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가난한 가족은 수공업자와 공예가, 특히 칼이나 맷돌 가는 사람, 제화공, 재단사, 화가의 가족이었다. 그들은 땅도 경작했지만 현금 수입에 의존했고, 사람들이 현물을 뒤늦게 지급하곤 했기 때문에 현금이 부족할 때가 많았다. 따라서 그들은 추가 수입원을 찾으려 했다. 재단사는 구급대원이었고 칼이나 맷돌 가는 사람은 방역원이었으며 화기는 교회지기였다. - P52
또 다른 조롱의 노래는 다음과 같았다.
베드로와 바울 축일(6월 29일)에 할 일이 없다면, 마리아 방문 축일(5월 31일)에는 왜 일해야 하나?
이런 노래는 1920년대 독일어를 못해도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사회적 혜택을 받을 수 있던 ‘게으른 외국인‘에 대한 비웃음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농민과 상인들의 기대에 순응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자 마을의 일부였다. 이 집단에는 마을의 ‘스톡하우스‘에 사는 형제들도 들어갔다. 그들은 본가에 남았고 땅을 상속받지 않았다. 또한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부모의 집에 머물 권리가 있었고 ‘삼촌‘이나 ‘대모‘로서 농장 일을 도우며 무급 하인으로 일했다. - P53
타보 디디 우리는 어릴 때 그들을 조롱했고 타보 디디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부유한 스톡하우스 출신 무두장이의 동생이었고 가끔씩만 일했다. 여름이연 열매와 덤불을 모으고 때로는 들판에서 일을 도왔다. 종종 도랑세서 잠자는 그를 볼 수 있었다. - P53
오빠들은 그의 침실이 책과 시계를 비롯한 장비로 가득하다고 했다. 그는 시계도 고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프랑스어를 비롯해 여러 언어를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의 이름 ‘요한‘이 프랑스어로 무슨 뜻인지 물었을 때 그는 "타보 디디"라고 대답했다. 그 후 온 마을이 그를 타보 디디라고 불렀다. 우리는 어릴 때 그의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를 따라 했다. 타보 디디는 일꾼이 많이 필요한 가을에 곡식 타작을 도왔다. 우리 집에서 모두에게 식사를 대접했는데 그들은 항상 좋은 이야기와 농담을 들려주었고 우리는 열심히 들었다. 나는 타보 디디의 이야기 하나를 기억하는데 무엇에 관한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펠 방언으로 말한 철학적 결론은 기억한다. "인간이되는 건 쉽지 않아요." - P54
중학교 때 작문 숙제를 하면서 이 문장을 제목으로 타보 디디와 필요한 만큼만 일한다는 그의 철학에 대해 썼다. 독일어 선생님은 이 글을 너무나 좋아해 가지고 다니면서 "인간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는 말을자주 인용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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