
서로 다른 언어 사이를 오갈 때는 손실이 불가피하므로 원저자든 독자든 누군가를 배신하게 되기 때문일까?
여기에서 궁금해지는 것은, 바벨 이전에는 정말 언어로 인한 혼란이나 소통 과정의 손실이 없었느냐는 것이다. - P45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보자. 하나님이 만든각종 들짐승과 새에 아담이 이름을 붙인다.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사물과 이름이 명징하게 일치하는 행복한 나날이다. 여기에는 혼란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 P46

그런데 문제는 나무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하신다. 그런데 뱀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그런데 하나님도 나중에 뱀의 말을 인정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라고 되어 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 필멸의 존재가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는 하나님의 말이 사실이 되었지만, 뱀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런데도 태초에는 말이 뜻하는 바가 자명했다고 할 것인가? 아담과 하와가 헷갈릴 만도 하지 않았나? - P46

그렇다면 우리가 언어를 서로 주고받으며 일어나는 혼란과 어긋남과 손실은 언어가 여러 갈래로 나뉘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언어 자체가 혼란이다. 사물과 이름 사이에는,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어떤 필연적인 결속도 없다. - P46

번역이 배신인 까닭은, 혼란스러운 언어를, 부유하는 기의를 일시적으로나마 고정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번역은 끝없이 변화하는 언어를 한순간이라도 고정하려고 애쓰는 덧없지만 불가피한 시도다. 무수한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것들은 대부분 저버리는 일이다. 누구나 알듯이 어떤 번역도 원문을 있는 그대로 거울에 비추듯 재현하지 못한다. 
역설적이지만, 나보코프가 쌓아 올린 무한한 주석의 탑은 번역이 놓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기념비다(나보코프가 열거한 것만 들자면 우아함, 좋은 소리, 명료함, 취향, 현대적 용례, 문법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주석의 탑이 뻗으며 여백도 손실되었다. 상상의 여지도, 모호함의 가능성도). 나보코프는 축어역 (word-for-word)만이 진정한 번역이라고 주장하면서 **, 텍스트의 축어적 의미가 아닌 텍스트의 정신을 번역한다는 자유로운 번역은 작가를 ‘중상하는(traduce)‘ 일이라고 혹독하게 비난했다. - P47

*나는 내가 의미하는 걸 말해
 "직역(直譯)이냐 의역(意譯)이냐의 논쟁, 번역학계 용어로는 충실성과 가독성의 논쟁이다. 원문에 최대한 가깝게 번역하느냐, 아니면 독자가 최대한 편하게 읽을수 있도록 옮기느냐의 차이다."
직역과 의역, 축어역과 의미역 대립 항에 충실성과 가독성 개념이 연결되었다. 담론상 스펙트럼에서 직역에 가까운 글은 부정적으로는 ‘번역 투‘라거나 ‘어색하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긍정적으로는 ‘표현이 새롭고 신선하다‘거나 ‘원문에 충실하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의역에 가까운 글은 긍정적으로는 ‘한국어로 쓴 글처럼 읽힌다‘,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구사했다‘ 등의 평을 받는 한편 부정적으로 말하면 ‘밋밋하고 진부하다‘, ‘충실하지 못하고 번역가가 지나치게 개입했다‘고 느껴질 수 있다. 이와 별개로, 원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면 오역이라고 본다.

... 간단한 문장이지만 문맥에 따라, 글의 종류와 어조에 따라, 화자와 청자의 관계에 따라, 화자의 성격이나 태도, 말투에 따라, 수십 가지 다른 번역이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어로 수십 가지 번역을 해놓은 다음에 다시 영어로 역번역 (back-translation)을 하면 결과물이 그만큼 다양하지 않고 대략 서너 가지 정도의 표현으로 수렴된다.
한국어는 어미와 조사가 발달해서 미묘하고 섬세한 뉘앙스를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어의 특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좋은 번역이 될 수 없다. 무수한 가능성 가운데 최선의 어조와 뉘앙스를 선택하지 못한다면 분명한 오역은 아닐지라도 뭔가 흐름이 원활하지 않거나 삐걱거린다거나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 번역이 될 수 있다. 이런 미묘한 차이를 다루는 번역은 무어라고 불러야 할까? - P75

실제로 번역을 할 때는 ‘단어‘를 번역(직역)하거나 ‘단어의 의미‘를 번역(의역)하기만 하는 게 아니다. 제3의 무언가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What do you think?‘ 같은 간단한 문장이 수십 가지로 번역되는 것이다. 행간을, 침묵을, 여백을 번역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행간에는 참 많은 것이 있다. 맥락, 어조, 정서, 분위기, 성격, 암시, 어감, 문화적 인유, 의도.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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