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자 강이며 들판이며 숲이며 할 것 없이 사방 모든 것이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다운지, 이 세상이 적의도 배반도 기아도 노쇠도 없이 오로지 행복한 사랑만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구름이 달위로 헤엄쳐가고, 달은 회색 연무 속을 떠가고, 연무는 지상을 감싸안았다. 이날 벙커에서 밤을 보낸 병사는 거의 없었다. 숲 가장자리와 마을 울타리 근처에서 하얀 머릿수건들이 어른거리고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밤의 밀회에 놀란 나무들이 여기저기서 부르르 몸을 떨었고, 강물도 이따금씩 무언가 웅얼대다가 다시 소리 없이 미끄러지며 흘러갔다. - P256
연인들에게는 더없이 쓰라린 시간이 왔다. 이별의 시간, 운명의 시간이었다. 눈물 흘리는 연인을 내일 당장 잊을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죽음에 의해 연인과 갈라질 터였다. 또한 누군가는 운명으로부터 정절과 재회라는 선물을 받게 될 것이었다. - P256
어느새 아침이었다. 모터가 울부짖고, 비행기가 일으키는 바람이 흥분에 휩싸인 풀밭을 누르고, 수백만개의 이슬방울이 햇빛 아래 흔들렸다………… 전투기들은 한대씩 한대씩 푸른 산 위로 날아오르며 하늘로 기관포와 기관총을 들어올리고, 회전하고, 동료들을 기다리고, 사슬형으로 정렬했다. - P256
밤에 그렇게 거대하고 끝없어 보이던 것이 점점 멀어져가며 푸른 하늘 속에 가라앉는다...... 성냥갑 같은 회색 집들, 직사각형 채소밭들이 나타났다가 비행기 날개 밑으로 미끄러지며 사라지고・・・・・・ 이미 풀로 덮인 오솔길도보이지 않고 제미도프의 무덤도 보이지 않는다...... 자, 가자! 이제 숲이 흠칫 떨며 비행기 날개 아래로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녕, 베라!" 빅또로프가 중얼거렸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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