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저벨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온 얼굴에, 겨드랑이에 땀이 쏟아지고 있었다. 넋이 나간 채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도티를 애처롭게 바라보면서, 이저벨은 재앙을 눈앞에서 목격한 느낌, 지진의 강한 충격으로 집이 폭삭 주저앉는 장면을 지켜보는 느낌에사로잡혔다.
하지만 그것은 지진도 아니었고 ‘신의 섭리‘도 아니었다. 아니. 이런 일로는 신을 탓할 수 없었다. 이런 일을 서로 저지르는 것은 인간,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망가뜨렸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취했고, 애크미 타이어 회사에서 일한다는 앨시어라는 여자는 윌리 브라운을 원해 그를 차지했다. - P415

이저벨은 이 아이가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허리를 숙이고 담요를 끌어당겨 에이미의 팔과 목을 잘 덮어주려고 했을 때 그 생각이 마음을 스쳤다. 에이미는 이저벨과 분리되어 있다. 모두와 분리되어 있다. 등받이가 사다리같이 생긴 의자를 침대 가까이 끌어다놓고 앉아, 이저벨은 이 얼굴의 각기 다른 그림자와 형태를 뜯어보았다. 몇 년 사이 아이의 생김새는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 P480

분리된 사람, 이저벨은 에이미의 뺨에 흩어진 머리카락들을 머뭇거리는 손길로 만지며 또다시 생각했다. 하물며 할머니가 쓰던 벨리크 자기 크리머도 물려받지 못할 아이. 이쯤에서 이저벨은 기대앉았고, 산산조각 난 크리머가 떠오르자 와락 눈물이 솟구쳤다. 그 하얀 도자기는 이저벨에게 섬세하고 비현실적이고 다정한 어머니를 상징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그 최후가 에이버리 클라크가 그녀의 집에 오기로 한 약속을 잊어버린 사건과 동시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엄청난 슬픔을 안겨다주었고,
이저벨은 아직도 그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깜빡했어요. 이저벨." 그의 말은 그녀의 마음 언저리에 가혹한 흰색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었다.
- P480

에이미가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오늘 아침 두번째로 잠에서 깼을 때 엄마에게 도티의 이야기를 들었고, 몽롱한 괴로움 속에서 최근에 가슴을 두들겨맞고 심장이 으스러지는 고통을 당한 사람이 자기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네 엄마는 정말 친절했어." 베브가 바닥에서 베개를 집어올리며 맞장구를 쳤다.
"아니요." 이저벨이 말했다. "실은 두 분이 저한테 정말 잘해주셨죠." - P507

그랬다. 조난당한 여자들이 있는 이 공간에는 어제도 오늘도친절함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간직해야할 비밀은 남아 있었다. 에이미에게는 당연히 로버트슨 선생의어처구니없는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누군지 모르겠습니다."이저벨의 비밀은 에이버리 클라크를 에이버리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위치에서 무의미한 위치로 남몰래 쫓아내는 것이었다. 심지어 도티조차 자신의 슬픔을 베브에게 모조리 털어놓지는 않았다 - P507

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계속 나아갈 뿐이다. 사람들은 계속 나아간다. 수천 년 동안 그래왔다. 누군가 친절을 보이면 그것을 받아들여 최대한 깊숙이 스며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은 어둠의 골짜기는 혼자 간직하고 나아가며, 시간이 흐르면 그것도 언젠가 견딜 만해진다는 것을 안다. 도티, 베브, 이저벨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미는 어렸다. 무엇을 참을 수 있는지 혹은 참을 수 없는지 아직 몰랐고,
이 자리에 있는 세 엄마에게 어리둥절한 아이처럼 말없이 매달려 있었다. - P508

... 그 순간 이저벨 굿로는 담배 연기가 아직 자욱하게 남은 그녀의 조촐한 거실에서 에이미에게 제이크와 에벌린 커닝햄 이야기의 결말과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그들의 세 자녀에 대해 나직이 일러주고 있었고, 지금까지 에이미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은 자기 잘못이었다고 마무리했다.
에이미는 엄마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소파와 창문과 의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뒤따르는 긴 침묵 속에서 에이미의 눈동자는 거실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또다시 이저벨에게로 옮겨갔다. 
"엄마." 마침내 소녀가 입을 뗐다. 이해했다는 듯 눈과 얼굴과 입이 커졌다. "엄마, 저도 저 바깥에 이어진 가족이 있었네요." - P515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듯 이날을 기억할 것이다. 이저벨의 은밀하고 깊숙한 기억 속에는 이날이 그녀가 에이미를 가진‘ 마지막날처럼 느껴질 테니까. 그녀의 기억 속에 나뭇잎들은 항상 금빛이고, 고속도로에는 아침 햇살로 샤워하고 가을 날씨로 빳빳해진 금빛 나뭇잎들이 나부끼는 나무들이 늘어서 있을 것이다. - P537

다시 차에 올라탄 뒤 에이미와 이저벨은 서로 쳐다보았다. 에이미는 "좋아요. 이제 가요" 하고 말하는 것처럼 웃으면서 눈썹을 치키고 숨을 짧게 들이마셨고, 두 사람 다 로켓을 타고 떠나기로 합의한 뒤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는 것처럼 잠시 하나가 
되었다. 
이저벨은 오랫동안 그 순간을 기억하며 딸에게 사랑한다고,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되는데, 고속도로에 다시 들어서자 지금 하늘로 날아오르는 사람, 영원히 떠나는 사람은 에이미뿐이며, 이저벨이 여기 있는 것은 로켓을 조종하여 이 아이를 이저벨의 품이 아닌 가족과 형제와 친척의 품에 데려다주기 위해서라는 느낌이 점점 강하게 밀려왔기때문이었다.

그들은 말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다. 이저벨은 함께 달리는 이 순간을, 노란 잎들을, 가을의 황금빛을 기억할 것이다.  - P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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