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전쟁을 하고 있는 군인들에게도 중요했지만 그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에게도 중요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훗날 존 모리스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야 말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뉴스라고 회고했듯이 전장의 카파가 가장 긴 하루를 보낸 것처럼 그의 사진이 바다를 건너 런던으로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존 모리스 역시 가장 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카파의 사진보다 후방에 있던 사진기자들의 필름이 먼저 도착했지만 그것은 전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초조한 기다림 속에 마감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마침내 카파의 필름들이 도착했다. - P248

"필름들이 망가졌어요. 망가졌다고요."
서둘러 현상을 하던 암실 기사가 현상이 끝난 뒤 현상약품에 젖어있는 필름을 말리는 과정에서 너무 서두른 나머지 실수로 필름 건조기의 조작을 잘못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수로 건조기에서 너무 높은 온도가 발생하면서 필름들이 녹아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 P248

... ... 이런 불상사 앞에서 사색이 된 존 모리스는 필름을 하나하나 면밀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총 4통의 필름 (36장짜리) 중 3통은 완전히 녹아버렸고, 불행 중 다행으로 나머지 한 통에서 11장의 사진이 그 이미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중 두 프레임은 그다지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고 이 중 아홉 프레임이 쓸만했는데 몇 장은 중복되는 사진이었기에 이 중 여섯장을 인화한 뒤 존 모리스는 군의 검열을 마치고 마감 시간을 몇초 남겨두고 겨우겨우 마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진들은 6월 19일자 『라이프에 ‘유럽을 위한 운명의 전투‘라는 설명과 함께 일곱 페이지에 걸쳐 게재되었다. 녹아버린 필름의 감광제로 인해 흐릿하게 나온 사진을 공포 속에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식으로 기사를 실었다. - P249

이 사진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결코 영웅적인 군인의 모습이 아니다. 가슴 끝까지 잠기는 파도를 헤치며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안간힘 쓰고 있는 전쟁의 공포 앞에서 부유하고 있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독일의 강철 재상으로 불렸던 오포 폰 비스마크르는 ‘전투를앞둔 병사의 눈빛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쟁을 하자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P249

이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진 속의 남자는 마치 로버트 카파처럼 보이기도 한다. 군인의 손 앞쪽으로 보이는 물체는 마치 카메라가 젖지 않게 감싼 방수주머니 같아 보이기도 하고 이러한 모습으로 핏빛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을 로버트 카파가 연상되었다. 사진 속의 군인도, 그리고 총 대신 카메라를 쥐고 있던 카파도 모두 그 현장에서는 영웅이 아닌 한 명의 나약한 군인들일 뿐이었다. 그 전투에서 살아남고, 그리고 우리 편이 승리했을 때에만 그들은 영웅으로 불리게 되는 것이었다. 목숨을 잃거나 혹은 그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그들은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전쟁의 소모품 같은 목숨 중 하나가 될 뿐이다. - P250

로버트 카파의 수많은 전쟁 사진들이 일관되게 우리에게 보여주는 한 가지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결코 용맹한 영웅들이 아니다. 그의 사진 속에는 언제나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들의 눈과 표정에는 공포가 그대로 담겨 있으며 자신들이 전쟁의 소모품이란 것을 알면서도 기관총이 빗발치는 오마하 해변으로 나아가는 군인들의 뒷모습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전쟁이 야기한 폭력 앞에 무기력하게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 P2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