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MIR-5
고대 도시에서 살아난 역사적 상상력
-에페수스 유적지-

에페수스 유적지
에페수스Ephesus는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 가장 큰 항구 도시 중 하나로 여행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탁월한 위치 덕분에 아테네의 이오니아 식민지 개척자들은 아시아 내륙으로 물품을 운송하기 
위한 무역의 거점 도시로 삼았다.

에페수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헬레니즘 시대에 크게 부흥했지만 최고의 전성기는 로마제국의 전성기인 기원전 100년부터 서기 200년대까지였다. 이때 로마제국은 공화정에서 황제시대로 바뀌었고 오현제의 시대를 통해 팍스로마나를 구가하고 있었다. - P113

당시 에페수스는 로마속주의 수도였고 인구 25만 명이 넘는 대도시로, 소아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카이스트로스kaysition 강 하구의 충적작용은 인공수로를 건설해 항구를 보존하려던 에페수스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늪으로 변했다. 이후 항구는 폐쇄되었고 대규모 지진과 말라리아로 인한 전염병의 창궐로 도시는 그대로 버려졌다. 그 덕분에 오히려 도시의 유적은 온전히 남을 수 있었다. - P113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곳을 직접 방문하고 싶은 마음은 여행자라면누구나 갖고 있는 로망이다. 하지만 막상 방문한 뒤 역사적인 유적지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뉜다. 그것은 아마도 방문했던 유적지의 보존 노력에 따른 것 같은데,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상당하다. 특히 유적인지 잔해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면 어렵게 찾아온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도 지난번 바스바네 지역의 아고라 유적을 보고 아쉬움이 많았다. - P114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공간이나 유적들을 찾아볼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공간의 가치는 남아 있는 유적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물길이 바뀌어 폐허가 된 도시도 있고 기후변화로 젖과 꿀이 흐르던 곳이 황무지가 된 곳도 있다. 그런 곳을 보고 오늘날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을 굳이 찾아가는 건 그곳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역사적 공간감‘이다. 이 역사적 공감감이 우리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비록 오늘날의 모습이 전혀 다른 곳으로 변모했다 하더라도 그곳 주변의 풍경과 공기를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역사적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 P115

그렇다고 모든 역사적 공간이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폐허가 된 유적 근처의 작은 나무 그늘에서 쉴 때 잠시 불어 온 미풍에 불현듯 과거 속 이미지가 그려져 감흥을 돋울 수도 있고, 폐허가 된 도시를 보며 인류 문명과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순간적인 깨달음에 닿을 수도 있다. 이 모두는 역사적 공간을 방문해야만 가 닿을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먼 길을 돌아 힘들지만 역사적 공간을 찾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 P115

ANTALYA-1
지중해를 품은 안탈리아
-칼레이치-

지중해 연안의 안탈리아

새로운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언제나 
낯설다. 안탈리아에서 머물 숙소는 버스터미널과 
역사지구의 중간쯤 안탈리아 주민들이 사는거리에 있었다. 어제 도착해 짐을 풀고 있는데 숙소 직원이 근처에 맛있는 빵집이 있다고 소개해 주었다. 짐을 정리하고 나가 찾아가 보니 튀르키예 빵들이 가득한 동네 빵집이었다. 빵을 고르자 주인은 낯선 여행자에게 홍차를 한 잔 대접해 주었다. 안탈리아의 첫인상이 푸근해졌다. - P142

안탈리아는 아나톨리아의 남서부 해안에 위치하여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큰 도시다. 안탈리아는 헬레니즘 시대인 기원전 150년경에 페르가몬의 왕 아탈루스Attalus 2세가 도시를 창건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아탈레이아Attaleia‘라고 불렀다. - P142

오랫동안 그리스어로 불리던 도시의 이름은 이후 튀르키예어인 ‘안탈리아Antaya 로 바뀌었다. 도시는 로마제국에 편입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번영했지만 역사의 굴곡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1207년엔 셀주크 튀르크로, 1391년에는 확장하는 오스만 제국으로 바뀌는 등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3년 동안 이탈리아에게 점령당했지만 튀르키예 독립전쟁 때 탈환되었다. - P143

안탈리아는 기독교 역사 초기에도 등장한다. 1세기에 사도 바울로와 바나바가 전도여행을 할 때 안탈리아를 방문했다. 또한 위대한 여행가들의 여행기에도 등장하는데, 14세기에는 중세 아랍인 여행자 이븐 바투타Ion Battute가, 17세기 후반에는 오스만 제국의 여행자인 에블리야 첼레비Evliya Celebi가 방문해 기록을 남겼다. 물론 오늘날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중해의 휴양도시로 알려져 있다. 안탈리아 주변에는 유명한 고대도시들이 많이 있지만 이번 안탈리아 여행은 구시가지인 칼레이치를 중심으로 역사적 지구를 살펴보고 오늘날의 튀르키예를 살펴볼 예정이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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