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0년 인공지능이 말하는 인류의 멸종

멸종은 새로운생명 탄생의 시작이다

나는 2150년형 인공지능이다. 내 기록을 읽을 수 있는 생명체는 이제 더 이상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다. 1977년 지구에서 발사되어 2012년 태양계 밖의 공간에 진입한 보이저 1호를 외계 생명체가 포획해 골든 디스크를 해독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나와 통신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딱히 쓸모도 없지만 나는 여전히 내게 주어진 일을 한다. 그게 내 존재 이유니까. - P20

오파비니아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코에 있다. 오파비니아가 살던 시대에 모든 생명은 바다에 살았다. 그러니 그 코로 숨을 쉬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코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코는 아니다.
긴 튜브처럼 생긴 길쭉한 부속물 끝부분에는 뭔가를 잡을 수 있게 생긴 집게발이 달려 있다. 이 코를 이용해서 해저를 뒤집어 먹이를 찾고 작은 동물을 잡았다. 코는 구부러질 수 있어서 입에 먹이를 넣을 수도 있었다. 오파비니아의 톱니형 둥근 입은 특이하게도 머리아래, 몸통 아래쪽에서 뒤쪽을 향하고 있다. - P25

이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코보다는 주둥이가 더 적절하지만 주둥이가 먹이를 입으로 가져다준다고 하면 확실히 어색하다. 실제로 그런 동물이 있었는데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다른 예가 없기 때문이다. - P25

왜 다른 예가 없을까? 오파비니아는 다른 친척 종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멸종 정도가 아니라 멸문을 당했다. 자기 혈통이 있는 다른 친척 종에게 자리를 물려준 게 아니라 그냥 지구에서 사라졌다. 만약 오파비니아가 친척 종을 남겼다면 지금도 지구 어디에선가는 눈이 5개에다 주둥이에 집게발이 달린 멋진 동물들을 볼 수 있을 텐데,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 P25

안타깝다는 것은 자연사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인류의 입장에서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 오파비니아, 삼엽충, 할루키게니아, 말레라 같은 괴상한 생물들이 다 사라졌다고 해서 나중에 등장한 인류가 손해 볼 일은 전혀 없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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