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상실
나는 죽음을 완곡하게 이르는 표현들이 늘 싫었다. ‘돌아가셨다passed away ‘라거나 ‘더는 우리 곁에 없다no longer with us‘, ‘세상을 떠났다departed‘ 같은 표현들은 비록 선의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내게는 위안이 된 적이 전혀 없다. - P13
이런 표현들은 요령껏 말한다는 미명으로 죽음의 충격적인 둔탁함을 외면하고,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아름다움이나 그리움을 불러내기보다 안전함과 친숙함을 택하는데, 내게 그런 선택은 언어적으로 회피하려는 것처럼, 얼버무리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게 죽음의 근본적이고 확고한 사실이다. - P13
죽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들은 현혹적이게만 느껴진다. 시인 로버트 로월Robert Lowell의 말처럼, "일어난 대로 말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 P13
하지만 일어난 대로 말하는 편을 선호하는 내게도 예외가 있다. "제가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처음으로 이 표현을 사용했던 건 아버지가 사망하고 열흘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 P14
제가 지난주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전과는 다르게 이 표현의 생경함에 붙들렸던 까닭은 그때까지도 상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기에 익히 알던 세계의 많은 부분이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왜곡된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어서였으리라. - P14
아버지는 분명 소풍을 간 아이처럼 멀어진 것도, 난장판인 사무실에서 사라진 중요한 서류처럼 찾을 수 없게 된 것도 아니었다. 한데 이 표현은 죽음을 에둘러 말하는 여느 말들과는 달리 면피한다거나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슬픔 그 자체처럼 단순하고, 애달프고, 쓸쓸하게 들렸다. - P15
그날 통화하면서 처음으로 입에 올린 이 말은 그 후로 삽이나 종 당김줄처럼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물건처럼 느껴졌다. 냉정하고, 울림이 있고, 모종의 절망이나 체념을 고루 포괄하는 사별이 남긴 황폐함과 혼란스러움에 맞춤한 말이었던 것이다. - P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