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내가 죽는 날이려나? 그는 생각했다. 갑자기 남자는 극심하게 피로해졌고, 지금껏 그를 떠받쳐 온 모든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 그는 쌓인 눈의 모습이 마치 갓 지어 또거운 김이 솔솔 피어오르는 흰 쌀밥 한 그릇 같다고 상상했다. 그렇게 뜨끈한 쌀밥을 먹어본 건 평생을 살면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남자는 분노하는 대신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여윈 몸을 무심하게 관통하며 불어가는 바람 같은 웃음이었다. 죽기 전에 그는 먹고 싶었던 음식 몇 가지를 더 떠올려 보고 싶었다. 간장과 파를 끼얹어 푹 고아낸 갈비찜이나, 걸쭉하게 녹은 골수가 입천장에 쩍쩍 들러붙을 정도로 진한 꼬리곰탕 같은 것들. 딱 한 번, 어느 명절 잔치에서 먹어본 음식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환상도 지금 그를 향해 다시금 떠밀려 오는 또 다른 기억보다는 강렬하거나 유혹적이지는 못했다. - P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