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제국의 온상>: 퍼블릭 스쿨과 남성성

19세기 영국 퍼블릭 스쿨은 대표적인 9개 학교인 이튼, 윈체스터, 웨스트민스터, 차터하우스, 세인트 폴스, 머천트 테일러스, 해로, 럭비, 슈루즈베리를 지칭하며, 흔히 그레이트 퍼블릭 스쿨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논란의 여지없이 중.상류층을 위한 교육기관이었다.

19세기 중엽부터 기존의 고전 중심 교육에 대한 강한 비판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는 산업화와 새로 형성되는 중산 계층의 교육열, 나아가 제국 경영이라는 문제가 틀에 박힌 커리큘럼에 근본적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고 몇몇 의식있는 교장들이 교육환경과 조건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제 5 장에서는 《톰 브라운의 학창시절》이라는 작품을 예시로 하여 전개된다. 이 작품은 입학을 앞둔 8세의 아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쓴것으로 알려졌는데, 우연한 기회에 출판을 하게 되어 큰 인기를 끈다.

작품의 내용은 이러하다.
한 소년이 집을 떠나 기숙학교에 들어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노력하면서 자신이 꿈꾸던 존경받는 학생이 되고, 이후 그 학교를 방문하여 자신을 성장하게 한 학창 시절의 의미를 되새긴다는 전형적인 성장소설,
즉 빌둥스로만Bildungroman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소설은 19세기 퍼블릭 스쿨의 생활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상세하게 기술했다는 점, 이 소설을 통해 영국의 소년들 사이에 새로운 남성상이 정립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집을 떠난 소년들은 학교라는 낯선 공간에서 모험을 펼치고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상급생들로부터의 괴롭힘과 고문, 끊임없는 고자질, 규율과 만연한 체벌, 어렵고 지루한 공부 등은 교육기간 내내 이어진 요소들이었다. 이런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내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숭앙된 것이 <절제>이며 이는 빅토리아 시대 남성상의 큰 줄기로서 한편으로는 <신사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창 사춘기를 겪을 소년들의 삶을 묘사하면서도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나 접촉에 대해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오히려 소년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와 감정을 부각시키는데 상급생과 신입생의 관계를 넘어서는 존경과 애정, 동지애의 감정들을 부각시켜 나타냄으로써 여성의 부재에 대한 차선책인 동성애 대한 사랑이 소년들을 지배하는 주된 감정이었음을 암시한다.

한편으로는 어린 소년들이 여러 측면에서 불안정한 정서적 상태에 놓여있었음을 시사한다.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에 멀리 떨어져 생활해야했던 정서적 박탈감, 엄격한 규율의 남성적 세계에서 살아남이야 한다는 압박감, 나아가 강렬한 성적 욕망을 경험하는 청소년기의 욕망과 접촉이 차단되어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기회가 박탈당한데서 오는 불안정함이 결국 정신적 미성숙으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한편으론 일리있어 보인다.

다른 관점에서 당시 동성간의 사랑이 이성애와는 다른 차원에서 논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할 수 있다. 즉, 남성에게 사랑이란 동성애와 이성애 사이에서 반드시 양자택일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와 이성애가 전혀 충돌을 일으키지 않을 다른 종류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점 말이다.
남성적 사랑은 이성애를 특징짓는 육체적 관계보다 ‘정신적 교감‘이라는 색채가 강한 개념이었으며, 정신적 사랑이란 서구 기독교 전통에서 오히려 높은 도덕적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남성들 사이의 사랑은 원칙적으로 섹스를 배제한 이성애와는 병립할 수 없는, 한 차원 높은 <형제애>라는 이름으로 고양되었다. 그러나 동성애가 성적이든 아니든간에 ‘여성혐오‘라는 또 다른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남성들만의 공간이었던 퍼블릭 스쿨에서의 인간관계는 계속 이어져 대학, 군대, 교회, 의회, 클럽, 그리고 군대에 이르기까지 <공적인> 영역에 귀속한 남성의 행동반경 전체에 적용되었다. 19세기의 성공한 많은 남성들이 애정없는 결혼생활을 유지하거나 남성들 사이에서 평생 지속되는 우정은 마치 부부와도 같이 늘 함께하는 유명한 남성커플들을 만들어내었는데 어찌보면 이 시대의 당연한 현상으로 자리잡은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퍼블릭 스쿨의 생활은 자신들이 <특권층>임을 자각하는 과정이다. 집을 떠나 학교로 가는 여정에서 톰이 가장 먼저 배운 것은 하층민에게 함부로 대하는 방식과 그들과 문제가 생겼을 때 몇 푼 쥐어주며 해결하는 방법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어떤 계층에 속해 있는가를 확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다양한 행위들의 연습장이기도 하다. - P217

<특권층>이라는 자각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최고라는 자기최면의 과정이 필요하다. 하층민을 타자로 삼아 스스로의 우월한 지위를 확인하기도 하고, 심지어 학교 내의 집단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자 한다.  - P217

심지어 제국 경영을 위해 스포츠를 확산시킬 때도 인도에서 하는 크리켓은 특별히 영국의 퍼블릭스쿨 출신들과 인도의 고위 계급 간의 동맹 allegiances을 위한 매체의 성격이 짙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를 도덕적 목적으로 보고자 했던 상류층의 아마추어리즘은 19세기 말 프로페셔널리즘과 충돌하게 되었으며, 아마추어리즘을 고수하고자 하는 중. 상류층의움직임이 그토록 맹렬했던 것이다. - P219

남성적 제국주의의 대중화 속에는 계급과 성별을 초월해서 대중들이 주인공 톰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자기최면의 미학이 숨어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퍼블릭 스쿨은 사실 무척 배타적인 엘리트집단이었다. 그럼에도 대중들이 톰 브라운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이 톰 브라운이 될 수 있는가를 먼저 성찰하기보다는 스스로가 이미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자각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계층과 성별을 초월해 <영국인> 모두를 우월하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제국이다. 그리고 식민지인들은 바로 수많은 낙오자, 즉 바람직하지 않은 수많은 남성성의 정형으로 이미 설정되어 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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