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소재로 한 작품을 불과 얼마 전에도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바닷가의 루시》도 직접적으로 팬데믹 기간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었다.
엊그제 읽었던 올리비아 랭의 에세이《정원의 기쁨과 슬픔》도 작가가 팬데믹 기간에 영국 동부의 서퍽주에 커다란 정원이 딸린 저택을 구입하고 정원을 가꾸어 나가는 과정,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인 에덴과 존 밀턴의 《실낙원》을 연결지었고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정원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과 그럼에도 정원을 가꾸어 나가는 기쁨과 의미에 대해 쓴 작품이었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이 작품도 팬데믹 기간 동안 어느 작가에게 일어난 일을 중심으로, 불확실한 세상과 일상의 평범함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세 작품이 전혀 다른 문체와 언어로 쓰여져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단 것이 놀랍다.
소재만 같을 뿐이었다.

문어가 험난한 삶의 여정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그에게 자신의 인생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다시 일어나서 깨진 조각들을 맞추고 자신감을 되찾는 자신을 보게 해준다. 이제 그는 신예 자연주의자로서 아버지와 함께 다이빙을 시작한 아들에게 그런 자신감을 불어넣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어린 아들이 더 위대한 교훈을 체득하는 걸 지켜본다. 그것은 온화함이다. 온화함은 자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배우게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크레이그 포스터는 말한다. - P114
아마도 영상에 담긴 증거가 없었더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생의 문어와 인간의 다정한 상호 작용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 역시 그걸 쉽사리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이 지닌 생각하고 느끼는 능력에 대한 우리의 추정은 늘 크게 어긋났으며, 이제야 마침내 그걸 깨닫기 시작했으니까. - P115
만일 우리가 처음부터 더 큰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동물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우리 인간이라는 동물이 너무도 빈번히 파괴적 충돌을 일으켜 온 자연 안에서살아가는 법에 대해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방문객이 아닌 자연계의 일부라고 느끼는것, 거기 경이로운 차이가 있다고 크레이그 포스터는 말한다.) 그랬더라면 인간들 사이에 만연한 우울도 많이 줄었으리라. 그 모든 멸종들을 막을 수 있었을 테고 우리 종, 지구 전체가 구원될 수 있었을 것이다. - P115
나는 인간의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자연과 생명에 대한 본능적 사랑)를 믿는다.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친밀감, 그들과 가까이하고 연결되고 싶은 갈망,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 우리 DNA에 새겨져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세상을 점점 더 흉물스럽게 만들고 종내는 완전히 망쳐 버리려는 인간의 욕구는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P117
나는 유레카가 나와 놀고 있지 않을 때, 내가 거기있다는 사실조차 잊었을 때 그 새를 지켜보는 게 좋았다. 새들은 세상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공룡이다. 나는 그 경이로운 사실을 마음에 담고 유레카를 지켜보는게 좋았다. 어린 시절 한때 나는 공룡들에게 빠져서 살았다. 그땐 나중에 브론토사우루스가 내 마음속에서 느릿느릿 돌아다니지 않는 날이 몇 해씩 계속 되리라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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