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민트》 백온유, 창비, 2022

간병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 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 아빠가 썩든 내가 썩든 누구 한 명이 썩기 시작하면 금방 두 사람 다 썩을 것이다. 오염된 물질들은 멀쩡한 것들까지 금세
전염시키니까. - P122

"그래도 누군가 내 곁에 있어 줄 거라고 믿을 거야. 나같은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 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보람도 느껴. 처음에 내가 간병을 맡았을때, 넌 너희 엄마에게서 눈을 못 떼고 있었지. 누가 엄마를 바꿔치기라도 할까 봐 그랬니? 식사 때가 되어도 가지 않아서 언제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니 너는 아무 말도 못 했어. 그제야 네가 하루 종일 쫄쫄 굶은 걸 알았지. 내가 못미더워서 그런가 보다 했어. 그래서 더 마음을 다해 간병했어. 처음엔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 같은 거나
사서 병실에 쪼그려 앉아 먹더니, 나중에는 식당에 내려가서 밥을 먹기도 하고, 잠시 자리를 비우기도 하는 걸 보고 난 뿌듯했어." - P193

"그러셨어요? 불안증이 심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아빠와 나는 엄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눈을 판건 아니지만 엄마의 의식이 멀어지는 순간에 우리가 자리를 비웠다는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알아. 어쨌든 네가 나에게 엄마를 완전히 맡기고 하루에 단 몇 시간이라도 네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어. 학교 가는 너를 보면 기뻤어." - P194

차는 어느새 식어 있었다. 나는 말로 하기 힘든 묘한 기분을 느끼며 최선희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새 나의 슬픔을 최선희 선생님과 나누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덕분에 나는 아주 조금 가벼워졌는지도.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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