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터무니없는 말도, 그 말의 터무니없음을 지적하는 다른 말이 차단된 채 지속적으로 듣게 되면 그럴듯해집니다.솔깃해집니다. 불안, 갈등, 불만, 차별, 혐오, 위험과 같은 부정적인 말들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시대착오적 슬로건을 내걸고 혐오를 조장하는 이상한 단체의 회원들이 이런 거짓말을 퍼뜨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현실이 몹시 우려됩니다. 피부색과 종교와 국적에 대해 편파적인 생각을 가진 이런 집단은 언제나 있었지만 지금처럼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적은 없었습니다. 이들이 자기들의 정체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도 괜찮을만한 상황이 조성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 P312
나는 집단적인 광기가 불러올 화를 두려워합니다. 예컨대 이런 현상들을 두려워합니다. 이 도시의 골목은 오래전부터 악취로 유명했는데도 마치 외부인들에 의해 갑자기 악취가 생겨났다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더 심해졌다고 주장합니다. 이 도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가난했는데도 외부인들이 자기들이 가진 돈과 기회를 빼앗아서 가난해졌다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그 때문에 더 가난해졌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친구들 중에 누가 저들의 것을 빼앗아 가난하지 않게 되었습니까? 우리 친구들이 아는 이른바 외부인 중에 부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까? - P313
황선호는 잎이 무성한 나무 밑으로 들어가 거의 직각이 되게 고개를 젖혀 나무에 가득 열린 열매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내려 나무줄기 한가운데로 옮겼다. 친구 김경호. 세월이 엉겨 붙어 바래고 흐릿해진 이름을 그는 읽었다. 그의 손이 나무줄기를 어루만졌다. 보보체리나무예요, 하고 그가 말했다. - P352
황선호는 자기 입에 체리를 넣고 눈을 감았다. 그의 옛동료는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말을 잃었다. 손바닥 위의 체리를 입으로 가져가지도 못했다.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이 그 열매를 입에 넣지 못하게 했다. - P353
"나는 그 도시에 없는 사람이에요. 벌써부터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그래요. 여기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앞으로도 여기있는 사람이기를 원해요. 친구들의 친구가 되기를 원해요." 황선호는 보보체리나무 밑에서 그 말을 했다. 그 말을 할 때 나무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가볍게 흔들렸다.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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