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가 나가던 날, 큰아버지는 그를 앞장세웠다. 그는 다른 친척들과 함께 상여 뒤를 따라 장지까지 갔다. 모두들 숙연한 얼굴이었고, 이상스럽게 조용했다. 곡을 하는 사람도 없었고, 슬픈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 P80

큰아버지가 그의 손에 삽을 쥐여주었다. 그는 처음 겪는 일이었고, 당연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흙을 퍼서 관 위에 뿌리라는 주문을 받고 나서 그는 조금 멈칫거렸다. 사람들은 삥 둘러서서 그가 행동하기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야릇한 눈길들 속에서그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자신이, 적어도 그 순간, 거기 모인 사람들에 의해서, 매우 특별한 존재로 구별되고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들과 달랐다. 그들은 그와 달랐다. 적어도 그들의
표정은 그렇게 선언하고 있었다. 너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네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그가 종종 경험하곤 했던, 세계로부터 이탈되어 나가는 듯한 걷잡을 길 없는 소외감이 그때 처음으로 그를 찾아왔다. - P80

그는 온몸을 빠르게 관통하는 전율에 사로잡혀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했는데, 그것은 세계를 상대로 맞서 있는 한 왜소한 개체의 외로움이 그를 덮쳤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 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조용히 떨어졌다. 그 한 방울의 눈물을 타고 몸속의 기가 모조리 순식간에 빠져나가버렸다. 그는 맥없이 자리에 쓰러졌다. 필시 사람들은 오해했다.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고, 감정을 누르며 코를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또 애써 소리 죽인 이런 말도 들렸다.
"불쌍한 것...... 다 알고 있었던가보지………
"그러게나. 이제 저 아이를 어쩔꼬......" - P81

물론 오만이다. 모든 오만의 기본적인 정서는 슬픔과 울분, 또는 슬픈 울분이고 그 뿌리는 좌절감임을 나는 안다. 키가 작아 포도를 따먹을 수 없을 때 어떤 여우는 ‘저 포도는 시다‘라고 말하며 돌아선다. 다른 여우는 ‘포도 따위는 저열한 족속들이나 따먹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돌아선다. 돌아서는 행위는 같지만, 두 경우의 동기는 미묘하게 다르다. - P131

아마도 나는 후자의 여우 편이었으리라. 세상과 나는 맞지 않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너무 추월해버렸기 때문이라는 편집증적인 생각의 한가운데서 좌절감과 울분이 뒤섞인 오만의 안쓰러운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증거도 있다. 가난과 외로움과 근거 없는 적대감의 나날. 그것들은 그 시절 내 삶의 목록이었다. 내 삶의 전부였다. 그것 말고는 달리 가진 것이 없었다. 
아, 빚도 재산이라고 한다면 그런 뜻에서 그것들은 나의 재산이었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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