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면 흔히 갖게 되는 믿음은, 소냐의 경우 그 한계를 몰랐다. 남편의 재능은 어느새 믿음이 되었고 그녀는 숭고한 기쁨으로 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공간과 관련한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우아하고 섬세한 해법들과도 거리가 멀었지만 남편의 이상한 장난감들 속에서 그의 개성과 재능 있는 손놀림을 느끼고는 행복에 겨워 혼잣말로 소중하게 숨겨놓은 문구를 중얼거리곤 했다. "하느님, 하느님, 제게 왜 이런 행복을 주십니까.." - P38
로베르트 빅토로비치는 말하자면 그림 그리는 일을 때려치웠다. 타네치카와 함께 했던 예전 놀이들이 새로운 수공예를 탄생시켰다. 이런일에는 항상 우연이 겹치기 마련이다. 알렉산드로프의 전차에서 그는파리 시절의 지인으로 모스크바에 돌아온 이후 체포되기 이전까지 관계를 유지했던 유명한 예술가 티믈러를 만났다. 당시 허풍쟁이나 재능없는 이들을 부르는 말이었던 형식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던 이 예술가는 불안한 시기를 피해 한동안 극장에 숨어 있었다. 로베르트 빅토로비치를 방문한 그는 한 시간 반 동안, 판자로 만든 헛간에서 아라비아숫자와 유대 알파벳이 쓰인 몇몇 작품들 앞에 서 있었다. 유대 학교에서 고작해야 이 년간 교육받은 이 지방 목수의 아들은 로베르트 빅토로비치 작품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했지만 이 이상하게 생긴 글자의 뜻을 선뜻 묻지는 못했고, 로베르트 빅토로비치 또한 자신에게는 너무나 그 관련성이 명확한 카발라 글자(그가 젊은 시절 유대교에 심취한 것에 대한 증거물)들과 공간을 분할하고 뒤집어놓는 과감한 유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 P38
티믈러는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차를 마셨고 떠나기 바로 전 어둠게 말했다. "여긴 너무 습하지 않나. 로베르트, 자네 작품들을 내 공방으로 옮기도록 하지." 로베르트 빅토로비치의 작품에 대한 인정인 동시에 고마운 배려였지만 그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연히 나타난 이름 없는 작품들은 수차례의 이사를 견디지 못하고 한 헛간에서 썩어 사라졌다. 바로 이 헛간에서 유명 예술가 티믈러가 로베르트 빅토로비치에게 연극 무대 모형을 만들어달라는 첫 주문을 넣었다. 얼마 후, 그가 만든 무대 모형은 모스크바 극장계 전체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고 주문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는 반미터쯤 되는 무대에 고리키의 밤 주막이나 톨스토이의 상속자 없는 고인의 서재, 혹은 오스트롭스키의 불멸의 헛간도 만들었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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