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러일 전쟁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마쓰가에 기요아키(松)는 가장 친한 친구 혼다 시게쿠니(本多繁邦)에게 그때가 잘 기억나느냐고 물어봤지만, 시게쿠니의 기억도 가물가물해서 제등 행렬을 보러 문 앞까지 따라 나간 일을 어렴풋이 기억할 따름이었다. - P7
그 전쟁이 끝나던 해 둘 다 열한 살이었으니 좀 더 선명히 기억할 법도 하다고 기요아키는 생각했다. 의기양양하게 그때를 떠벌리는 급우는 아마도 어른들에게 얻어들은 것을 고스란히 받아 옮겨서는, 저에게는 있는둥 마는 둥 한 기억을 꾸며 내고 있을 뿐이었다. - P7
마쓰가에 가문에서는 기요아키의 숙부 둘이 그때 전사했다. 할머니는 지금도 두 아들 덕에 유족 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그 돈은 쓰지 않고 제단에 그대로 올려 둔다. - P7
세피아 잉크로 인쇄된 그 사진은 여느 잡다한 전쟁 사진과는 전혀 다르다. 구도가 이상할 정도로 회화적인데 수천 명의병사가 어떻게 봐도 그림 속 인물처럼 보기 좋게 배치되어 있는 데다, 맨나무로 만든 중앙의 높은 묘표(墓標) 하나에 모든효과가 집중되어 있다. - P8
멀리 보이는 풍경은 희미한 형태의 완만한 산들로 왼편으로는 너르고 완만하게 경사진 들판을 펼치며 서서히 높아지지만, 오른쪽 저편은 성기고 작은 수풀과 함께 흙먼지 낀 지평선 쪽으로 사라지면서, 이번에는 산 대신에 차츰 오른쪽으로 높아지는 가로수들 사이로 노란 하늘을 내비치고 있다. - P8
가까이에는 도합 여섯 그루의 무척이나 키 큰 나무들이 저마다 균형을 지키며 딱 좋을 만큼 간격을 두고 치솟아 있다.수종(樹種)은 모르지만 우뚝이 서서 우듬지의 우거진 나뭇잎을 비장하게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 P8
화면의 정중앙에 맨나무 묘표와 흰 천을 휘날리는 제단, 그리고 그 위에 놓인 꽃들이 조그맣게 보인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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