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 함정임의 유럽 묘지 기행
함정임 지음 / 현암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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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분다. 살려고 해야 한다!

  거대한 바람이 내 책을 펼쳤다가 덮고

  부서지는 물결은 바위에서 용솟음친다.

    ... ...

  날아가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아!

  부숴라, 파도야.

  부숴라, 내 환희의 물결로

  돛배들 쪼아대던 이 고요한 지붕을.

    ... ...

  아름다운 하늘, 진정한 하늘이여, 변해가는 나를 보라!

  (중략)

  나는 이 눈부신 공간에 나를 맡기니

  죽은 자들의 집 위로 내 그림자가 지나간다.


            ㅡ 폴 발레리, 「해변의 묘지」



함정임 작가의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의 부제가 '함정임의 유럽 묘지 기행'이다. 폴 발레리의 장시長詩 「해변의 묘지」를  읽고 이 시 한편에 홀려- 자그마치 8 년을 기다려 -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언덕에 펼쳐진 시인의 묘지를 찾아간다. 결과적으로 소설이 본업인 작가에게 또 하나의 길을 열어준 셈이 되었다. 대학 강의실에서 처음 접한 원서에 찍힌 '해변의 묘지'는 흑백으로 찍혀 있었는데 흑백에다 질이 좋지 않은 종이였음에도 작가에게는 그 바다가 폴 발레리의 시구처럼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 죽음 너머 생명이 잉태되는 바다가 선명한 색깔로 각인되었다. 그렇게 각인된 바다,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 세트 항과 

생피에르 언덕의 해변 묘지는 무한하게 열린 푸른 하늘과 바다를 향해 열려있었다. "눈부시게 퍼져나가는 햇살에 사로잡혀 바다는 푸르름을 해저 깊숙이 가라앉히고 있었다."(352쪽) 묘지는 약도에도 없었고 숨바꼭질 하듯 헤매는 사람들에게 단지 사이프러스 나무를 찾아가라는 현지 여인의 말을 따라 다시 힘을 내본다. 과연 폴 발레리의 묘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배경으로, 그 너머로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이단 묘석의 위쪽 묘석 테두리에 '폴 발레리'라는 이름을 이고 있었다. 머나먼 동양의 한 여자를 프랑스 남서부 끝 지중해안 언덕까지 이끈 폴 발레리라는 이름 하나... 그 이름을 마주하는 짧은 몇 분의 시간이 영원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고. 그리고 환청인듯 사이프러스 울울히 서 있는 등 뒤에서 한 영혼이 빈약한 어깨를 어루만지듯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니...




  "오, 사색 뒤에 오는 보상. 신들의 고요에 던져진 그토록 오랜 시선." 

화답으로 폴 발레리의 시구를 음송하며 작별을 고한 시간, 그 순간들을 가만히 생각해본다. 작가는 어쩌다가 이토록 묘지 기행에 빠져 버렸을까.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신비한 마력에 빠져 버렸으니 말이다. 30 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글을 쓰고 가정을 꾸리면서 작가들의 묘지를 찾아 다녔다. 폴 발레리의 묘지를 시작으로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 팡테옹, 몽마르트르 묘지, 페르 라세즈 묘지, 그리고 반 고흐를 찾아 암스테르담과 아를,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기 위해 찾아 간 빈치 마을과 앙부아즈 성 예배당에도 갔다. 알베르 카뮈의 영면처 루르마랭, 아일랜드의 예이츠와 이니스프리 호수, 셰익스피어의 고향과 이탈리아 베로나의 줄리엣 묘, 러시아 작가들의 묘지와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 크레타 섬을 돌고 다시 돌고 돌아 프라하와 드레스덴, 음악가들의 고향 빈 중앙 묘지에도 갔다. 사진으로 만나는 작가들의 묘지는 아름답다. 삭막하고 복잡한 납골당에 안치된 우리의 묘지 문화와는 너무 다르다. 묘지이면서 쉼의 공간이고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거대한 공간들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이 이렇게 맞닿아 있다는 것이,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이 이토록 친근한 공간으로의 이동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죽음이 결코 두려운 일만은 아닌 것 아닐까, 혹은 영원한 휴식에 드는 이 묘지라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희석해주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누구든...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를 만난다. 그들의 묘지가 정문 초입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란다. 처음엔 사르트르(1905~1980) 혼자였지만 6년 후 보부아르(1908~1986)가  영면에 들면서 합장이 되었다. 계약 결혼 관계였지만 살아 생전 한 공간에 살지 않았던 사람들이고 여행을 가거나 호텔에 방을 얻더라도 나란히 각자의 방을 얻고, 같은 구역의 각자의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각자의 연인들을 거느리기도 하면서 51 년 간 독특하고 자유로운 동거를 이어간 사람들인데 죽어서는 이제 하나의 묘석 아래 "꼼짝없이" , '영원히' 묶이게 된 것이다. 사후에 그들의 묘를 합장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보는 그들의 합장묘여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단순하지만 아름답게 장식된 베이지 톤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비석에 그들의 이름이 새겨졌고, 관람객들이 가져다 놓은 듯한 묘석 위에 장식된 꽃화분이 끊이지 않는, 죽어서도 사랑받는 두 사람... 죽어서도 살아서도 변함없이 영원히 함께 하길... 그 외에도 마르셀 프루스트의 묘가 있는 페르 라셰즈와 일리에콩브레의 프루스트 박물관과 그의 작품에서 발베크로 호명되는 카부르의 그랑 오텔, 프루스트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관한 박물관(일명 벨 에포크 박물관), 파리의 프루스트가 태어난 집 등도 기억에 남는다. 프루스트 투어로도 프랑스 여행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것이다. 사실 함정임 작가가 30 여 년 간 열정적으로 다녀왔던 작가들의 묘지와 생가와 작품과 인생의 이야기들이 너무 방대해서 누구 한 작가를 기억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다. 함정임 작가가 직접 찍어서 수록된 사진들을 보는 재미도 결코 적지 않다. 여행을 한다면 여행 안내서로도 부족함이 없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어 나가다보면 500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이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많은 작가와 작품과 인생과 묘지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묘지를 콕 찍어 말할 수 있을까??? 당연히 있다! 가서 만나고 싶은 작가의 묘지가 너무 많아서 못 고를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파리의 페르 라셰즈에서 몽파르나스, 팡테옹, 그리고 그나마 내가 다녀온 몇 안되는 곳이어서 더 기억에 남았던 토마스 만의 작품의 배경이었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반 고흐의 네덜란드와 예이츠의 아일랜드까지, 또 더 멀리 베토벤과 슈베르트, 쇤베르크의 오스트리아와 독일과 체코의 프라하와  또 내가 좋아하는 작품인 『그리스인 조르바 』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크레타 섬에서 만나는, 제대로 된 십자가도 없이 엉성한 나무 십자가와 바람에 바랜듯한 검은 대리석 - 묘지와 러시아의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는 안톤 체호프와 니콜라이 고골의 묘지 등등. 참 많이도 있었지만... 




