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작가와 친구 예진의 15 년 만의 리유니언 핀란드 여행의 시작은 교환학생으로 와서 6 개월 간 머물렀던 쿠오피오이다. 쿠오피오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핀란드의 중남부 지방에 위치한다. 짧은 기간 머물렀었지만 추억이 잔뜩 서린 대학도시를 방문하고 그시절의 친구도 만나 회포를 풀기도 한다. 그 시절의 친구가 아직 그 도시에 남아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다음으로 방문한 도시가 탐페레이다(지도를 보니 핀란드의 남서쪽 지역에 위치해 있고 쿠오피오보다 더 남쪽이다).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마지막 단편으로 수록되었던 <탐페레 공항>을 가기 위해서였다. 단편 <탐페레 공항>을 쓸 당시 작가는 그 작은 공항을 가본 적이 없었고 친구 예진의 이야기를 듣고 단편을 구상했다고 한다. 여러번 다시 쓰고 다시 또 고치고 하면서 여러 문학상에 출품했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실망을 거듭했었는데, 마침내 첫 단편집의 마지막 단편으로 수록이 되었고 독자들이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기억하는 작품이 되었다. 상상으로 그려낸 공항의 이미지와 실제 공항의 모습이 놀랍게도 마치 공항을 실제로 보고 썼던 것처럼 서로 교차하는 듯한 경험을 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리고 친구의 작품을 읽고 작품 속에서 그려진 것처럼 무거운 DSLR 카메라를 메고 와 셔터를 눌러주는 그 마음, 또 그 짧은 시간 동안의 감동을 위해 친구의 작품집을 짠~~ 하고 캐리어에 챙겨 넣어온 그 마음... 작가의 친구 예진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에세이를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너무 따뜻하다. 입가에 내내 미소가 머문다.


<탐페레 공항>은 읽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 단편집 찾아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내 방엔 없는데 다락방 서가에 있으려나...




택시가 탐페레 공항 앞에 도착했고, 기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머무를 거냐고 물었다. 오래 기다려달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30분이라고 말하자 택시기사는 공항 앞 주차장에 주차하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우리는 택시에서 내렸다. - P209

공항이라기보다는 버스터미널처럼 보이는 아주 작은 규모의 1층 건물. 마침내, 내 눈앞에 탐페레 공항이있었다. 십여 년 전, 처음 소설 쓰기의 매력에 빠졌을무렵 미완성의 한글파일을 열어두고 구글맵으로 이리굴려보고 저리 굴려보고, 보고 또 봤던, 그 공항이.
공항 앞 주차장에는 오가는 차량도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평생 꽤 많은 공항을 다녀봤고 이것보다 더작은 공항에 가본 적도 한두 번은 있었지만 이렇게 사람이 없는 공항에 와본 건 처음이었다. 말 그대로 사람이 아예 없었다. 나와 예진이, 그리고 공항 앞 나무 벤치에 앉아 대기 중인 택시기사뿐이었다. - P209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이걸 이고 지고 왔지."
예진이가 한국에서부터 챙겨온 DSLR 카메라를 꺼냈다. 인천공항에서 내가 대체 이 무거운 걸 왜 가져왔느냐 묻자, 예진이는 탐페레 공항 앞에서 나를 휴대폰 카메라가 아닌 DSLR로 제대로 찍어주고 싶다고 했다. - P210

"작가님, 여기 서봐요."
나는 예진이가 시키는 대로 공항 건물 앞에 섰고 예진이가 셔터를 눌렀다. 나도 예진이의 카메라를 건네받아 예진이를 찍어주었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소설 속 진ㅇ면이랑 완전히 똑같아졋ㅇㅅ다. - P210

‘나 진짜 탐페레 공항에 와 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누구에게인지 모를 자랑을했다. 그리고 이내 뒤돌아 조금 더 걸어 입구로 다가갔다. 비행기 모양의 그림이 그려진 자동문이 양옆으로움직이며 스르륵 열렸다. 드디어 탐페레 공항 안으로들어설 수 있었다. 전면의 벽이 전부 유리였고 그 너머밝은 하늘과 활주로가 보였다. 안쪽 역시, 정말 작다! - P211

소설을 쓸 당시에는 건물의 외관만 구글맵으로 참고했을 뿐, 공항 내부는 내가 상상해서 묘사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그려보았던 것과 정말 비슷했다.
백야의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통유리창, 보안검색대등 출입국 수속 시설 등을 제외하면 카페 겸 레스토랑하나와 키오스크 몇 대가 전부였다.
그 모든 것들이 닫혀 있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마저 소설과 똑같았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저가항공사의 비행기를 타느라 새벽 시간에 도착했다는 설정이라서 아무도 없는 공항을 묘사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서 있는 이곳 역시 소설 속 탐페레 공항처럼 모든 것이 닫혀 있었다. 건물 전체에 직원이며 손님이며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마치 이곳은 소설을 쓰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공항 혹은 촬영용 세트장 같았다. - P211

내가 예진이의 말을 곱씹는 동안 예진이가 메고 있던 크로스백에서 또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짠, 이것도 가져왔지."
"미치겠다."
웃음이 터졌다. 예진이는 「탐페레 공항」이 실린 내소설집까지 야무지게 챙겨온 거였다. 예진이의 짐이 오버차지될 뻔한 이유가 다 있었다. 같은 계획형이라지만 체력이 있는 계획형과 없는 계획형의 짐 싸기 방식은 조금 달랐다. 체력이 있는 쪽은 잠시라도 필요한건 일단 다 싸가고 본다. 체력이 부족한 쪽은 무거운 짐, 부피가 큰 짐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해 보이는 건 다 챙기되 실제로 쓸 만큼만 계산해서 챙겨온다. - P213

그런데 예진이는 이미 읽은 책, 읽지도 않을 책을 단지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챙겨왔다. 게다가 인터넷서점에서 사은품으로 준 책 표지를 입힌 무지 노트는 왜 챙겨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노트는 대체 왜.....?"
"음, 나 여기다가 일기? 같은 거? 쓸까 하고......."
그 말을 할 때 예진이 얼굴에 떠오른 머쓱한 미소가 말해주듯, 당연히 일기는 단 한 자도 쓰지 않았고, 무거운 무지 노트는 그 상태 그대로 새것인 채 지구에 탄소 발자국을 남기며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갈 운명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하는 예진이의 표정과 그걸 귀여워하고 아끼는 내 마음을 꼭 어딘가에 글로 남겨두고싶다고 생각했다. - P214

넌 일기 같은 거 쓰지 마. 내가 써줄게.
나도 일기를 쓸 줄은 모르지만 어떻게든 남겨줄게.
나만의 방식으로,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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