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가 나의 존재를 알게 되면 교류할 수도,
 침묵할 수도 없어요. 다스에겐 한 가지 선택밖에 없어요."
오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두 화성의 불빛이 모두 사그라졌다. 바람 한점 불지 않았고 공기는 미동조차 없었다. 정적에 눌린 어둠이 아스팔트처럼 끈적끈적해져 밤하늘과 사막이 한 덩어리로 엉겨 붙었다. 마침내 어둠속에서 스창의 한마디가 들렸다.
"제기랄!"
뤄지가 어둠 속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스의 선택을 수억 개 항성의 억만 개 문명으로 확대해봐요. 그러면 우주문명 전체가 그려질 거예요."
"그건・・・・・・ 너무 암울해……………."
"우주는 원래 어두운 곳이죠."
뤄지가 백조 깃털을 잡으려는 것처럼 손을 뻗어 허공에서 휘저었다. 어둠의 질감을 느끼려는 것 같았다. - P677

"우주는 암흑의 숲이에요. 모든 문명이 총을 든 사냥꾼이죠. 그들이 유령처럼 숲속을 누비고 있어요. 길을 가로막는 나뭇가지를 살며시 치우고
발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숨소리조차 낮추고……. 조심해야 해요. 숲속에 곳곳에 사냥꾼들이 숨어 있으니까요. 다른 생명을 발견하면 그게 사냥꾼이든 아니든, 천사든 악마든, 갓난아기든 꼬부랑노인이든, 소녀든 소년이든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에요. 총을 쏴서 없애버리는 거죠. 이 숲에서 타인은 그 자체만으로 지옥이고 영원한 위협이에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그 어떤 생명도 곧바로 없애버려야 해요. 이것이 바로 우주 문명이고 페르미 역설에 대한 해석이에요." - P677

이게 바로 사랑인가?

그들 옆에서 저차원으로 펼쳐진 지자가 불쑥 나타나 표면에 이 글자들을 띄웠다. 공중에 떠 있는 원기둥의 어딘가가 녹아 한 방울 똑 떨어져 내린 듯 구체의 거울 표면이 매끈했다. 뤄지는 아는 삼체인이 많지 않았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말을 건 지자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이 외계인이 삼체세계에서 왔는지, 태양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함대에서 왔는지도 알지 못했다.
뤄지가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아마도요." - P711

뤄지 박사, 당신에게 항의하러 왔다.

"항의라고요?"

어젯밤 강연에서 당신이 말했다. 우주가 암흑의 숲이라는 사실을 인류가 오랫동안 깨닫지 못한 것은 문명이 성숙하지 못해 우주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에게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게 잘못됐나요?"
- P711

그렇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과학적으로는 불명확한 개념이지만 당신이 그 뒤에 한 말은 틀렸다. 당신은 말했다. 인류가 우주에서 유일하게 사랑을 아는 종족일가능성이 크다고. 또 면벽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이런생각을 하며 버틸 수 있었다고.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하자면...... 비유라고나 할까요." - P712

삼체 세계에도 사랑이 있다. 그것이 전체 문명의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에 싹이트자마자 억눌러버리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싹의 생명력이 워낙 강해서 어떤 개체에게서는 왕성하게 자라기도 한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아는 사이인가요?"

아니다. 나는 200년 전 지구로 경고를 보낸 감청원이다.

좡옌이 깜짝 놀랐다.
"어머나! 아직 살아 있다고요?"
- P712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진 않다. 나는 오랫동안 탈수 상태에 있었지만 너무 오랜세월이 흘러 탈수 상태에서도 늙어버렸다. 그래도 내가 바라던 미래를 보았으니 더없이 행복하다. - P712

당신과 한 가지 가능성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다. 사랑의 싹은 우주의 다른 곳에도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그 싹이 자라 무성하게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모험을 해볼 수는 있죠."

그렇다. 모험을 할 수 있다.

"내겐 한 가지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눈부신 햇빛이 암흑의 숲속을 비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 P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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