  "누군가의 마음 상태를 알려면 그 사람의 방에 가보라. 누군가의 생애, 그 사람의 기질을 알려면 그 사람의 묘지, 영면처에 가보라. 그 동안 수차례 찾아간 프루스트, 베케트, 카뮈,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뒤라스, 보들레르, 랭보 등의 묘지 앞에서 터득한 내 나름의 진실이다."(410쪽) 이 말에 격하게 동의~~~! 사랑하는 작가의 묘지를 찾아 멀리 러시아까지 날아간 함 작가는 이렇게 글을 시작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하늘 아래 새소리뿐! ...... 내가 서 있는 곳은 러시아의 작은 마을에 있는 톨스토이의 영지領地의 숲길. 6월 28일 아침 9시,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180킬로미터 떨어진 툴라라는 도시로 떠났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툴라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톨스토이가 태어나고 묻힌 야스나야 폴랴나 마을로 향했다. ..."(417쪽) 톨스토이의 고향이자 영지가 있는 야스나야 폴랴나 마을이라는 지명은 톨스토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워낙 유명한 마을이지만 막상 영지로 들어가는 길 옆의 자작나무 오솔길과 오솔길 끝 톨스토이의 하얀 집을 보는 순간 함 작가의 저 문장들이 가슴에 콕 박히면서 뭔지 모를 감동이 밀려 오고 있었다. 역시 이 작가는 죽음에 있어서도 내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소설가에서 사상가로 나아가는 과정에 무소유를 실천하였고 "슬퍼하지도 생각하지도 말고, 아무것도 세우지 말고 그저 소박하게 묻어달라던 톨스토이, 하늘을 사랑하여 하늘을 잘 보이게만 해달라고 당부했다던 톨스토이" 유언에 따라 정말 그의 묘에는 묘비명도 상석도 하나 없고 그저 하늘과 새소리, 그리고 초록의 자연뿐.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지만 함 작가도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찾아갔던 세상의 수많은 예술가들의 무덤 중 가장 자연스럽고 숭고했다"고 적고 있다.




수많은 작가들의 묘지를 찾아다니다 보면 묘비에 새겨넣은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나기도 한다. 작품들만큼이나 무덤의 형식이나 묘비명들이 개성적이었는데 그 중 함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묘비명으로 많고 많은 묘비명 중에서 단 두 작가를 꼽았다. 한 사람은 아일랜드의 민족시인인 예이츠이다. 예이츠의 묘지는 더블린의 북서쪽 끝 슬라이고 항 근처의 벤벌빈이라는 기이한 형태의 산 아래 드럼클리프 마을의 세인트 콜롬바즈 패리시 교회 뒤뜰에 있다. 한반도에서 아일랜드를 가기 위해서는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야 하는데 다시 예이츠의 묘지를 찾아가는 길을 설명하는 것도 이리 어렵다. 하지만 예상보다 평범했던 이니스프리 호수와 두고두고 기억할 아름다운 묘비명을 남겼으니 뜻깊은 여행이 아니었을까!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삶에도 죽음에도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말 탄 자여 지나가거라!)  또 한 명의 작가는 그리스 에게해 크레타 섬에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문장을 읽는 즉시 『그리스인 조르바 』가 떠오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진정한 자유인 조르바의 살아 있는 심장을 품은 채 대성곽의 기단 위에 잠들어 있었다. 『최후의 유혹 』으로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파문당한 탓에, 그의 묘석에는 석비 대신 가로세로 길주름한 나무 십자가가 엉성하게 세워져 있었다."(462쪽) 그 모습이 마치 '키가 크고 몸이 마른' 조르바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춤을 추고 있는 형상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의 작품과 그의 생애와 너무도 꼭 맞춘 듯한 묘지이자 묘비명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벗 삼아(근데 어마무시 사진까지 수록되어 있어 이 책 진짜 무겁다 ㅠㅠ) 이 아름다운 작가들의 묘지를 찾아가는 날이 나에게도 오지 않을까... 함 작가처럼 간절히 바란다면 이루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나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지에 가고 싶다. 간절히. 가서 내 눈으로 그의 묘비명을 보고 싶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내가 다 아니까 아무 문제 없다. 윽... 생각만 해도 전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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