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도서관에 관하여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공공도서관 사서들의 연차 총회에서 도서관의 역할에관한 제언을 듣고 싶다고 요청해 주셔서 강연을 했습니다. 그때 규슈의 어느 시립도서관 이야기를 했습니다. - P19

그 도서관은 민간업자에게 업무를 위탁한 곳이라,
업자는 제일 먼저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귀중한 향토사 자료를 폐기하고 본인 소유 회사의 불량 재고였던 쓰레기 같은 고서를 구입하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도서관의 학술적인 분위기를 해쳤음에도 도서관에 카페를 들이는 등 세상의 유행을 따르다 보니 고객 만족도가 높아져 도서관을 찾는 사람이 두 배가 되었습니다. - P19

민간 위탁을 추진한 시장은 "봐라, 내 말대로 됐지?" 하고 의기양양했고요. 도서관의 사회적 유용성을방문자 수나 대출 도서 권수 등의 수치로 판단하는 것은아무리 봐도 수요와 공급의 관계만을 중시하는 시장 원리주의자의 발상으로 보입니다. - P20

그때 문득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라는 말이 무심결에 입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정말로 문득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정말로 그렇네. 왜 도서관은 사람이 별로 없어야 도서관다울까?" 하는 생각에 잠겨서 강연 내내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 P20

제가 그동안 방문한 도서관이나 도서실 가운데 지금까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곳은 모두 사람이 거의없는 곳입니다. 제가 가기 전에는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듯한 고문서를 노트에 필기하며 읽던, 어스레하고 고요한 파리 국립도서관 열람실, 오래된 문서를 장시간 심취해서 읽었던, 석양이 들이비친 로잔 올림픽 박물관 도서실. 문헌을 찾느라 몇 시간이나 보냈던 도쿄도립대학도서관의 싸늘한 폐가 서고. 저에게 ‘정겨운 도서관‘은모두 사람이 거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아마도 사람 없고 조용한 공간이 아니면 ‘책‘이 저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일 테죠. 정말로 그렇습니다. - P21

책이 저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요한 도서관에서 서가 사이를 돌아다닐 때 그런 일이 일어나지요. 그럴 때면 제가 이 세상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에 압도당하고 맙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서가의 거의 모든 책을 저는 읽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책의 99.999999퍼센트를 저는 아직 읽은 적이 없습니다. 그 사실 앞에서 망연자실해집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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